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여기만 해도 해발 2000미는 충분히 넘지 싶다. 그 정도만 해도 이미 한라산 꼭대기를 넘어선 것이 아니겠는가?
초지(草地)와 뾰죽뾰죽한 바위산 봉우리들이 이국적인 냄새를 진하게 풍겨왔다.
원래는 이쪽 봉우리를 오르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산중에 있다는 호수를 보기 위해 방향을 바꾼 것이다.
밑에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막상 올라보면 풍광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고야 만다.
첫번째로 마주친 아주 작은 마을에서 영감님을 만났다. 말은 안통하지만 허락을 얻고 사진을 찍었다. 영감님 뒤로 보이는 집 마당에는 할머니 한분이 설거지를 하고 계셨는데 뭐라고 계속 잔소리를 퍼붓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 카메라에 찍히고난 뒤 영감님은 황급히 돌아서서 집으로 가셔야 했다. 영감님 부인은 소크라테스의 부인인 크산티페 같은 여인이었을까?
작은 마을 건너편 골짜기에도 집 몇채가 보였다. 초지에 일하러 나온 사람들 몇명이 보였다.
우리는 지금 서 있는 이 능선을 따라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뒤 오른쪽 골짜기 속에 있는 호수를 찾아갈 생각이다.
돌로 만든 튼튼한 집 지붕은 모두다 돌로 눌러놓았다. 눈보다 더 무서운게 바람이리라.
이런 곳에 살면서 한번씩 장이라도 보러 가려면 엄청 걸어야겠다. 여기서 바르할까지만 해도 이십리길은 충분히 넘을 것이다. 바르할까지 가면 가게가 있으니까 생필품은 거기서 구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큰 마을인 유수펠리까지 나가려면 족히 하룻길이다.
경치하나는 말로 설명이 안된다. 사방에 깔린 꽃들과 맑은 물, 그리고 달콤한 공기가 이분들에게 건강을 제공해주리라.
그렇지만 다치거나 아프게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전봇대가 늘어선 것으로 보아 전기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천번만번 생각해도 그것만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여기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 분같다. 그러길래 집 부근에 묻히신게 아닐까?
우리가 보기엔 편한 삶 같지만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고단한 일이다. 전원생활이 겉보기엔 낭만적이지만 실제로는 신산한 법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다시 아주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어찌보면 여름용 집 같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지만 이 산촌에 사는 사람들의 붙박이용 집이 아닐까? 이런 곳에는 겨울에 눈사태의 위험이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산사태나 눈사태 같은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번 당하면 폐허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세가구 정도가 사는 것 같다. 짐승을 몰아넣어 두는 우리와 건초를 넣어두는 건물과 장작이나 연장을 넣어두는 헛간같은 것이 보였다. 여기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까?
가까이 가서 보면 집벽을 이룬 돌들 하나하나가 하나같이 다 잘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짐승들은 아래층에도 몰아 넣어두는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이 사람들은 문을 열어두지 않는 듯했다. 여름에도 그리 덥지 않기 때문일까?
집 바로 옆에는 채소밭이 자리잡았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에 수도관을 박은 것이리라. 맑은 물이 그냥 마구 쏟아졌다. 이런 물을 못믿으면 우리 지구 자체의 수명이 다 된 것이나 다름없겠다. 너무 시원했다. 물맛은 한없이 깔끔했고......
분명히 사람소리는 나는데 내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었고........
수도물은 그저 넘쳐나고 있었다. 사실 수압도 굉장했다.
우리는 다시 위쪽으로 발을 옮겼다. 저 앞 능선에는 벨기에 커플과 터키 고등학생 둘이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터키 청년들은 고등학생들이었던 것이다. 터키 서부 이즈미르에서 방학을 맞아 놀러왔다고 한다.
이 건물은 건초를 넣어두는 집이다. 긴 겨울을 나려면 미리부터 건초를 부지런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겨울에는 사방 천지가 눈으로 덮힐 것이므로 건초를 미리미리 준비해 두지 않는다면 짐승들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겠다.
거주용 집 한채, 건초보관용 집 한채, 가축 우리용 집 한채........ 한 가구에 딸린 집들이 몇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 마을을 뒤로 하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
이런 곳에서는 한번 뒤로 쳐지면 따라잡기가 힘이 든다. 더구나 고산지대가 아니던가? 숨이 쉽게 가빠온다.
뒤에 남겨두고 가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나는 한번씩 돌아서서 사진을 마구 찍었다. 이러다가 산에는 언제 다 올라갈지 모르겠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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