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일요일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성탄절과 더불어 가장 의미깊은 그리스도교인들의 명절인 셈이죠. 올해 부활절은 공교롭게도 경주에서 목련이 피는 시기와 거의 일치를 했습니다.
목련이 필때는 산수유도 함께 피는 법입니다. 그러니 정말 모처럼 하루 노는 날을 맞아 카메라를 들고는 대릉원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다시 일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한 달에 두번밖에 없는 놀토인데 오전에 새봄맞이 화분 정리를 하느라고 시간을 다 썼으니 영어예배 전에 가지는 단 두시간의 여유도 나에게는 황금시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릉원에는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고 휴일 나들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테너 엄정행씨가 잘 부르시던 가곡 목련화가 생각났습니다. 고분의 정상이 마치 대초원의 언덕같이 여겨집니다.
갑자기 광활한 초원이 그리워졌습니다.
대릉원에 담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만스럽습니다. 대릉원 바깥에도 고분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자리잡은 산들과 어우러지는 경주만의 기막히게 아름다운 독특한 곡선미를 담이 가리기 때문입니다.
수양버들에도 물이 올라 연두색을 안고 있었습니다.
무덤 사이로 난 길가로 목련나무에는 꽃을 가득 달았습니다.
가족 나들이 하는 모습이 경겹기만 하고요......
무덤 너머로는 교회 뾰족탑이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옥녀봉입니다. 거기서 보는 시내 경치도 그저그만이지요.
신라인들의 조상은 혹시 대초원에서 말 달리던 분들이 아니었을까요? 봉분의 곡선미가 그냥 이루어진 것일까요?
목련은 흐드러졌고......
무덤엔 세월 한조각이 앉아 봄볕에 조용하게 조을고 있었습니다.
일년사는 꽃들은 저리도 청초하건만 수십년 사는 우리 인생길은 왜 이리 지저분한지 모르겠습니다.
배롱나무 사이로 자리잡은 산수유 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상아빛 목련과 노란 산수유꽃이 아름답기만 합니다.
나는 무덤 능선 한자락에서 대초원의 물결치는 언덕을 떠올립니다.
이런 길만 봐도 왜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두살 먹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새로 산다면 공부에 미치고 싶기도 하고 더 멀리 여행을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땅 넓고 세상 크고 하늘 높은 줄 몰랐던 가버린 청춘이 아깝기만 합니다.
이젠 조용히 삶을 관조해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생길! 험했지만 정녕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기가 좋습니다.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살았어도 앞으로 남은 길이 있기에, 더 가야할 길이 있기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렵니다.
나야 뭐 큰 무덤 남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거창한 이름을 남기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내 아내와 자식에게 만이라도 소중한 이름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욕심을 버리니 마음이 맑아집니다.
이젠 맑은 인생을 사는 것이 꿈이기도 하고요......
작은 꿈이나마 꾸게 하시는 하나님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경주사는 즐거움을 주신 것도 고맙고요.....
봄날을 주신 것은 더욱 더 감사한 일이지요.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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