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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외숙모를 보내며

by 깜쌤 2007. 5. 15.

 

 

어제 15일 기차를 타고 시골로 갔습니다. 외숙모를 보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13일 주일 낮 오후 찬양예배중에 문자 메세지가 들어왔습니다. "외숙모 금일 별세"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조부, 삼촌, 사촌, 이모, 고모, 외조부, 외조모 얼굴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가까운 혈육이라고는 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와 그 가족, 외삼촌과 외숙모 한분과 외사촌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외숙모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소중한 외숙모가 돌아가시다니.....  

 

 

 

그 전날 병원에 다녀왔지만 특별휴가를 얻어 다시 장지로 갔습니다. 부모님께서 계시는 시골은 언제봐도 평화롭습니다. 날이 흐려서 그런지 앞산 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나야할 팔공산 봉우리들이 오늘은 보이질 않습니다.

 

 

 

 

 

 

집에 들러 부모님을 찾아 뵌 뒤 외숙모가 수도 없이 걸어서 넘으셨을 산길을 따라 걷습니다. 오늘따라 무덤위에 자라는 야생화들이 눈에 밟힙니다.

 

 

 

 

 

 

 고개길엔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향내가 길가에 가득하지만 향기를 즐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외숙모는 이 길을 수도 없이 걸어 넘으시면서 장을 보셨을 것입니다.

 

 

 

 

 

장지에 도착하니 이미 준비를 다해두었습니다. 외숙모께서 영면하실 장소입니다. 양지바르고 길에서 가까워 긴잠을 주무시기에는 좋은 아름다운 터입니다.

 

 

 

 

 

 대구 병원에서 여기까지는 꽃상여를 타고 오셨습니다. 저와 성이 같아서 특별히 정을 더 내셨던 외숙모였습니다.

 

 

 

 

 

 

 11시가 넘어 하관을 하고 드디어 봉분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젠 시골에도 사람이 없어서 봉분을 만드는 일도 기계가 다합니다.

 

 

 

 

 

 

 상주들과 백관까지 다 와서 다집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일부러 장지까지 찾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친정 부모님 산소를 돌보십니다. 저도 나중에 저런 모습을 가지게 되겠지요.

 

"어무이요!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 사시소."

 

소나무 뒤에 숨어서 사진을 찍으며 슬며시 눈물을 훔쳤습니다. 

 

"외숙모도 편히 쉬시소........"

  

 

 

 

 

산천은 그대로지만 터잡고 사는 사람들은 자꾸 바뀌기만 합니다. 새생명이 태어나고 늙은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고........ 인간사가 그런가 봅니다.

 

 

 

 

 

해마다 꽃이 피고 지듯이 우리 인생길도 피었다가 시들고 지는 일을 반복하는가 봅니다.

 

 

 

 

 

저 멀리 뒷산 골짜기에 부모님과 외숙모님을 남겨두고 나는 다시 기차를 탑니다. 바둥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다시 삶의 터전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지요.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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