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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같이 늙어가지만......

by 깜쌤 2007. 4. 29.

 

 학창시절부터 유달리 어리버리했던데다가 많이 모자라는 사람이었던 내가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며 어찌어찌하다가 선생이 되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먼저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 앞에서 별것도 아닌 작은 지식을 파는 先生이 된 것이지요.

 

처음에 5학년을 가르쳤는데 그 아이들을 데리고 그 다음해에 다시 그대로 올라가서 졸업을 시켰습니다. 벌써 마흔이 넘은 장년이 되었는데 오래 전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일에 모교에서 모임을 가지려고 하니 잠시 시간을 내서 꼭 와주십사하는 부탁이었습니다. 주일 낮엔 항상 매인 몸이지만 다행히도 시간 조정을 잘만 하면 짬을 내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한학기 뒤에 첫발령을 받은 아가씨 선생님을 아직도 잘 알고 있는지라 시내에서 만나 같이 차를 타고 첫부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분도 첫발령을 받으신 분이었는데 지금도 예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고왔는지 모릅니다.

 

 

 

 

 

교정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뜨인 것은 이제는 아이 아버지 어머니가 된 제자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었습니다. 운동장 한모퉁이에 그득했습니다. 모두들 먹고 살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하지만 이제는 폐교가 된 학교 건물이 마음을 아리게 했습니다. 암만 봐도 아쉬움이 큽니다.

 

 

 

 

 

현관도 그대로이고 예전 건물도 그대로이지만 아이들만은 흘러보낸 세월만큼 장성하여 이 사회를 버텨주는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졸업 앨범을 꺼내두고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봐가며 지금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해보았습니다.

 

 

 

 

 

앞 오른쪽으로 경주 남산이 보입니다. 학교 앞 저수지에는 수초무더기를 따라 낚시꾼들이 여기저기 붙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사셨던 학교 사택은 기와집에서 슬라브 주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분들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되셨을 것입니다.

 

 

 

 

 

아래에 보이는 교실에서 3년을 생활했습니다. 한 학년이 약 70명 남짓햇던 작은 학교였지만 이제 장성한 그들이 어리석고 부족한 나를 그래도 담임선생으로 인정하여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었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실력도 별로였고 무식해서 잘 가르쳐주지도 못했던 나를 찾아주는 그들이 너무 고맙기만 했습니다. 모두들 순수했던 예전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과정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얼굴에 고이 남아있었습니다.  

 

  

 

 

 

 

학교를 구석구석 둘러보니 곳곳에 옛날 흔적이 조금씩 남아 있었습니다.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는 산기슭 밭 한모퉁이에는 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고 간단한 게임을 하는 그들이 너무 아름다워보였습니다. 이럴 땐 슬며시 비켜 주는 것이 나이먹은 사람의 도리입니다.

 

 

 

 

 

돌아나오는 길, 교문 앞에서 모두들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장년이 된 씩씩한 그들 얼굴 위로 화장기 없어도 곱기만 했던 여학생들과 남자 아이들이 네시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앳된 모습들과 함께 겹쳐 보였습니다. 모두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빌어봅니다.

 

오늘 행사를 주관했던 제자가 행사를 마치고 다시 삶의 일터로 올라간다는 전화를 해왔습니다. 제자들이 만들어 준 작은 기념품과 꽃다발도 아름다웠지만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더욱 더 마음에 와서 닿았습니다.

 

 

그러는 나는 나를 가르쳐 주신 많은 은사님들의 크신 은공을 까마득히 잊어가면서 정신없이 살아왔으니 그저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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