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이지 내가 어리버리한 것은 나도 인정한다 이거요. 가을 잠자리도 내 머리위에만 골라 앉을 정도로 내가 비실비실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이거요.
내가 뭐 감에 미친 사람은 아니오. 감이야 시장가면 얼마든지 있지 않소? 먹고 싶으면 사먹으면 되고.... 내가 쪼잔하긴 하지만 돈 천원 정도는 지갑속에 있는 날도 좀 있소.
나도 비싼 돈 주고 밭 빌려둔 것 아니오? 그러니 감밭에 감은 주인이 있는 법인데 추석 전에 그리 훑어 가는 법이 어디 있소? 집에서 이십리 떨어진 밭이니 내가 자주 가볼 수 없어서 묵밭 비슷하게 변한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그래도 주인없는 땅이 어디 있겠소? 그것도 도시 주변에 말이오.
더구나 소나무 숲 옆에 자리잡은 집에는 사람도 살지 않소? 거기다가 밭 중간중간에 채소밭도 일구어 두었으니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당신도 알지 싶소.
그나저나 내가 빌려둔 밭에 감따간 양반은 잘 잡숫고 잘 사시기 바라오. 진심에서 하는 말이오. 감이라고 하는게 체하면 약도 없고 많이 드시면 변비도 생긴다고 그러니 아뭏든 천천히 드셔서 체하지 말고 조금씩 잡숴 변비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오.
그리고 말이오,다음해엔 좀 당신이 나서서 밭을 좀 지켜 주시구려. 1년 기다린 농산물을 공짜로 슬쩍 가져갔으니 당신도 체면과 염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이번엔 용서하겠소. 사실 내가 당신 얼굴도 모르니 용서안하고 어쩌겠소만 그래도 조금은 섭섭하오.
그리고 할매 아니면 할배요. 좀 남겨놓고 가져가시지 그걸 매정하게 다 가져가는기요? 그래도 몇개 남은 감을 저를 아시는 분이 따와서 대문 앞에 놓아두고 간 것을 그래 그새 홀라당 다 가져 가뿌는기요?
배가 마이(많이) 고프셨던가 보네요. 잘 했니더 마. 잘 잡숫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소.
이 부근 집 앞에서 가져 가신 거 기억나시더래도 신경쓰지 말고 두고두고 잡수시소. 작년에 우리 모친도 그 감 잡숴보고는 맛있다 캅디더.
내사 마 농협 공판장 가가(가서) 감 한상자 사올랍니더. 오늘이 월급날 아인기요?
다음에 신문지하고 상자 몇개하고 병하고 또 뭐있노 보자...... 빈 깡통하고 내어 놀끼네(놓을테니까) 잘 챙겨 가시소. 내가 보이끼네 유리는 안가져 가데요.
할매, 할배요! 사랑합니데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사시소. 띨빵하고 얼빵한 사람이 그냥 그냥 썼니데이. 용서하시소. 이제 출근해야 되니더. 잘 계시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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