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타운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예전에 지은 건물들이 속절없이 퇴락해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깨어진 유리창과 허물어져 가는 벽들, 어설픈 시멘트로 얼기설기 덧칠해버린 흉한 벽면이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돌출시킨 아름다운 발코니들도 한때는 아름다운 광경을 자랑했었겠지만 이젠 너무 시들어버렸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건물 관리는 퇴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붉은 벽돌담을 가진 그럴듯한 집들도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골목에서 언덕 위를 보면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에 있다는 거대한 여신상을 닮은 조각상이 하나 우뚝 서있다. 멀리서 봐도 치졸하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는데 아마 구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갑자기 그것이 보고 싶어졌다. 저 언덕에 올라가면 어쩌면 성채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산기슭을 따라 남아 있는 요새의 한쪽 벽이 보였다.
우리로 치면 달동네쯤 될까? 하지만 여긴 엄연한 역사지구인 것이다.
너무 낡아버린 성당 건물이 내마음을 조여왔다.
산기슭과 절벽을 묘하게 이용한 건축물들이 조지아 조상들의 빼어난 예전 솜씨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을 깨어진 유리창이 있는 집에서 보낸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깨어지고 금간 유리창이 있는 집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배고픈 설움과 함께 금간 유리창조차도 반듯한 것으로 하나쯤 갈아끼울 수 없는 슬픔만큼 큰 아쉬움도 또 있으랴? 깨어진 유리창으로 스며들어오는 겨울철 찬바람은 텅빈 가슴속으로 휘몰아치는 날선 바람 만큼 사람 마음을 후벼파는 법이다.
나는 창문 사이로 잠시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소녀의 시원한 눈망울을 그리워 한다. 애처롭다.
이 작은 소녀는 호기심 어린 슬픈 눈으로 이방인을 흘끔 올려다 보다가 이내 집속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이 소녀는 이번 전쟁속에서 무사한지 모르겠다.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올랐더니 이윽고 도시 경관이 한눈에 잡히기 시작했다.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이 강 양쪽 언덕으로 평화롭게 자리잡은 곳이 조지아 공화국의 수도인 트빌리시이다.
황금색 성당 지붕을 가진 도시가 그리워진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는 옥색 지붕을 가진 성당이 많았었는데.......
낡아빠진 성당을 보수하는 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우리들에게 인사를 걸어왔다.
"시타델?"
내가 요새로 가는 길을 찾았더니 그들은 자기들 말로 이야기하며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었다. 계속 올라가면 된다는 뜻이리라.
여긴 옛것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동부유럽에서 느꼈던 아련한 애수가 여기에도 진하게 묻어남을 느꼈다. 나는 이런 애잔함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마음 한구석이 찌릿해지면서 알싸해져 오는 그런 느낌과 감동을 사랑하기에 어디론가 자꾸 가려고 발버둥치게 되는 것이다. 못말리는 낭만주의자며 감상주의자라고 경멸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나는 자주 배낭끈을 만지작거린다. 자동차나 텔레비전없이는 살아도 무작정 떠남이 없는 메마른 삶은 도저히 살 자신이 없다.
나는 낭만적인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 애절한 느낌을 주는 현악기 소리를 듣거나 멜로디가 아름다운 음악을 접하면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져 오면서 이성이 마비되기 시작하는데 그럴땐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도 이젠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은데다가 그런대로 나이가 들었으니 망정이지 안그러면 방랑하다가 생을 마칠뻔 했다.
바로 위 사진 석장을 나란히 놓으면 트빌리시 시가지 모습이 만들어지지 싶다. 기차역 위쪽 부분이 생략되긴 했지만 말이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7 (0) | 2008.09.02 |
---|---|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6 (0) | 2008.09.01 |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4 (0) | 2008.08.30 |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3 (0) | 2008.08.29 |
조지아(=그루지아) 둘러보기 2 (0) | 2008.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