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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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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맛을 찾아서

합천 할매식당 - 칼국수집

by 깜쌤 2007. 7. 16.

 

 내 자신의 그릇이 작은 탓이겠지만 나는 요즘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기만 하다. 그 묵직함은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서 내가 봐도 요즘 내 얼굴은 어두운 편이다. 평소 남 앞에 잘 나서지도 않거니와 모임에 가서도 조용히 남의 이야기만 듣는 모습으로 살아왔으니 그리 호감이 가는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아버지께서 입원하신지가 열흘이 되었으니 몸과 마음이 서서히 지쳐가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작년 이후로 입퇴원하기를 일여덟번 했고 그때마다 작은 수술 큰수술을 한두번씩 반복했으니 이제는 수술 횟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버겁기만 했다.

 

평소에 짠돌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버티는 사람이니 병간호를 위해 병원을 드나들때도 나는 어지간하면 금식하는 셈치고 밥먹는 것을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창때는 안먹고 버티는 것도 별 탈없이 견뎌내었지만 이젠 그게 힘든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세월과 매질 앞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들어맞는 처지가 되었다. 간단히 한끼 먹고 싶은 마음에 병원 부근 대구 서문시장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허름한 가게 하나를 찾아내고는 불쑥 들어섰다.

 

한때는 최고의 상권을 자랑하던 유서깊은 서문시장이었지만 어찌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 도심에 몰려살던 사람들이 부도심으로 대거 이동한 탓도 있겠고 대형 판매장이 여기저기 파고든 덕분이기도 하겠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 숫자가 확실히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다.     

 

 

 

 

 서문시장 끝자락에 보니까 먹자골목 비슷한 곳이 눈에 띄였다. 무심코 들어가 본 골목인데 국수만 파는 가게가 있기에 들어서본 것이다. 가게넓이가 한평정도 되는지 모르겠다. 도시미와 세련미에 철저히 몸에 배인 요즘 젊은이들은 출입 자체를 자제할 것 같은 골목 깊숙한 안쪽에 허름한 가게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골목에서 바로 한걸음만 슬쩍 걸쳐들여놓으면 곧바로 식당바닥이 된다. 바닥엔 사람 셋 정도가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게 되어있는 방바닥에는 앉은뱅이 테이블 세개 정도가 달랑 놓여있다. 그게 다이다.

 

가게가 위치한 환경에 비해 내부는 청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뉴판을 보니 칼국수와 콩국수 두가지 뿐이었는데 비오는 장마철이면서도 후지덥근한 날씨덕에 칼국수를 시켜보았다. 지나치게 차가운 것을 먹으면 곧바로 뒤통수가 무지하게 땡기는 현상을 나타내는 내 신체이므로 무작정 차가운 것을 먹는 것은 항상 자제하는 편이어서 따끈한 국물을 원한 것이었다.

    

 

 

 

 공간이 좁아서 그런지 조리는 골목 한구석에서 하는 것 같았다. 골목 한구석이라니까 저 어디 멀리가서 해온다는 말이 아니고 식당 바로 앞 골목 한켠에서 조리를 한다는 말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칼국수 한그릇을 내어오시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국수요리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어서 하루 세끼 모두를 밀가루 음식이나 면으로 주어도 투정 안부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전문가 수준의 고수는 아니지만 국수맛 정도는 조금 알아볼 정도의 기본 실력은 갖추어져 있지 싶다.

 

사실 음식맛이라는게 묘한 것이다. 내 입에는 맛이 있을 수 있지만 남이 먹기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먹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 분위기,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평가 자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충분히 잘 알기에 함부로 좋다 나쁘다거나 맛이 있다 없다고 평을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인 것이다.

 

혹시 당신이 여름날 저녁 마당 한가운데 멍석을 깔고 그 위에 판을 펴고 온가족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어머니께서 직접 두손으로 밀어서 만든 손칼국수를 잡숴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한번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바로 그맛이다.

 

초록으로 익어가는 애호박 한덩어리를 송송 썰어서 적당하게 익혀 고명을 만들고 아직 매운맛이 덜오른 탱탱한 빨간 고추사이에 푸르딩딩한 풋고추를 섞어넣어 잘게 썬뒤 간장에 풀고 생마늘 다진 것을 함께 넣은 뒤 고소한 참기름 한방울 똑 떨어뜨린 그런 시골집 양념간장을 늘상 그리워 하는 분이라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양도 아주 푸짐하게 준다. 한그릇 훌훌 들이키면 배가 벌떡 일어서는 것은 덤이다. 함께 내어주는 김치 몇쪼가리와 풋고추와 된장도 맛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집 된장은 노랗게 정말 잘익었다. 국수 건더기를 한입 가득 구겨 넣은 뒤 후루룩 삼키고는 풋고추를 된장에 퍽 찍어서 베물어보시라. 약간 매운 맛이 느껴지거든 적당하게 따슨 국물을 슬쩍 마셔보기 바란다. 엄마 생각이 저절로 날 것이다.

 

이집 국수는 퍼진 국수가 아니다. 찰진 맛과 쫄깃한 맛이 난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푹 퍼져버린 국수는 이미 국수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국수를 삶아서 찬 물에 건져 올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맛이 있다. 혹시 이 글을 보시고 찾아갔다가 입맛에 맞지 않았다고 해도 돌멩이는 던지지 마시기 바란다.

 

벽면 한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모모 방송국 출연 사실이 게시되어 있으니 그쪽으로 돌멩이를 날려 주시면 된다. 음식맛은 철저히 자기 주관적이므로 개인차가 심하지만 방송에 나올 정도로 만인이 공감한 맛이니 크게 실망은 안하지 싶다.  

 

     

 

 

 상호와 전화번호도 사진속에 다 나타나있지만 사진 탐색이 잘 안되는 분을 위해 다시  정리해드린다. 한번 더 강조해드리는데 나는 그분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임을 확실하게 밝혀둔다.

 

상호 : 합천 할매식당

전화 : (053) 252 - 2596.

위치 : 대구 서문시장 끝자락(동산병원 끝머리 건너편) 골목 속에 있다. 내가 대구  시내 지리를 잘모르므로 어떻게 찾아가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기가  좀 그렇다.  

 

한 일주일전에 그집에 들렀다가 맛있게 국수를 먹고 나올때 나는 최근들어 확실하게 늘어버린 치매끼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산을 남겨두고 나왔었다.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갔더니 놀랍게도 나를 기억하고 그 우산을 되돌려주시는게 아닌가? 주인 아주머니의 눈썰미와 정직함이 더욱 돋보였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