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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일본문명의 시원-큐슈(完)

라면 사먹기

by 깜쌤 2008. 2. 8.

 

 일본에서 한글 간판으로 된 게스트 하우스를 본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않았기에 기분이 조금은 묘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고 보았더니 복도가 나타나는데 아무도 없었다. 사무실 표지를 보고 문을 두드린뒤 안으로 들어갔다.

 

"헬로우~~"

 

그러자 안에서 반응이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왔는데 인상이 좋았다. 처음에는 국적을 모르니 당연히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제 이름은 000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약자 명부를 찾아보는 듯 했는데 하는 말이 황당한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예약되어 있지 않는데요."

  

 

 

 다시 한번 이름을 밝히고 하는 과정에서 주인장은 유창한 우리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발음은 아니고 일본인이 하는 한국말인 것이다. 그런 정도는 들으면 알게 되어있다. 이를테면 이응 받침이 들어간 낱말의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든지 억양이 너무 다르다든지 하는 것으로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보고 옆쪽에 있는 휴게실에 가서 잠시 대기해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일단은 친절한 태도였다. 휴게실에 들어가니 텔레비전도 있고 냉온수가 나오는 정수기도 있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이 되어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그는 자기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더니만 국제전화까지 해가며 확인을 하기 시작했고 다시 나와서 내 이름을 물어왔다. 그러더니만 그제서야 예약이 되어 있고 예약금액도 받았다고 하며 방을 안내해주는 것이다.  

 

 

 

 우리 방은 3층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다다미 위에 비닐 장판을 깔아둔 방이었다. 욕실과 화장실은 당연히 공용이다. 다다미 위에 비닐을 깔았다면 등짝이 서늘할테고 밤에 잠을 자는데 애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장판을 주는 것도 아니니 벽면 한구석 천장 부근에 매달아둔 온풍기로 방안 온도를 올려야 했다. 

 

여기서는 텔레비전 보는 것도 공짜가 아니다. 100엔짜리 동전을 넣으면 두시간동안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짠돌이는 볼 일이 없는 것이다. 일단 짐을 풀어두고 밖으로 나가서 저녁을 사먹기로 했다.

 

다시 주인을 찾아간 우리들은 번화가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그는 정말 친절한 사나이여서 지도를 꺼내들고 연필로 표시를 해가면서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도 지도는 가지고 있으니 시내 거리 파악이 쉽게 되는 것이다. 도시 고속 도로가 있는 강을 따라 상류로 걸어 올라가다가 두번째 다리를 지나서 강을 건너면 후쿠오카에서 가장 큰 간선도로를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도로를 따라 가다가 왼쪽에 보이는 오오쿠라 호텔을 찾아서 다시 왼쪽으로 돌면 번화가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 설명만 들어도 오우케이다.

  

우리에게 당면한 큰 문제 하나는 아직도 일본은 가정용 전기 전압이 110볼트로 되어 있으므로 디지털 카메라 충전기 사용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220볼트용 플러그 앞부분에 연결할 플러그 하나만 있으면 해결나는 것인데 그것을 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인에게 물어봐도 별 뾰족한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런 부속품을 구해야하는데 하카다 기차역 부근에 있는 대형 전기용품 판매점에서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답이 나왔다. 그 정도만 해도 반은 성공한 것이다.  

 

 

 

 

 방도 잡았고 전기용품 사용을 위한 귀한 정보도 획득했으니 마음이 한결 푸근해 졌다. 이제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방을 둘러본다. 거리가 깔끔하다. 도로 전체가 탁 틔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잘 몰랐다.  

  

 

 

 강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니 정말 거리가 조금씩 번화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 글 속에서 번화하다는 것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고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오쿠라 빌딩을 찾아서 모퉁이를 돌자 택시들이 인도 위에 대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일본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싶어서 찬찬히 살펴보니 택시대기 장소였던 것이다. 줄을 서서 단정하게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제사 우리나라 거리와 다른 모습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 나라에서는 대로변에 불법주차나 정차를 하는 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거리가 확실히 넓어보이는 것이다. 대로변에 불법주차를 하는 차들이 없으니 특별한 경우 택시들이 인도쪽으로 올라가서 허용된 구간에서만 손님을 대기하도록 해 놓았다.

 

 

 

 나는 이번 여행만큼은 철저히 배우는 자세로 다니기로 마음 먹었기에 하나하나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이런 거리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재래 상가나 재래시장 정도에 해당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량된 재래시장처럼 위를 둥근 지붕으로 덮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외도 우산없이 편안하게 다니도록 해두었다. 

 

우리가 간 시간이 조금 늦어서 그런지 몰라도 일부 가게는 문을 닫았다. 천장이 높고 조명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다가 같은 깃발을 걸어두어서 축제 분위기를 풍기도록 해두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는 것이 급선무였으므로 라면가게를 찾는 것을 주목적으로 해서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럴듯한 라면 가게를 찾아냈다. 일본 음식점들은 가격표를 밖에다가 붙여 두었으므로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가격표를 밖에 내 걸어둔 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정말 좋은 현상이다.

 

길모퉁이 작은 공간을 이용한 집이었지만 손님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것으로 보아 라면 맛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의자들이 모두 다 밑바닥에 고정되어 있어서 공간활용도가 높아보였다. 등에 짊어진 작은 배낭을 발앞에 두면 되는데 일본 가게들은 보통 발을 두는 부분을 조금 높여두었으므로 물건을 두기에도 편하고 발을 올려 두기에도 편했다.

