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무섬 4 - 돌아나가기

by 깜쌤 2008. 1. 12.

 

마을 구경을 끝낸 나는 촌로(村老)들에게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영주로 가려고 하는데요,  여기에서 나가는 버스는 몇시경에 있습니까?"

"아, 그차요....  그게요 3시 반에 있니더. 그냥 들왔따 씩 돌아나가뿌니더. 쫌 있으마 오니더."    

 

 

 

 3시 반이면 한시간 가량 남았다. 으흠... 문제가 된다. 안동에서 5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면 7시에는 경주 도착이 가능하지만 여기에서 평은까지 다시 걸어가려면 두시간이나 걸리니 문제가 된다. 평은에서 안동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그리 자주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영주에서는 4시 23분에 경주로 내려가는 기차가 있다. 그것을 나는 4시 15분으로 착각을 했기에 그날 실수를 하게 된다. 돈은 조금 써졌지만 전화위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차를 놓치면 버스를 타고 안동까지 가서 ㅅㄴㄹ ㅁ님을 만나보면 될 것이다.

 

주막이라고 생각되는 건너편 건물에는 기어이 가보지를 않았다. 후회스럽다. 상황이 어려워질땐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결국 나는 와현으로 나가기로 했다. 걸으면 한 20여분 걸릴 것이니까 거기에서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트럭이라도 지나갈때 히치 하이킹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늘엔 학이 날고 있었다. 색갈이 회색인 것으로 보아 아까 마을로 들어 올때 강변에 떼거리로 앉아 있던 녀석인지도 모른다.

 

 

 

 

 

바로 요녀석들이다. 백사장변에 무리지어 앉아 있었지 않았던가? 확실히 이젠 냇물이 많이 맑아진 것 같다. 떠나가고 사라져갔던 새들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그네라는게 항상 그렇다. 해가 중천에 있을때는 걱정이 없지만 기울기 시작하면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라도 있어서 어디라도 휘익 가면 좋지만 나는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차도 한대없이 사는 몸이니 이때만 조금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제방 위를 걸어오는 마을 노인처럼 나도 걸어서 돌아나가야겠다.

 

 

 

 

무섬마을이여 안녕. 나도 알고보면 여기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비록 이 동네 출신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리를 건너서는 부지런히 걷기로 했다.

 

 

 

 

 강을 가로지른 외나무 다리를 남겨두고 나는 돌아서서 걸어야했다. 아마 2,30년전까지만 하다라도 저런 외나무다리를 건너서 출입을 했을 것이다. 멀리 학가산 자락들이 첩첩으로 누워있었다.

 

 

 

 

 

 

와현은 분홍색으로 표시된 제일 마지막 지점이다. 지도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노랗게 칠해진 바로 왼쪽에 무섬 마을이 있는 것이다. 지도 왼쪽의 파란색 굵은 선은 중앙고속도로이다. 위로가면 영주를 거쳐 제천 원주로 이어지고 아래로 가면 안동 군위 대구로 이어져 대구 부근에서 사통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영주 사람들은 아직도 소박하다. 손을 들때마다 많은 화물차들이 섰는데 유감스럽게도 영주시내까지 가는 차는 없었다. 승용차에게는 거의 손을 들어보지 않았으니 반응을 모르겠다. 평소 같으면 점잖게 버스를 기다리지만 기차 시간이 임박하니 팔자에 없는 히치하이킹을 시도해 본 것이다.

 

결국은 모두 다 실패하고 영주에서 3시에 출발하여 여러 골짜기를 거쳐 돌아나가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권선이라는 골짜기를 통과하여 돌아나가는 것이었다. 영주 시내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 15분이 되었다. 나는 그 시각을 기차 출발시각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아직도 8분이나 더 남아 있었던 것을 모르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결국 기차를 타지 못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기생이 시내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시내 세무서 사거리에 기다리고 있으면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친구차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는 황급히 직행버스에 올랐다. 이젠 안동으로 가는 것이다.

 

 

 

 

영주만 해도 강변고수부지를 잘 정돈해 두었다. 지방자치제를 확산시키고 나서 확실히 변한 것이 이런 것이리라. 민선시장은 확실히 시민의 가려움증에 대한 처방을 아는 것 같다. ㅅㄴㄹ ㅁ님께 전화를 드려 버스에 타고 있음을 알렸다. 물론 그분이 먼저 몇번씩 전화를 걸어와서는 꼭 얼굴보고 안동에서 자고 가라고 당부를 해오셨다.

 

 

 

 

 그 분은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분이다. 나와는 생판 마주칠 일도 없는 분이었지만 어찌어찌하다가 알게 되어서 작년 여름 선친이 돌아가셨을때 ㅅㄱㅇ님과 함께 경주까지 찾아오셨던 것이다. 그러니 한번 얼굴이라도 뵙고 나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되어 안동까지 가기로 한 것이다.

 

버스는 새로 닦은 도로위를 달렸다. 안동과 영주 사이에는 일부구간이나마 새길이 놓여져 있다. 다리가 내성천 위로 달릴 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나는 강물이 모퉁이 돌아간 저 어드메쯤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니 정말 본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는 철저한 시골 촌놈인 것이다. 대신 유년시절은 자연속에서 자라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안동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전화를 해오셨다. 차를 가지고 터미널 앞에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뭐 나같은 사람을 손님으로 쳐서 그리 환대하실 일이라도 있다고 정성을 다하시는지 모르겠다.

 

멋지고 좋은 곳으로 가자고 권하시는 것을 내가 더 원해서 안동구시장 속에 들어가 돼지국밥과 수육을 시켜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동양반들은 봉제사접빈객우습게 여기는 법이 없다. 제사를 통해 조상들을 지극히 잘 섬기고 손님대접하기를 예로부터 중요시 했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손님대접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ㅅㄴㄹ ㅁ 님은 안동 사람이 아닌 것으로 알지만 양반고을에서 오래 생활하시다보니 저절로 그런 관습에 물이 든 것 같기도 하거니와, 본래 타고난 천성이 맑고 점잖은 분이어서 나같은 수준낮은 천출과는 잘 어울릴 수 없는 분이시다.  

 

일정이 바쁘시기도 하거니와 나 자신도 경주까지 내려갈 일이 태산이니 짧은 시간동안 얼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일어서야만 했다. 저녁 7시 52분경에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가 있으니 그차를 타고 내려가다가 북영천에서 내려 경주행 버스를 타면 되는 것이다.

 

 

 

 

 

이쉬운 작별을 하고 기차를 탔다. 그날따라 20여분이나 늦게 오는 바람에 조금 차질이 생기고 말 것 같다. 북영천에서 영천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갔다. 한 15분 정도만 걸으면 되니 문제없지만 터미널에가니 이미 벌써 버스가 끊어지고 없는 것이다. 경주행 막차는 9시인데 벌써 9시 40분이 되었으니 어쩌랴.

 

북영천역에서 집어 온 기차시간표를 가지고 확인해 보았더니 10시 1분에 경주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가 있단다. 안동역 매표구에서 확인할 때는 10시 반으로 들었었는데..... . 아마 내가 잘못 들었으리라. 다시 택시를 타고 영천역으로 갈수밖에..... 밤 10시 8분전이었다. 경주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 조금 더 지나 있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