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라고 기억합니다. 정확하게는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줄 때면 작은 나비 두마리가 꽃잎에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날은 나팔꽃에서 날아오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자그마한 야생화 화분에서부터 날개짓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어떨 땐 피라칸사(학명 Pyracantha angustifolia 피라칸다, 피라칸사스)로 불리는 작은 나무 화분에 송글송글 맺힌 빨간 열매 위에도 앉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두마리가 붙어서 다니길래 어쩌면 암수 한쌍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들어서는 조금씩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녀석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둔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의 강수량은 최근 30년간 내린 강수량 가운데서는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도 이 녀석들은 용케도 잘 버텨내며 아침마다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날개 무늬와 색깔로 보아 부전나비과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아침에는 피라칸사 열매위에 앉은 채로 날아오르지를 앉았습니다. 안스러운 마음에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녀석의 모습이라도 남겨두어야겠다 싶었던 것이죠.
사진을 찍기 위해 자그마한 화분을 이리저리 들고 다녀도 녀석은 열매위에 붙어 앉은채로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다가 조금씩 날개를 비비기는 했었지요.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여서 그런지 촛점이 잘 맞춰지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사진을 20여 컷 정도 찍었는데 쓸만한 것은 몇장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녀석은 날아가지도 않고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가 오는 날은 빗방울이 삐쳐들지 않는 처마 안쪽에 놓아 둔 화분에 앉기를 좋아했던 녀석인데 이젠 생명이 다해가는가 봅니다. 혹시 거미줄에 걸려들어 짧은 생을 마칠까 싶어서 한번씩 화분사이에 쳐져 있는 거미줄을 제거해주기도 했었는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섭리는 거역할 수 없는가 봅니다.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하자 조금씩 날개를 부벼대던 녀석은 결국 날아오르고 말았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나는 피라칸사 화분을 유심히 살폈지만 녀석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일 아침, 화분에 물을 주게 되면 어디선가 날아오를지 모르겠습니다.
말도 뜻도 안통하는 미물이지만 그동안 든 정을 생각하면 영원한 이별을 앞둔 지금은 너무 안타깝기만 하기에 마음이 아려옵니다. 핏줄을 이어갈 후손은 만들어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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