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족보 있는 개를 하나 구했다. 혈통도 거룩한 진도개 암컷이었는데 족보까지 딸려있는 녀석이어서 애지중지하며 기르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 자리잡은 가정집에서 개를 기른다는 것은 이웃들에게 숱한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므로 시골집에 보내드렸다.
족보있는 개이고 상당히 비싼 녀석이니까 잘 길러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맡겨 놓은 뒤 시골 갈때마다 잘 자라는지 살펴보았다. 발목 아래로는 흰색 털로 덮혀서 일명 버선발을 가진 그 녀석은 자라면서 얼굴이 진도개 특유의 오각형으로 변하기 시작했는데 제법 누르끼리하게 털갈이까지 해서 본격적인 진도개 형상을 갖추어 나름대로 기대가 컸었다.
중(中)개가 넘어서자 이젠 제법 어른 모습으로 되어 짖는 소리도 멍멍 하는 소리에서 컹컹으로 변했었는데 어느날 시골가는 길에 확인해보았더니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어무이요, 우째 진도개가 안보이는기요?"
"그 자슥이 니 아부지를 물라캐가(물려고 해서) 내가 마 넘기�다."
"어데로 넘�는교?"
"개장수한테 주지 누구한테 주겠노?"
아이쿠머니나, 그 귀한 진도개가 그런 식으로 사라지다니. 틀림없이 개소주로 변해서 뱃속으로 들어갔으리라. '아무리 혈통이 좋고 귀한들 무엇하랴. 따지고 보면 개는 개가 아니던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며 애써 위안을 삼고 말았지만 허무한 마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이젠 복날에는 복수박을 먹는 것으로 떼워야겠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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