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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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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자, 떠나자~~ 그루지아로~~

by 깜쌤 2008. 8. 24.

 

다시 한양으로 간다. 나랏님이 사시는 곳 서울은 나에게는 가보기 힘든 도시이다. 자주 가는 곳도 아닌 이곳을 다시 가는 이유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8월 4일 월요일 00시 07분에 서울 올라가는 무궁화 열차를 타기 위해서 8월 3일 일요일 밤 11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하루종일 교회 활동을 마치고 저녁 6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온 뒤 부랴부랴 배낭을 꾸렸다.

 

 

 

 

 갈때마다 맨날 그런 식이다. 배낭여행 물품은 평소에 따로 서재 다락에다가 챙겨두었으므로 그냥 꺼내서 넣기만 하면 된다. 나는 내가 직접 짐을 꾸린다. 아내가 도와주는 것은 일절 없다. 여행 가는 것을 허락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짐싸는 것 까지 도와달라고 하면 간큰 남자 들어간다.

 

 

 

 

 서울 올라가는 것도 버스를 타면 좋겠지만 내가 굳이 기차를 고집하는 이유는 한가지 이유때문이다. 만약의 경우 고속도로에서 정체현상이 생기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기차는 그런 면에서 조금 안정적이니 출국하러 갈때에는 항상 기차를 타는 것이다.

 

 

 

 

 청량리 역에 도착하니 아침 6시가 되었다. 친구가 승용차를 몰고 나와서 가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새벽도로를 달려 청진동에 가서 해장국을 한그릇 때린다. 이젠 이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지금 안먹어두면 3주일 동안 한국음식을 입에 댈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므로 염치불구하고 체면차리기는 적극 사양한 상태에서 한그릇 얻어 먹는다. 나는 펄펄 끓인 선지해장국을 좋아한다. 술도 안마시는 사람이 무슨 해장국이냐 하겠지만 아침 식사로는 그저 그만인 음식이 아니던가?

 

 

 

 

 

 그런 뒤 서울 역으로 향했다. 일행 가운데 마지막 한명인 대학생은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서울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하다못해 공사 현장을 가리는 가림막 시설도 세련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한양와서 살려고 하는 모양이다. 굳건한 심지로 고향지키는 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말씀이지만 나같은 시골 촌놈은 이제 별 희망이 없는 존재다.

 

 

 

 

 ㅊ모모 국회의원이 @선일보라고 발음했던 신문사 건물이 저기 보인다. 그 신문사 논조의 호불호(好不好)를 떠나서 점잖은 여자국회의원님 입에서 '조'자 밑에 어떤 받침이 들어간 낱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나중에 보니 가치관이 같은 것으로 여겨지는 어느 나랏님은 시장의 뜨내기 잡배 정도가 쓰는 상소리도 함부로 하시더라는 말이다. 뭘 잘하고 잘못하고를 떠나서 나랏님 입에서 듣기 민망한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나중에는 면역이 되서 그러려니 했다.

 

 

 

 

 나도 입으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지만 내 입에서 "C8C8"같은 소리나 "개색희"같은 소리가 막나오기 시작하면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이 질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사람이 쓰는 낱말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실력을 상징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그것은 그렇다 치고 나는 가던 길이나 마져 가야 한다.

 

 

 

 

 저어기 저 앞에 보이는게 뭐라더냐?

 

 

 

 

 작년 연말에 홀라당 구워먹은 국보 1호가 아니더냐?

 

 

 

 

우린 정말 대단한 피플들이다. 국보 1호도 그냥 구워 먹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런 귀중품을 구워먹었다는 소리를 어디가서 한단 말인가? 부끄러워서라도 함부로 입에 담을 수나 있는 소리인가 말이다.

 

 

 

 

 이제 서울역이 보였다.

 

 

 

 

그런데 서울 역앞에는 막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이 내가 사는 경주 역앞에도 많이 있으니 뭐라고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어디어디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버티는 아들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애비는 또 배낭매고 나간다고 말이다. 내가 어떻게 되면 네가 어머니와 누나를 잘 돌봐달라는 어설픈 당부를 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 속의 국보가 자리잡은 도시에 산다.

 

 

 

 

 여기에서 마지막 한명과 합류를 했다. 이젠 공항으로 가야 한다.

 

 

 

 

 전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지하철로 김포까지 간 뒤 공항철도로 갈아타기로 했다. 따져보면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공항철도!

 참 편리한 시설이다.

 

 

 

 

 올해까지는 염가로 제공하지만 내년부터는 운임이 오를 예정이란다.

 

 

 

 

 

 너무 쾌적하고 편리한 시설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4명이다. 어른 둘에 대학생 둘이다. 어른은 쉰이 넘은 늙다리들이니 팀 구조가 이상하기도 하다.

 

 

 

 

 티켓으로 쓰는 카드는 재활용인 모양이다. 좋은 일이다. 요금은 표에 나와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드디어 거의 다 왔다.

 

 

 

 

 출발 세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이젠 첵크인 준비를 해야 했다. 여기까지는 꽤나 수월했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