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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일본-문화의 꽃:중서부(完)

교토 - 금각사 1

by 깜쌤 2008. 6. 6.

 그렇게 보고 나와도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이러다가 오늘 오후에 금각사 하나 보면 일정이 끝날 것 같다. 하지만 그다지 바쁘지 않았다. 못보면 다음에 보면 된다. 그 다음이라는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금각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큰 도로로 내려왔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개에게 주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그 개는 자기가 사람인 것으로 착각하고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로에서 204번 버스를 탔다. 도로 어느쪽에서 타야할 지를 몰라서 인근의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일부러 밖에까지 나와서 가르쳐 준다.

 

 

 

 

 

 버스 안에도 온갖 자잘구레한 것을 붙여두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밀하게..... 기사 뒷자리에 크게 붙여놓은 노선도가 흥미로웠다.

 

 

 

 

 중간에 시내 버스 터미널에 들어가서 갈아탔다. 우리는 1일사용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많이 갈아 탈수록 기분이 흐뭇해진다. 사람 심보가 왜이런지 모르겠다.

 

금각사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절 속에 들어가면 못먹을테고 먹는다고 하더라도 값이 비쌀 것으로 생각했기에 부근에서 먹고 가기로 한 것이다. 밖에서 메뉴판을 보고 디지털 카메라로 먹고 싶은 것을 찍어두었다. 말이 안통할 것을 예상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니 단정하다. 하여튼 깔끔하고 단정한 것은 어딜가나 공통점으로 다가온다. 디카 화면을 보여주며 주문했다.

 

 

 

 

 먼저 차를 내어준다. 미지근한 것이 약간 더운 느낌이 드는 오늘 날씨에 딱이다.

 

 

 

 

 조금 있다가 여주인이 메밀면을 내어오는데 국물맛이 깊다. 나는 처음에 고등어나 꽁치 종류의 비릿한 맛을 예상했지만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면 당황해지는 법이다. 이 음식 맛이 그랬다. 생선소바라고 부른단다. 물론 주인 아줌마는 우리들에게 피시소바라고 발음해주었다.

 

 

 

 

 손님들이 앉는 다다미방의 모습이다. 나는 맛없는 음식이라도 깔끔하게만 해주면 다 먹는 사람이니 조금 별난 축에 들어가지만 일본 음식은 거의 다 맛있었다. 조금 싱겁고 달달하게 느껴지긴 했었지만 무리없이 먹었다. 배낭여행자는 음식을 가리면 안된다. 주는대로 생기는대로 닥치는 대로 먹어야 한다. 안먹거나 못먹으면 자기만 손해다.

 

 

 

 

 

 바로 저 집이다. 저기서 먹었다. 금각사 버스 정류장 바로 앞집이다. 버스정류장 이름이 킨가쿠마에(金閣寺前) 아니던가?

 

마에다 도시이에라는 전국(戰國)시대의 무장(武將)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겼고 나중에 토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았던 인물인데 한자로는 前田利家로 쓰는 사람이다. 성이 전전인데 마에다로 읽는 것을 기억해내서 앞 전(前)을 '마에'로 읽는다는 것을 알았다. 역전(驛前)같으면 에키마에 하는 식이다.  

 

왜 그런 식으로 발음이 되는지 발음의 변화과정을 몰라서 함부로 말할수는 없지만 우리말 발음과는 도저히 연관이 안된다. 그냥 내 나름대로 느낀 것인데 중국발음은 세월이 가면서 발음자체가 늘어나 분화(分化)가 되는 것 같고 우리나라 말은 축약화 과정을 밟는 것 같다.    

 

 

 

 

 물 수(水)를 중국인들은 수이 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한음절로 끝낸다. 위수(渭水)도 중국인들은 웨이수이 정도로 소리 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리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짐작해보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발음 축약현상의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을 경상도 학생들은 꼬다꾜쏵쌤으로 소리낸다는 우스개가 생길 정도 아닌가?

 

 

그런 것은 그렇다치고 어설픈 날라리 이론은 그만 펼치기로 하자. 이제 금각사 입구로 들어간다.

 

 

 

 

 일본 제일의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니 사람들 입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작이 재빨라야 한다.

 

 

 

 

 으흠.... 원래 이름은 금각녹원사로구나. 그렇다면 사슴이 많이 살았다는 말일까?

 

 

 

 

 저 속에 절이 있는 모양이다.

 

 

 

 

 입장권 없이는 못 들어간다.

 

 

 

 

 들어가기 전에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보았다. 사람 심리라는게 묘해서 앞으로만 가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한번씩은 돌아서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바로 저거다. 제게 금각사다.

 

 

 

 

 셋부쿠는 말을 들어보셨지 싶다. 우리는 '할복(割腹)'이라고 쓰지만 일본인들은 '절복(切腹)'이라고 쓰는 모양이다. 표현이 좀 끔찍하지만 '배를 가른다'는 의미이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를 아시는 분이라면 일본 문학에 대해 기초는 알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주워들은 풍월로 버티는 인간이지 어디 일본 문학에 대해 조예가 있다거나 통달한 그런 인간은 아니다.

