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물고기 연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신 어른이 계셨다. 최기철 박사님이시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것으로 알지만 그분이 남기신 책은 꽤 되는 모양이다. 나는 그냥 책을 통해 알게 된 분이니 인연은 눈꼽만큼도 없는 분이다.
그 분이 남긴 글을 보면 파라미에 관한 내용이 제법 된다. 그분의 글에 의하면 피라미는 3급수에서도 잘 살지만 갈겨니는 2급수와 1급수에서 잘 산다고 한다.
맞는 말 같다.
나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는 수족관이나 어항을 들여다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관심분야이기도 하고 물고기들이 가지는 환상적인 색깔에 반해서 그렇기도 하다. 배낭여행을 가서도 열대어 수족관은 어지간하면 꼭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나는 학문적인 접근 방법에는 취약점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 피라미에 관한 기본 습관이나 생태만 알고나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잡아서 어떤 방법으로 요리를 해먹을 것이냐 하는데 관심이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오전에는 집에서 빌빌 거리다가 오후 세시쯤에 피라미를 잡으러 나가기로 했다. 요즘 나는 단독 특공대 생활을 한다. 혼자 돌아다닌다는 말이다. 이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피라미 낚시를 즐길 사람도 드물거니와 그늘도 없는 엄청난 땡볕 아래에서 그냥 죽치고 기다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그러니 나는 혼자 돌아다닌다. 그게 마음 편하다.
경주가 고향 같으면 내 성격을 아는 친구라도 조금은 있겠지만 여긴 생판 타향이다. 그러니 교제 범위도 한정되어 있다. 선생 아니면 교회 친구 뿐인 것이다. 만만하게 부를 만한 어릴적 친구가 없으니 함부로 고기 잡으러 가자고 권할 처지가 못된다.
저번처럼 나는 10년 된 노란색 고물 자전거를 타고 집을 출발한다. 반바지에다가 티셔츠를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뒤 수건을 눌러쓰고 그 위에 인민군 모자 같은 구닥다리 모자를 눌러 쓴다. 이건 숫제 영락없는 패잔병 패션이다.
시선을 가리기 위해 선글래스 정도를 걸쳐야하지만 학교 교실에 두고 왔으니 지금은 방법이 없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 쑥스럽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다. 어마어마하게 높으신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쪽 팔리기"도 하지만 대책이 없는 것이다.
일단 동부사적지구 곁을 지나서 오릉 옆으로 흐르는 남천을 따라 갔다. 어디가면 피라미들이 잘 모여 노는지 평소에 잘 살펴두었으니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이젠 서두르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슬금슬금 간다. 젊었던 날 붕어 낚시에 미쳐 돌아다닐때는 새벽 2시에 자전거를 타고 왕복 50킬로미터 길에 도전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오늘 좀 못잡으면 어떠랴? 내일 잡으면 되고 그것도 안되면 내년에 잡으면 된다.
저 멀리 시가지가 보이는 장소를 찾아 슬슬 전을 펴기 시작했다. 경주 부근에 흐르는 강은 형산강(兄山江)이지만 시내 부근에서 몇개의 지류가 합쳐진다. 이름하여 남천, 북천, 모량천이라는 것이고 그게 다 합쳐진 것을 형산강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형산강을 아예 서천으로 부른다. 내가 사는 동네는 동천동이니 동서남북이 다 있는 셈이다.
저쪽에 남산이 보인다. 제법 풍치가 그럴듯하지만 막상 물속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맑은 물이 흐르던 그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싶다. 강바닥에는 물때가 낀 잔자갈들이 즐비하다.
물이 맑으면 강도래 같은 종류들이 바닥을 기어다니며 살터이고 다슬기가 좌악 깔려 있을 것이며 버들치같은 어류들이 판을 치며 돌아다닐 것이다. 2급수 정도만 되어도 갈겨니가 우세를 점하고 있겠지만 여긴 피라미가 더 많다. 그러니 정 떨어지기에 딱 알맞다.
저번과 같은 요령으로 줄낚시를 설치해둔다. 설치하자말자 녀석들이 떼거리로 덤비기 시작했다. 딱 한시간 반만에 21마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목표 달성이다. 더 머뭇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다. 오늘 장소에는 그늘도 없으니 미련 부리지 않고 일어서기로 했다. 바닥에 물때가 너무 많으니 더 버티고 있을 이유조차 찾기가 어렵다.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한다. 물고기 배는 개울에서 다 따놓았으니 이젠 말려서 튀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일은 튀김을 만들어 보아야 한다. 살다가 살다가 별짓을 다 해본다. 요리 못배워 둔것이 너무 아쉽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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