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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세상헤매기: Walk around the world

방비엥-그 환상의 세계를 찾아서

by 깜쌤 2007. 2. 10.

                      방비엥 -  그 환상의 세계를 찾아

 

 

                                                      

 

 

중국을 한번이라도 여행해본 사람들은 흔히 계림을 못 잊어하며 여행지로 적극 추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옳은 말이다. 전통 중국화나 우리가 흔히 동양화라고 부르는 그림에나 등장할 것 같은 기기묘묘한 석회암봉우리들이 하늘로 치솟아있는 가운데,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어부가 강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거기다가 물소 등에 앉아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가는 신선 비슷한 노인네가 있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이상향이리라.    

 
 그런 풍경에 실제로 근접한 곳이 있다면 바로 중국 남부의 계림(桂林)이다. 계수나무 꽃향기가 흐드러진 가운데 석회암 지질 특유의 수직 봉우리들이 하늘을 이고 있는 곳! 그랬기에 예전부터 계림산수천하갑(桂林山水天下甲)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계림 같은 곳이 세상 한 곳에만 존재한다면 지구는 너무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비쳐질 수밖에 없다.

 

 라오스는 사실 우리가 가보기 어려운 나라였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였는가 하면 이웃에 존재한 강대국 타이, 월남, 중국에 끼여 변변한 자기 목소리 한번 내어보지 못한 나라로만 인식되던 나에게 라오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1999년 7월, 처음으로 라오스를 여행하던 그날은 태국 수도 방콕의 장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심야고속버스에 몸을 싣고는 피곤에 못 이겨 좌석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말았다. 함께 배낭을 매고 경주에서부터 동행했던 대학생 청년은 누적되는 피로에 눌려 벌써 몇 번씩이나 코피를 쏟았다.

 

새벽에 라오스와 태국 국경 도시에 도착해서는 그 길로 메콩강을 건너 라오스 입국 비자를 신청하고는 낯선 곳으로 발을 디뎌놓았다. 입국장에서부터 처음 만나는 모습은 가난에 찌든, 그러면서도 한없이 순박한 정겨운 얼굴들이다. 라오스의 수도인 브엥티엥은 우리니라의 작은 도시 정도의 수준을 지닌 도시이다.


 브엥티엥 시가지를 쏘다니다가 메콩강의 일몰을 감상하고 나서는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열대지방 특유의 구질구질한 비를 맞으며 1960년대에 우리 나라 시골길을 누볐던 구식 버스에 몸을 싣고 방비엥을 향해 출발했다. 라오스를 보고 나서는 캄보디아로 내려가도록 일정을 잡아둔 터라 그리 많은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서두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6시간의 버스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곳이 바로 방비엥이다. 배낭 여행자들이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 라오스 판"을 구할 수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검색한 자료들을 밑천 삼아 떠난 여행길이다. 방비엥 현지에서 제일 먼저 마주친 사람들은 노랑머리 백인 청년들이었다.


 백인 청년들이 바글거린다는 것은 여기가 이상향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동안 쏘다녀 본 경험으로 알게된 사실은 지극히 물가가 싸고 아름다운 곳에는 반드시 백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보에 밝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 한국인들은 주로 방콕 같은 대도시나 푸켓섬 같은 관광유흥지를 헤매고 다닌다. 그러나 일본인만 되어도 그런 대도시나 관광지에 머무르지 않는다. 남이 근접하기 어려운 오지로 떠나는 것이다.
 
 방비엥의 산수는 계림 이상이다. 석회암 특유의 카르스트 지형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도시를 둘러싼 가운데 너른 벌판이 분지의 한가운데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다. 마침 비 내린 뒤끝이라서 비안개가 봉우리에 묻어 오르고 있고 산봉우리 사이를 흐르는 맑은 강물은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녁 연기가 고상(高床)가옥 사이로 솟아오르는 사이로 가난한 사람들이 저녁 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화장실 겸한 욕실과 침대 3개가 딸린 2층 방 하나가 하룻밤에 5달러를 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우리 나라 돈으로 하루 만원만 있으면 충분히 여행이 가능한 법이다. 하루 10달러 정도면 먹고 자고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것까지 문제없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현지인들이 모이는 시장에 나가 보았다. 우리들 시골에서 펼쳐지는 재래 시장과 같은 정겨움과 소박함이 가득한 곳이 시장이다. 사고 파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이국적이다. 바나나 잎에 싸서 찌거나 익혀서 파는 찰밥 비슷한 밥이 있는가 하면, 바나나를 숯불에 구워 팔기도 한다.

 

돼지고기는 대단한 인기상품 같다. 좌판에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놓고 즉석에서 끊어서 파는데 말 그대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극채색의 화려한 옷을 입은 고산족(高山族) 아낙네들이 들고 온 악세사리나 소품들의 화려함과  순수함은 이국에서 느끼는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말은 안통해도 가볍게 던지는 미소만으로 모든 상거래를 끝낼 수 있으니 조그마한 어려움이라도 있을 수 없다.

 

 가벼운 배낭 차림으로 나선 골짜기 트레킹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 강을 건너 시골길로 들어서면 나보다 더 까만 피부를 자랑하는 아이들이 "사왔디"를 외쳐준다. 현지어로 "안녕"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을 그들은 이방인에게 스스럼없이 던지는 것이다. 계림을 능가하는 산수와 순박한 사람들이 방비엥 지방을 배낭 여행자들에게 지상 낙원이라는 별명으로 인식되게 해주었으리라.


 자전거로 하루 종일 하이킹을 하기도 해보았다. 현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해 보기도 하고 시골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가보기도 한 그 순간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혹시 동남 아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있다면 난 기꺼이 라오스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 혼자만의 의견이라면 편견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만나본 숱한 백인들이 라오스를 추천해 왔다. 그 안에서도 다시 유네스코 지정 문화 유산 도시인 루앙프라방과 지상 낙원 방비엥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제 다시 배낭을 만지작거리며 다시 한번 그 곳에 가볼 꿈을 꿔본다.


 "잘 자! 방비엥 꿈 꿔!"          

 

 

 

 

(이 글은 몇 년 전에 어떤 곳에서 원고를 좀 내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설프게 휘갈려둔 것입니다. 그 뒤로 라오스를 두번 더 가보았습니다. 지난 여름 메콩 강가에 자리잡은 라오스 섬에 슬쩍 들어간 것까지 치면 모두 네번의 방문이 됩니다. 루앙프라방방비엥은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간에 스쳐 지나간 카스도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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