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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일본-문화의 꽃:중서부(完)

나고야 역에서

by 깜쌤 2008. 5. 15.

 후쿠오카에서 나고야 가는 버스는 터미널 건물 3층에서 출발을 하는데 달랑 한대가 가는 것이 아니고 자그마치 5대나 되었다. 그러니까 출발할때 1호차부터 사람을 태우고 출발하는 식이다. 우린 5호차를 탔는데 나중에 휴게소에 들어가서 보니까 다섯대가 나란히 줄을 서 있었다.

 

 

 

 

 기사는 두명이다. 처음 차가 출발할때 한분은 운전을 하고 한분은 마이크를 잡고 아주 긴 시간동안 자세하게 무엇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운행 일정과 휴게소 들어가는 시간 그리고 주의사항 등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렸다.

 

일본인들은 버스표를 예매할때 이름까지 물어왔다. 나중에 탈 때 보니까 승객 명부를 들고 일일이 탑승객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와 다른 모습이었다.  

 

 

 

 

 

 버스는 밤새도록 달렸다. 좌석배치는 버스를 3등분해서 배치를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28인승 리무진 버스 속에 오른쪽에 한줄, 왼쪽에 두줄 하는 식으로 배치를 해두지만 일본 야간버스는 3줄로 배치하고 각 줄마다 통로를 만들어 골고루 배치를 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달리면 각 줄마다 커튼을 쳐서 옆 통로의 사람들이 안보이도록 해버린다. 워낙 장거리를 운행하므로 당연히 버스 속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잤다. 새벽에 일어난데다가 하루종일 걷고 돌아다녔으므로 피곤이 극심했기에 잠이 그냥 쏟아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교토와 나고야 사이에 일본 역사에 유명한 장소인 세끼가하라가 자리잡고 있다. 1598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난뒤 그를 따르는 세력은 이시다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뭉쳐 도쿠가와 이에야쓰와 일본 열도의 지배권을 놓고 역사적인 한판을 붙게 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세끼가하라인 것이다. 서기 1600년의 일이다.

 

내가 눈을 떴을때 고속버스는 세끼가하라로 나가는 나들목 부근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는 이시다 미쓰나리의 군대에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싸움에서 패전하여 방랑하다가 교토로 흘러들게 된다.

 

저쪽에 세워진 버스들도 장거리 고속버스들이었다. 모두 같은 휴게소에 들어와 쉬고 있었다.

 

 

 

 

 버스 출입문 위를 일부러 찍어보았다. 5호차라고 표시되어 있지 않은가?

 

 

 

 

 배낭은 짐칸에 싣는데 짐을 실을 때 변호표를 나누어 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이 번호표를 주면 승무원이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주었다.

 

 

 

 

 7시 반이 넘어서 나고야 시에 도착했다. 나고야 시내로 들어갈땐 해가 뜬 아침이었지만 일본인 승객들은 하나같이 커튼을 드리워두고 있었다. 승무원이 걷어도 좋다는 말을 해야만 걷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간에 여러 사람 사이에서 특별하게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남을 배려하는 모습 하나는 특이하게 느껴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승무원이 먼저 내려서 짐칸 문을 연뒤 직접 짐을 꺼내준다. 우리나라 같으면 기사는 가만 있고 손님이 알아서 짐을 꺼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 사람들은 철저하게 짐까지 챙겨주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우리도 배워야 할 것이다. 자기 회사차를 이용해준 손님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짐칸 옆면에 쓰인 문구가 감동적이어서 찍어보았다. 일본인들의 프로 정신이 엿보인다. 니시테츠 회사의 행동에 신뢰성이 간다.

 

 

 

 

 

 배낭을 찾아서 나와서는 매표구를 찾았다. 탑승장 부근 문 위에 마련된 버스 출발 시간표를 찍은 것이다. 우린 다시 교토까지 가야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나고야 시의 분위기 정도는 살펴야 할 것 같아서 두시간 정도를 쓰기로 했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교토행 버스표는 여유가 있었다. 쉽게 두장을 구했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표로.....

 

 

 

 

 다시 배낭을 매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터미널을 나오자 배배꼬인 건물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나고야는 2차대전때 미국 공군의 공습을 받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자체는 현대적인 건물들로 그득했다.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 철도역이 자리잡고 있다. 사철인 메이테츠와 긴테츠 철도역, 그리고 JR 국영철도 역이 나란하게 붙어 있었다.

 

 

 

 

 이 쌍동이 빌딩이 국영 JR 역사와 호텔건물이다. 나고야의 랜드마크 정도로 인식되어 명물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역 건물 바로 앞에는 각종 조형물이 자리를 틀었다.

 

 

 

 택시 색깔도 튀어보이지가 않았다.

 

 

 

 나고야는 일본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인구만 해도 200만이 넘는 거대도시인 것이다.

 

 

 

 

 역건물 속에 들어가 보았는데 정말 거대했다. 밖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엄청나게 크게 보였다.

 

 

 

 

 건물 조경도 좋았고.... 우리가 사진을 찍은 이곳은 3층의 정원이다. 일종의 옥상정원인 셈이다.

 

  

 

 50층에 있다는 전망대를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13층 정도에서 멈춰야했다. 아침이어서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오른쪽에 나고야성의 천수각이 보인다. 원래의 천수각은 2차 대전때 무너졌다고 하는데 새로 복원한 모양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쓰, 토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들이 모두 나고야 부근 출신들이다.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인물 셋 모두가 여기 출신이라는게 너무 신기하다.

 

 

 

 

 긴테츠 역건물이 보이지 않는가? 건너편에는 메이테츠(名鐵)역이 보인다.

 

 

 

 

 

 역건물이 있으니 철도가 바로 옆에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고야 분지는 광활했다. 엄청 컸다.

 

 

 

 

 숲속에 자리잡은 천수각이 확실하게 보인다. 똑딱이 카메라에 붙어있는 줌 기능을 사용해서 끌어당겨 찍어본 것이다.

 

 

 

 아침이라도 찾아먹기 위해 시내에 들어가 보았지만 음식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본인들도 쓰레기 봉투를 길가에 내다 놓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시 역건물로 들어온 우리들은 식당 찾아 삼만리를 헤매기 시작하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