"자네는 여기에 남아 있든지 아니면 걸어서 혼자 내려가기 바라네. 어지간하면 집에 돌아가서 쉬기 바라네."
내가 보기에는 고산병 초기 같았다. 그럴땐 무조건하고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최고의 치료법이다. 사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자체가 이미 무리가 될 수 있다. 여기만 해도 해발고도 2800미터에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식물들의 분포가 이미 다르지 않는가?
수재 청년은 남기로 했다. 내려가도 좋다고 했으니 좀 쉬다가 내려갈 것이다. 사실 산중에 혼자 남겨둔다는 것이 위험한 결정이기는 했으나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내려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밑으로 빤히 집이 보이는데다가 도로가 밑에 있으니 혼자서 돌아가는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젠 식물들이 거의 바닥에 붙어서 자라고 있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느라고 여념이 없는 것 같았다.
색깔은 왜 이리도 고운지 모르겠다.
얘들은 짧은 여름을 만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린 자꾸 위로 올라갔고 한명은 저 아래에서 뒤쳐져 쉬어야 했다. 꽃은 왜 이리도 많은지..........
건너편 산봉우리엔 구름이 휘감아 내리고 있었다. 이젠 제법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여기쯤이 수목한계선인가 보다. 더 이상 나무들이 자라지 못하는 조건이 되는 것 같다. 나는 가지고 간 파카를 꺼내 입었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길거리에서 단돈 만원을 주고 산 것이지만 지금까지 십여년 동안 아주 유용하게 잘 써먹었다.
건너편 산마루에는 작은 천연 골프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산도 높고, 하늘도 높고, 골은 한없이 깊고........ 산이 높아야 골이 깊은 법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보라색 꽃이다.
꽃양귀비를 닮은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무리를 이루었다.
이곳을 지나면 이젠 버력지대를 지나야 한다.
광물질이 섞이지 않은 잡석을 버력이라고 한다. 마지막 야생화 지역을 벗어나면서부터는 버력돌이 가득한 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저 앞 산비탈엔 돌들이 수북했다. 우습게 보면 안된다. 너무 날카롭기 때문이다.
꽃 색깔은 하나같이 귀품이 있었다.
이젠 키낮은 철쭉나무 지대로 들어간다.
저 폭포 위에 호수가 있으리라. 위치로 보아서 저기가 목적지가 될 것 같다. 절벽 위로는 완전히 구름에 묻혀 있었다.
키작은 진달래와 철쭉 나무 사이를 지나면 뾰죽뾰죽한 돌들이 좌악 깔린 잡석 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천만다행인 것은 그 사이로 길이 나있다는 것이다. 물론 길도 돌천지이긴 하지만......
저 폭포 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얼마나 큰 호수가 있길래 물이 저렇게 넘쳐서 흘러 내리는 것일까?
궁금증은 갈수록 더 커져만 갔고 그만큼 우리의 도전의식도 맹렬하게 불타올랐던 것이다.
앞서 올라간 팀은 길을 잘못 들었던지 잡석지대를 기어 오르고 있었다. 좋은 길 놓아두고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길을 놓쳤으리라.
이 버력 사이에도 꽃은 자랐다.
엄청나게 가파른 곳이다. 실수해서 발이라도 헛딛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판이다. 돌들은 오죽이나 날카로운가 말이다.
이따가 내려갈때는 돌들이 가득한 이 골짜기 사이로 내려가도 되겠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나는 길이다.
골짜기 건너편 산들의 위용이 대단했다.
드디어 마지막 지점까지 거의 다 도착했다. 저기만 넘어서면 된다.
목표지점 바로 앞에서 미리 올라온 다른 팀을 만났다.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모두 유럽인들이었다. 두터운 방한복은 언제 다 준비를 했는지......
저기다. 드디어 호수를 찾았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주 맑은 물을 그득 담은 호수 하나가 산중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었다. 놀랍게도 호수 위로 골짜기가 다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였다. 호수 주위에는 군데군데 아주 작은 빙하들이 발을 붙이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니던가?
여기가 바로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다. 폭포의 시발점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물가여서 그런지 야생화들이 가득 피었다.
빙하 주위로 사람이 몇 보였다.
호수물은 엄청 차가웠고........
눈과 얼음녹은 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 광경 하나를 보려고 그렇게도 기를 쓰고 올라온 셈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내려갔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뻔 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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