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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보리밭가 송아지

by 깜쌤 2007. 5. 24.

 

 모처럼 하루 쉬는 날을 맞았습니다. 한달에 두번 노는 토요일이 있긴 해도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으므로 그날 오후는 매인 몸이나 다름없으니 주중에 노는 석가탄신일 같은 날이 진정한 휴식시간인 것이죠.

 

어디 한군데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일기 예보상으로 바람이 심하게 불고 비가 온다고 하기에 취소를 하고 대신 자전거를 타고 나섰습니다. 자전거는 경주역 앞 자전거 보관소에 세워두고 시내버스를 타고 통일전까지 갔습니다.

 

남산 마을을 거쳐 칠불암에 갔다가 남산을 넘어서 반대쪽으로 내려올 심산이었습니다. 칠불암 가는 길에 보리밭을 만났습니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은 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릅니다. 

 

 

 

 

 밭 한쪽엔 약간 덜익은 청보리도 보였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누런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보리타작을 해본 사람은 알지만 타작 한번 하고 나면 보리 까끄러기때문에 죽을 고생을 다 합니다.

 

 

피부가 민감한 나는 적어도 한달정도는 긁고 살았습니다. 타작기계에 보릿단을 대고 타작하는 방식이었다고는 해도 천지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보리 까끄러기를 피할 재주는 없었습니다.

 

 

 

 

 꺼먼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습니다. 보리를 삶아서 보관해두었다가 밥을 할때 가마솥 밑에 깔고 쌀을 조금 넣은 뒤 밥을 짓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언제 보얀 쌀밥을 싫컷 먹어 보는것이 소원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긴긴 여름날 꾸덕꾸덕 말라버린 보리밥을 우물에서 갓 길어온 찬물에 말아서 멸치 서너마리와 고추장으로 끼니를 때웠던 날들을 잊지 못합니다.

 

 

 

 

 처녀 총각들은 보리밭 사연도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젠 다 옛날일이 되었지만 아스라한 기억 한쪼가리 안고 사는 사람도 제법 있지 싶습니다.

 

 

 

 

 박화목님이 글을 쓰시고 윤용하님이 작곡을 하셨던 보리밭이라는 가곡이 생각납니다. 가수 이정선인가 하는 분이 대중가요 비슷하게 부르기도 하셨던 곡 말입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밭을 만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넋을 놓고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지나가버린 많은 날들이 되돌아 와서 제 앞에 섰습니다. 등장인물들 얼굴이 흐리다는 것이 제일 가슴 아픕니다.

 

 

 

 

 보리밭 한켠엔 감자꽃 가득한 감자밭이 자리 잡았습니다. 감자꽃 본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보리밭 옆에 자리잡은 작은 축사에서 순해 빠진 송아지 녀석들이 슬그머니 다가 옵니다. 이렇게 선하고 착한 눈망울을 가진 짐승들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외양간 속에서 또 한마리가 나와서 다가 옵니다. 정지용님의 향수가 생각납니다. 꼬뚜레도 뚫지 않았으니 아직은 미성년자인 셈이네요.

 

 

 

 

 이 녀석은 아직 눈도 뜨지 않았습니다. 어떤 팔자가 기다릴지는 모르지만 잘 살기를 바라며 보리밭 옆 축사에서 물러섭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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