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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호롱불을 켜두고....

by 깜쌤 2007. 10. 9.

 

오랫만에 호롱불을 켜보았습니다. 면소재지 기름방에서 가서 댓병 아구리까지 찰랑찰랑 차오르도록 담아 온 석유를 붓고 불을 붙인 예전 호롱불은 아니지만 불빛 속에서는 지나간 버린 낡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 올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호롱불을 켜고 밤이 맞도록 책을 보며 침묻힌 연필로 공책 정리를 하던 예전 집은 이젠 무너지고 없습니다. 살았던 동네조차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고 말았습니다.

 

 

  

 

 

 

세월따라 흩어져 버린 동무 얼굴도 기름 다해가는 불꽃마냥 오그라들며 작아지면서 희끄무레해지더니 종내엔 어디론가 다 사그라지고 말았습니다.  

 

 

 

 

 

 

흙내 나는 사랑방에 모여 앉아 횟가루 바른 화투장을 들고 민화투라도 치려면 호롱불쪽으로 돌려보아야만 했던 시절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릅니다.

  

 

 

 

 

 

오밤중에 기차역에 도착하여 승강구 계단을 조심스레 밟고 내려야만 했던 손님들을 위해 역무원 아저씨가 석유 묻힌 횃불을 들고 기름방울 뚝뚝 떨어뜨리며 역이름을 외쳤던 시골역도 이제는 이용하는 손님조차 없어 문닫을 처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아아 으악새(=억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를 잘 부르던 성두형은 어디에 터잡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얼굴 못본지가 40년이 넘었으니 이젠 기차간에서 마주 앉아 간다쳐도 모를 처지가 되었습니다. 억새는 올해도 잔뜩 부풀어 오르기만 했는데.....

 

 

 

 

 

 

 

기름이 떨어져 가물가물하던 호롱불이 다해가면 책을 덮고 자야만 했던 밤들도 많았습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촛불을 켜는 날이면 세상이 그렇게나 환해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카바이트를 가지고 불을 밝히던 날이 왔습니다.  간드레불이라고 하던 것인데 그게 그리 신기해서 카바이트 찌꺼기를 버리는 곳에 가서 뒤적거리다가 작은 덩어리를 찾아내서는 물에 담궈두고 일어나는 반응을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물속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카바이트 작은 조각이라도 찾아내는 날은 횡재를 한 것 같았습니다.    

 

 

 

 

 

 

카바이트 불을 피우던 날은 매캐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기도 했습니다. 가스가 좁은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쇄액거리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긴 했지만 카바이트 불이라도 밝힌 날은 너무 밝기만 해서 좋기만 했습니다. 

 

 

  

 

 

 

 

그땐 무작정 밤이 싫었습니다. 책을 못보고 그냥 자야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호롱이라도 방에 쏟는 날은 석유를 닦아내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걸레로 닦아내면 기름 냄새때문에 걸레를 밖에 널어두어야 했으므로 종이로 훔쳐야만 했습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귀한 공책 뒷장이 자주 찢겨져 나갔습니다.

 

 

 

 

 

 

 

 

기름 묻은 종이는 당연히 아궁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공책이 남아날리가 없었습니다. 불쏘시개로 쓰기엔 그저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장에 갔다가 세련된 모습의 호롱을 보고 덜컥 하나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옛생각 때문에 말이죠.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시골 마을은 이제 가슴속에 묻어두고 삽니다. 떠나온지가 40년이나 되었으니 기억조차 호롱불빛마냥 가물거리기만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가물거린다는 낱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살았던 산밑 폐가는 나날이 헝클어져만 가고 아는 얼굴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기만 합니다.

 

 

 

 

 

벌써 며칠째 나는 밤마다 호롱불을 켜두고 음악을 듣습니다. 어떨땐 따라부르기도 하면서 글을 씁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내린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어리

버리

 

박목월 ...  기러기 울어예는 [김성태 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