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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무섬 2 - 외나무 다리

by 깜쌤 2008. 1. 11.

 

이 사진을 잘 보면 물이 왼쪽구석에서 감아 돌아 옴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젠 다 왔다는 것이다. 바로 아래 사진은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서 확대해서 찍은 사진이다.

 

 

 

 

 

강가에 마을이 보이는가? 바로 거기가 무섬마을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평은쪽에서 걸어 간다면 사진의 오른쪽에 자리잡은 도로에서 적당히 벗어나 왼쪽 제방으로 접근하면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 가는 길이었으므로 그렇게 가면 질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무조건 도로만을 따라 간 것이다. 그렇게 도로만을 따라 가면 바로 아래 사진과 같은 장면을 보게 될 것이다.

  

 

 

 

 

 

적동리라고 씌여진 길을 따라 가면 문수를 거쳐 영주에 이르게 된다. 오른쪽 강변으로 중앙선 철로가 뻗어있고 여기에서 영주까지는 줄잡아 10km정도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수도리라고 씌여진 곳으로 방향을 튼다.

 

강에 놓여진 다리 바로 아래에서 영주쪽에서 흘러오는 물과 봉화쪽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합쳐지게 된다.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거의 두시간이 걸렸다. 자전거를 타면 한시간만에 오지 싶다. 맞바람부는 날이라면 그보다 몇배는 더 걸릴테고.....

 

 

 

 

 

 

바로 위 사진의 왼쪽 모습이다. 두개의 강줄기가 서로 합쳐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쪽이 영주에서흘러 내려오는 강줄기이다. 합쳐졌다고는해도 이름은 그대로 내성천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자동차를 사용할 계획이라면 영주에서 문수를 거쳐 중앙선 철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들어와도 되고 영주에서 와현이라는 곳을 지나 접근해도 될 것이다. 양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 모두가 다 맑아서 아직은 자연미가 넘치지만 언제까지 이 정도라도 유지가 될지는 궁금하기만 하다.

 

 

 

 

이제부터는 비포장도로였다. 마을 한가운데까지는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에 의하면 약 900m 정도라고 되어 있었다. 왼편으로는 최근에 만든 시설의 일부인 건물이 보였다. 화장실인가 싶기도 하고.....

 

 

 

 

 모퉁이를 돌자 곧 마을이 나타났다. 이엉을 엮어 지붕을 새로 이는 마을 어른 세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분들은 모두 다 연세가 높은 어른들이라고 한다. 젊은 사람 보는 것은 힘드는 모양이다.

 

 

 

 

 

짚으로 지붕을 이을 이엉을 미리 만들어 돌돌 말아두었다가 사다리를 사용해서 지붕위로 이엉을 올린 뒤 펴서 지붕을 덮는 것이다. 우리 세대에서는 어렸을 때 익숙하게 본 풍경이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 싶다.

 

 

 

 

 

이 동네는 반남 박씨와 예안 김씨가 어우러져 사는 동네라고 한다. 그래도 한때는 원근에 다 쟁쟁한 가문이 모여 사는 동네였으니 예전부터 내려오는 기와집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마을로 들어가는 이 다리는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다리 양쪽으로 깃발이 꽂혀 있으므로 표시가 쉽게 난다. 저 위에 사진에서 보여준 그 다리인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서 왼쪽 고개를 지나가면 와현 마을이 나온다.  

 

영주 시내버스 시간표에 의하면 무섬 들어가는 마을버스는 하루에 4번 정도 있는 모양이다. 와현이라는 곳 까지 와서 걸어서 들어가도 되는데 한 20분 정도만 걸으면 될 것이다. 나는 나중에 이 다리를 건너서 와현까지 걸어갔으니 거의 틀림없다고 보면 된다.

 

 

 

 

 

이 사진에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마을 앞에 현대식 건물이 한채 자리잡고 있어서 분위기를 조금 흐트려 놓기도 하는데 일부러 찍지 않았다.

 

 

 

 

 

강가 마을이어서 그런지 골목길은 거의 모두 다 모래가 섞인 푸석한 흙길이다. 비가 와도 물빠짐 하나는 좋지 싶다. 사람 흔적이 별로 없으니 괴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외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외나무 다리가 내성천을 가로 질러 놓여져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이런 다리를 많이 건너보았다.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나무 판자 위가 물기 때무에 얼어붙기라도 하는 날에는 엄청난 곤욕을 치루어야 한다. 잘못하면 미끄러져서 그대로 강물 속으로 쳐박히기 때문이다.

 

 

 

 

 

영화배우 최무룡씨라고 있었다. 그 분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면 영화배우 겸 탤런트인 야성미 만점의 사나이 최민수씨를 생각해내면 된다. 최무룡씨와 첫번째 부인인 강ㅎㅅ씨 사이에 태어난 분이 최씨라고 알려져 있다.

 

최무룡씨의 두번째 부인이 그 유명한 김지미씨인데 나중에 갈라 선 뒤 김지미씨가 가수 나훈아씨와의 결혼을 발표해서 한때 우리나라를 뒤흔든 톱뉴스가 되기도 했었다. 최무룡씨의 노래 가운데 외나무다리라는 노래가 있다. 50대 이상은 아마 쉽게 아시는 노래이리라.

 

 

 

 

 

1964년 정도에 발표된 노래인데 가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반야월씨가 가사를 붙이고 이인권씨가 곡을 붙였던 노래로 알고 있다.

 

  1절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2절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어진 그날 밤아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님을
   괴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외나무 다리라는게 바로 이것이다. 통나무를 반으로 켠 뒤 강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걸쳐 지나가게 한 나무다리이다. 그나마 제재술이 발달한 요즘 세상이니 이렇게 매끈한 외나무다리가 만들어지지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었던가? 둥글둥글하고 우둘투둘한 통나무를 잘라서는 한쪽 면에 대강대강 대충대충 도끼질해서 걸쳐놓은 다리였으니 지금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이런 고급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리 속담에도 말이 있지 않던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말이다. 오도가도 못하고 피할 길 없는 곳에서 원수와 마주치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 아니면 항복을 하고 처분대로 해 달라고 빌던지...... 

 

 

 

 

 

 

무섬동네 주민들은 양반동네여서 그런지 중간에 피할 곳을 만들어 두었다. 내가 어릴때 자란 곳에서는 그런 시설이 없었다. 그러니 한사람이 올라서면 건너편에서 건너야 할 사람은 기다려야만 했다. 겨울에 개울물이 모조리 다 얼어붙으면 차라리 건너가기라도 좋으련만 낙동강 상류지방에서는 보시다시피 물이 계속 흘러가므로 강이 꽁꽁 다 언다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다리를 놓아야 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외나무다리에서 미끄러져서 강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 구차스럼움은 말로 다 못하고 고생도 바가지로 해야만 했다. 겨울 추위에 옷은 사정없이 얼어붙으면서 꾸덕꾸덕해지지 갈아입을 옷은 없지..... 그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었기에 외나무다리에 읽힌 사연들을 세월 한참 뒤에 돌이켜보면 볼수록 정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류쪽을 보면 산을 깎아 만든 도로 모습이 보일 것이다. 나는 아까 저 산밑으로 걸어온 것이다.  

 

 

 

 

 

어리버리한 나는 옛추억을 되살리며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물에 떠내려온 나뭇잎 몇잎들이 까맣게 변색되어 물속에 가라앉았다.

 

 

 

 

 

 

자녀들과 함께 간다면 한번 건너볼 만한 다리이다. 너무 낭만 찾다가 물속에 떨어지면 곤란하니 조심하시기 바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