 

 

 

 아무리 외국인임을 숨기려고 해도 언어가 유창하지 않으면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요리하는 사람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줌마 한사람과 아가씨 한사람, 아저씨 한사람이 서빙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한줄로 나란하게 좌석배치가 되어 있으므로 주인이나 종업원이 손님쪽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그러니 작업능률이 올라간다. 요리는 손님이 보는 앞에서 직접 해주므로 지저분하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바로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것이다.

 

 

 

 손님들 앞에 놓여진 반찬통들 너머 주인이 요리를 하는 공간이다. 모두들 캡을 써서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도록 했다. 나는 하카다 라면을 시켰다. 후쿠오카는 하카다와 후쿠오카 지역이 합쳐져서 된 도시이다. 하카다(博多)는 예전부터 상업지구로 알려져 와서 그런지 지금도 일본이 자랑하는 초고속 열차 시스템인 신칸센(新幹線) 역도 큐슈지방만은 하카다 역에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카다라는 말을 꼭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기차역을 찾을 때는 후쿠오카 역이라고 하지말고 하카다역이라고 말씀하시라. 그게 헷갈리지 않는 지름길이 된다. 하카다를 대표하는 라면이 바로 돼지고기 뼈를 삶아 우려낸 맑은 육수에 말아내는 톤코츠라면인데 보통은 하카다 라면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나는 하카다 라면에다가 쌀밥 한공기를 시켰다. 손님이 보는 눈앞에서 만들어 갖다준 라면을 먹기전에 한장면 찍어두었다. 기록을 위해서......  일본 반찬이 적다는 것은 유명한 것이지만 밥 한공기에 딸려 나온 것은 노란 단무지 달랑 두조각이었다. 앞을 보니 통속에 생강절임이 있어서 그것으로 밥반찬을 대신하여 함께 먹었지만 음식 찌꺼기를 거의 남기지 않으니 내 취향과는 딱 맞아 떨어진다.  

 

 여기 사람들은 숟가락을 거의 쓰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밥그릇과 국그릇을 들고 먹어도 크게 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우린 밥그릇을 들면 되게 꾸중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던가? 그러니 스푼을 주지 않는 모양인데 우린 외국인이므로 숟가락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  

 

 

 

 우리가 먹는 얼큰한 라면과는 한참 거리가 멀므로 맵고 짜고 얼큰한 우리 라면이 먹고 싶다면 라면 스프를 가져가서 먹어볼 일이다. 우리 앞에서 서빙을 하는 아가씨는 일본 여자치고는 이목구비가 또렸한 미인이었다. 무엇보다 키가 컸다. 라면과 밥을 다 먹고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사양했다.

 

"저 분들은 일본이이고요...... 저는 중국인입니다."

"니쓰 중궈런마?"

아가씨가 놀라는 표정을 지어왔다. 난데없는 중국어를 들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하리라. 나야 뭐 중국어 초급도 안되는 수준이지만 기본적인 몇문장 정도는 알고 있으므로 그냥 지껄여본 것인데 아가씨가 굉장히 좋아했다. 

 

고향은 길림성 대련이란다. 길림성이라는 낱말이 언뜻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만주에 있는 동북삼성(東北三省) 가운데 하나인 흑룡강성과 요녕성은 생각이 뚜렸한데 지린(吉林)이라는 말은 왜 그리 생각이 안나던지......   중국 아가씨가 여기와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보는 모양이다. 뭇 남성들이 짝사랑을 하게 생겼다. 아뭏든 건강을 잘 유지해서 돈도 벌고 공부도 해서 성공하기를 빈다.   

 

 

 

 라면집의 메뉴판이다. 한자를 알므로 뜻은 대강 짐작할 수 있겠는 데 일본글자인 카나를 읽을 줄 모르므로 헛방이지만 잔머리를 요리조리 굴려서 짐작을 해본다. 윗줄 제일 왼쪽을 보면 라이수 160엔이 보인다. 라이수라면 영어의 롸이스(Rice)일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쌀밥일테니 한공기에 160엔으로 짐작했는데 틀림없었다. 얼씨구 지화자이다. 그렇다면 이젠 여행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카나 몇개를 요리조리 끼워 �추고 영어 발음에 연결시키면 되니 알고 보면 쉬운 것이다.

 

윗줄 제일 오른쪽을 보자. 박다(博多) 라-멘 아니던가? 박다니까 일본 식으로는 하카다가 되고 라멘은 라면이니까 이해가 되는 것이다. 얼씨구, 잘 된다. 뭐 이런 식이니 일본 여행도 보기보다는 쉬운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젊은이라면 당부하건데 영어와 한자 공부를 조금씩 해두시기 바란다. 영어 공부에 앨러지(=알레르기) 현상을 일으키는 분도 많은 줄 알지만 영어 공부 해둔다고 해서 손해볼 일은 없는 것이다. 한자공부도 말할 것이 없고......   

 

어리버리하기로 소문난 나는 초등학교때 한자를 조금 배웠고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한자를 조금 익혔다. 청년이 되어서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를 보며 어려운 한자를 조금 익혀두었는데 그게 밑천이 되어 중국 배낭여행 4번과 일본 배낭여행 1번을 하는데 별무리가 없었다.

 

밖에 세워둔 붉은 깃발에도 라면 290엔이라고 쓰여져있지 아니한가? 라면 한그릇과 쌀밥 한공기를 먹는데 450엔이 들었으니 우리 돈으로 약 4000원이 든 셈이다. 나중에 알아서 깨달은 비법이 있는데 그보다 적은 돈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 방법은 나중에 사진을 첨부해서 알려드릴 생각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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