 

나는 학창시절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를 추종하는 일부 세력들을 모아 일본 자위대 총감실에 쳐들어가서는 마당에 모인 자위대원들을 모아두고 베란다에서 일장 연설을 한 후에 배를 갈라 죽었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 극우세력들에 대한 설명을 선생님께 들은 기억이 난다. 물론 신문을 본 기억도 난다.

 

 

 

 

난데없이 이 마당에 왜 미시마 유키오가 여기에 등장하는가 하고 의아해하실 분도 계시지 싶다. 미시마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라고 한다. 1925년생이다. 할복자살한 때가 1970년이니 마흔 다섯 한창 나이에 죽은 인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홍콩 갱(Gang)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삶속에 약간의 비장미를 풍기기는 하지만 그가 추구한 사상을 좋아하지 않으니 인간적인 매력도 못 느끼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자위대원들에게 한 연설의 핵심은 전쟁과 일본의 재무장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 헌법을 뒤엎으라고 촉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동조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품이 바로 <금각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야기는 이 절을 무대로 하여 사건이 전개된다.

 

 

 

 

 우리는 올해 2월 10일 밤에 있었던 국보 1호 숭례문 화재사건을 기억한다. 정신상태가 맛이 가버린 이상한 양반이 속칭 남대문으로 알려진 국보에 불을 붙여 홀라당 구워먹어 버린 가슴아픈 그 사건을 우리는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차라리 그 불지른 그 양반이 '숭례문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반해 불을 지르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범행동기를 주장했다면 하다못해 무슨 유미주의자(唯美主義者)나 탐미주의자 정도로 이해를 해서 소설의 주인공 정도로나마 남겨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냥 불질러버렸다니 할말이 없어졌다.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도 그러지 않았던가? 정신이 나간 어떤 양반이 그냥 지하철에 가서 불을 붙였다고 그러지 않았던가? 아, 왜 이리 정신나간 사람이 많은 세상이더란 말인가? 나중에는 그냥 심심해서 핵탄두 달아놓은 미사일을 발사하는 인간이 나올까봐 겁이 난다.

 

      

 

 

 '오사마 빈 라덴'이라고 있지 않은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미국 스파이 기관에서도 못찾아낸 숨박꼭질의 명수이자 대량살상 꼬드김의 명수 말이다. 그 양반의 인터뷰 기사를 어쩌다가 TIME에서 읽고 눈을 의심했었다. 물론 9,11테러 사건이 나기 전의 일이다.

 

 

 

 

"당신이 핵무기를 구한다는 소문이 있다. 목적이 무엇인가?"

"알라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대한 많은 수의 미국인을 죽이기 위해서이다. 신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핵무기를 구해서 그냥 터뜨릴수 있다는 발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견딜수가 없어서 불지를 수는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 그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게 바로 금각사 방화사건인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 화재사건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 그게 바로 소설 <금각사>이다. 미시마는 어릴때부터 할머니에게 일본 무사도 정신과 할복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게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까? 결국 그는 할복을 하고 만다.

 

지금 이 아이들이 듣고 있는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배우는 아이들이 바다 건너에 수두룩하고 압록강 건너가면 고구려 역사가 자기 역사라고 배우는 아이들이 몇억이나 버티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금각사 건물 하나을 앞에두고 이야기가 길었다. 보시다시피 3층 건물이고 2층과 3층에는 금박을 칠했다. 호수엔 송화(松花)가루가 앉아서 물조차 금빛으로 빛났다. 절 뒤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너도밤나무 꽃이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했다.

 

 

 

 

 

 화투 칠 줄 아시는가? 고스톱 칠 줄 아시는 분만 재미로 대답해 보시기 바란다. 1월이 소나무와 학이라면 2월은 매화와 휘파람새이다. 3월은 벚꽃(사쿠라)이고 4월은 일반적으로 검은 싸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싸리가 아니고 등나무와 뻐꾸기(어떤 사람은 두견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면 5월을 의미하는 화투 그림은? 고스톱을 칠때 그 그림의 열끗은 쌍피로 인정해주던데..... 난초라고? 다시 한번 더..... 뭐시라고? 난초? 에이, 그게 난초라고? 그렇다면 바로 아래 사진을 잘 보시기 바란다.

 

 

 

 

 

화투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꽃이 금각사가 자리잡은 못 주위에 가득하지 않은가? 난초는 확실히 아니다. 붓꽃 아니면 꽃창포 정도가 되겠다. 화투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창포(菖蒲)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꽃창포가 아닐까 싶다. 금각사에 구경 가신 분 가운데서 이 꽃을 정확하게 살펴보신 분이 있다면 확실하게 알려주시기 바란다.

 

 

 

 

 

 절 하나를 두고 온갖 소리를 다 해댔다. 사실 나는 아는 것도 없고 크게 배운 것도 없는 시골 훈장이다. 괜히 아는 척 했으니 빈수레가 원래 요란하다는 정도로 생각하시고 용서하시기 바란다.

 

 

 

 

 

 이젠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금각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건물 뒤태를 보러 가야한다.

 

 

 

 

금각사는 묘한 분위기를 간직한 절이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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