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대전 부르스

by 깜쌤 2007. 2. 10.

 

 

 소년은 한여름 땡볕이 내리퍼붓는 바위 위에서 쓰러져 있었다. 말라리아라고 알려져 있던 무서운 병인 하루걸이에 걸려 조퇴를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개마루 바위 위에 앉아 조금 쉰다고 하는 것이 그대로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소년의 자그마한 몸뚱아리가 뜨거운 햇빛에 녹아버려 일어날 힘이 없었지만 무엇인가 서늘한 기운을 느껴 본능적으로 눈이 떠졌던 모양이다. 소년을 지긋이 내려다보는 수염 터부룩한 얼굴에선 역겨운 막걸리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야, 일마야. 니 땡삩에 그라고 누워있으마 죽는다. 일나라. 집에 가야제."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뜬 소년은 눈앞에 벌어진 장면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섭기만 했던 용환이, 용환이 아제가 소년에게 얼굴을 대고 말을 걸어온 것이다. 다시 눈을 깜빡거리며 확인해봐도  틀림없는 용환이었다. 어서 일어나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짜슥아, 그라고 누워 있으마 죽는기라. 이 자슥아 일나라. 빨리 일나가 내 따라 온나. 지게 뒤라도 잡고 온나. 니 실어갈 힘은 나도 없는기라. 일마야."
  

 

 


부자로 소문난 술도가 집 아들 승삼이를 따라 어쩌다 한번 가본 술도가 속엔 막걸리를 담아두는 거대한 항아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서 있어서 거대한 기차 터널 입구를 보는 듯 했다. 술도가를 감싸고 있는 막걸리 내음이 텁텁해서 그리 상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용환이 아저씨의 입에서 풍겨 나오는 술 냄새는 사람을 끄는 그 어떤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그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경찰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경찰이었는지 아니면 앞잡이였는지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지서(당시에는 그렇게 불렀던 모양이다)에 근무하던 조선인 사환이나 촉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놈들이 물러가고 간 뒤에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몰매를 엄청 맞아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하여튼 살짝 맛이 간 그는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몸이 되어 시골 산골짜기 막걸리 집 주모가 부탁하는 막걸리를 지게에 지고 배달하는 일을 하며 사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플라스틱 물통이 없던 시대이니 막걸리를 오늘날의 나무 맥주통 비슷한 통에다가 위로 두세 개를 얹고 양옆으로 두 개를 달아 산길 수십 리를 걸어야 하니 중노동 중에 중노동을 하며 사는 셈이 된 것이다. 그는 배달을 나가기 전에 꼭 막걸리를 대포 잔으로 서너 잔은 걸쳤던 모양이다.


 얼굴이 불그레해지고 눈에는 살짝 핏발이 감돌아서 혀가 약간 꼬일 정도가 되어야만 술 힘으로 산길을 걸을 수 있었던가 보다. 그런데 그가 배달 나가는 시간이 공교롭게도 소년이 학교를 나와 고개를 넘어 집으로 가는 시간과 비슷하게 일치했다.


 "봐라, 느그들 집에 가나? 그라마 같이 가자 마."
 "좋니더. 아제가 먼저 가소. 우리는 뒤따라 감시더."


그렇게나마 대꾸를 할 줄 알았던 녀석은 넉살이라도 좋아서 앞으로 늘푼수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들이었고 소년은 그런 말조차 할 줄 몰라 그냥 겁부터 내고 뒤로 삐질거리며 빠지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 모습이 그에게는 더욱 더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짜슥들아. 내 먼저 간다. 따라 오너라이."

 

 
허리가 휘어지도록 엄청나게 무거운 먹걸리 통을 매단 지게를 지고 고개 길을 휘적휘적 올라가는 용환이 뒤를 따라가며 소년의 친구들은 장난기를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소년의 친구들은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멀찌감치 뒤쳐져 뒤따라가며 놀려대기 시작한다.

 

놀리는 소리라야 기껏해야 '용환이 바보'정도였고 어쩌다가 도가 넘는 소리를 해대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소리에 개의치 않고 힘들게 고개를 올라가기만 했었다.


 어쩌다가 성질이 뻗는 날은 지게를 내려놓고 작대기를 지게에 걸쳐놓은 뒤 돌멩이를 손에 쥐기도 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향해 던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가 자주 부르는 노래가 '잘 있거라 나는 간다'로 시작하는 노래였다. 소년은 용환이 뒤를 따라가며 그 노래를 배웠다. 아니 저절로 익혔다고 해야 것이 바른 말이리라. 

 


그날 어찌어찌 해서 고개 넘어 집에까지 온 소년은 내리 며칠을 끙끙 앓아대기만 했다. 읍내에 나가신 아버지께서 사오신 '금계랍'이라는 말라리아 약을 먹고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그 해 여름은 내내 비실대기만 했다. 

 

그 이후로 소년은 어쩌다 마주치는 용환이 뒤를 따라갈 때마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서 흥얼거렸다. 대전이 어디인지 목포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도시 이름이라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6학년 겨울방학 때 소년의 가족은 먼 곳으로 전근간 아버지를 따라 기차로 두시간 거리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고 난 뒤 용환이 이야기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같은 중학교로 진학한 친구가 하나밖에 없었으니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 산골 이야기는 전해들을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서 다시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이젠 가끔씩 소식을 얻어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이 봐라. 니 용환이 알제? 얼마 전에 죽었다 아이가? 막걸리 배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기차에 받혔다 카드라. 기차에 뛰어들었는지 술에 취해가 정신이 없어 그랬는지는 몰라도 기차에 받혀 죽었다카데. 개죽음 한기라."

 

 


 그 날 소년은 집으로 돌아오는 장거리 통학열차 안에서 빈자리를 골라 앉아 나지막한 소리로 혼자 용환이가 즐겨 부르던 그 노래 "대전 브루스"를 불러 보았다. 작은 소리지만 혼자서 노래부르기가 그 날처럼 힘들었던 날도 없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 발 0시 50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하건만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6

 

 

 어리

 버리

 

 

'사람살이 > 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교 은사님께~~  (0) 2007.05.16
3원짜리 연필  (0) 2007.02.19
후회  (0) 2007.01.28
왜 꽃에 손을 대니?  (0) 2006.10.07
할머니를 그리며  (0) 200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