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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왜 꽃에 손을 대니?

by 깜쌤 2006. 10. 7.

 친구는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았기에 한쪽 다리를 아주 심하게 절었다. 그래도 그 친구 표정은 항상 밝았다. 운동 신경이 발달해서 여러가지 운동을 잘 했고 다리를 절면서도 열심히 달리기를 하곤 했다. 몇집 안되는 작은 동네라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끼리 날마다 어울려 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워낙 놀 사람이 없으니 형이고 아우고 할 것 없이 같이 어울려 노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이 놀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건 여자들이었다. 동네 누나들은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 남녀간의 내외가 심하던 시대였으니 말도 잘 하질 않았다.

 

친구에게는 복스럽게 생긴 누이가 있었는데 저녁때만 되면 꼭 내친구를 찾아 나섰다. 대가족이 살던 때였으니 온 식구가 다같이 밥한끼 먹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 우리 집만 해도 저녁때만 되면 어머니는 나를 찾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친구는 은연중에 우리가 자기 집에 놀러 오는 것은 곤란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나는 그것을 참 이상하게 여겼다. 왜그런지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골 동네에는 저녁마다 모이는 집이 따로 있다. 여자들은 누구네 집, 총각들은 누구누구네 집, 아이들은 누구네 집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저녁을 먹고나면 각자 자기들이 모이는 곳으로 흩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모여들기 위해 놀러가는 것을 가지고 보통 '마실(마을) 간다'라고 말했다.

 

 

 

 

 

친구네 집에 가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한동네에 같이 사는 여자들은 어쩌다가 가보는 모양이지만 남자들은 가 본 친구가 거의 없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핏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집에 하반신을 못 움직이는 노처녀가 있다고도 했다.

 

친구 어르신은 동네에서 제일 연장자였고 엄격하신 분이셨다. 친구와는 나이차이가 제법 많이 났다. 친구 어머님도 마찬가지셨다. 내 친구 어머님은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 말자 나에게 말을 높이셨다. 아무리 말씀을 낮추시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대학새이 되마 어른이시더. 그라이(그러니까) 말을 올리는게 당연한 일이시더."  

 

 

 

 

 

 고등학교 때였다. 시험을 앞두고 있었으니 나는 호롱불 밑에서 밤새워 책을 보고 있었다. 몇시가 되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사람 울음소리가 집 뒤로 펼쳐진 밭쪽에서 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했지만 한 십여분 동안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를 반복했으니 틀림없는 사람 울음소리였던 것이다.

 

그것도 보통 울음소리가 아니라 아주 숨죽여 우는 소리 같았다. 내가 공부하던 방 뒤로는 옥수수 밭과 콩밭이었고 뒤로는 담장없는 집 한채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뒷집을 살폈다. 불이 꺼진 모습이었고 부부싸움하는 기척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방문을 열고 밖을 보며 누구냐고 물었을땐 아무 기척이 없었다. 손전등을 찾아 콩밭과 옥수수밭을 비쳐 보았지만 사람 그림자는 커녕 짐승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보았다.

 

  

 

 

 

"애비야, 니 말이다, 가 알제?"

나물을 다듬던 어머니는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다.

"누구요?"

"저번에 우리 동네 살던 누구누구 말이다."

"예."

"가 죽은거 니 알제?"

"예."

"이제사 가가 와죽었는지 이유가 밝혀진기라. 가가(그 애가) 그때 자살했다 안캤나? 가들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파가 민날 미칠(몇날 며칠)을 울고 그랬거등.......  가가 죽을 때 임신한 몸이었는기라. 니가 학교 다닐때 밤에 사람 우는 소리 들었다캤제? 바로 그날 밤에 총각이 가를(그 아이를) 우째삤는기라...... 그때는 애비가 어렸을때라 내가 이야기 안했따마는 이제는 니도 애 애비가 됐으이끼네 하는 이야기라. 한꺼번에 두 목숨이 죽어삔는기라. 참 모질제? 우째 그런 일이 다 있는지.....아이고, 참......"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차셨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가가 숨끊어지기 전에 뱃속에 든 알라 아빠가 누군지 이야기한기라. 그게 저어 웃동네 누구라카데. 그 머스마가 가를 좋아한기라. 그래가 어느 날 밤에 만났을 때 고마 일을 저질러삤다 카는기라. 그 후로 아가씨 배는 불러오제하이끼네 야가 민날 미칠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죽어삔거 아이가......... 참 무서운 일을 했는기라. 그 총각이 누구 아이가? 니도 쪼매 아는 그 사람 맞제?"

"예, 조금 알지요."

"그 총각은 훗날에 결혼했다 아이가? 그 양반은 그 이후로 되는 일이 없다 카데. 장사를 해도 망하고..... 저번 그 직장에 있다가 나와가 하는 일마다 안되디마는 요새는 형편이 그리 어렵다 카드라."    

 

 

 

 

 

"가들 집 이제는 다 이사간거 니도 알제?"

"예."

"애비 친구 중에 다리 절던 누구있제. 그 양반 큰누구(=누나)도 죽었다카드라. 애비 친구 어른은 돌아가신지가 제법 된는기라. 친구 큰 누구도 나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방에만 있었다 아이가? 애비는 큰 누구 얼굴 한번 본적이 없제? 인물이 얼마나 참했는지 모르제? 그 아가씨가 처녀때는 그리 인물이 뛰어났다카데. 아가씨 나이 열 여섯인가 그때 쯤에 글쎄 단오날에 그네 시합에 나가가(=나가서) 그네 뛰다가 떨어져 허리밑으로 마비가 왔다 카데. 이 이후로는 그냥 방에만 들어앉아 있었다 아이가? 그라이끼네 동네 남자들은 거기 놀러도 못간거 아이가?"

 

나는 그제사 모든 일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평생 방에만 박혀 살던 그 큰 누구(누나)는 곡기(穀氣)를 끊고 스스로 굶어죽었다 카더라. 아부지도 죽었제, 엄마도 늙어가제....... 동생들은 하나씩 결혼해서 나가제...... 돌볼 사람이 없는기라. 그라이끼네 평소에도 자꾸 눈물 흘리면서 말이다 스스로 죽을테이끼네 약을 구해달라했다 안카나. 부모가 되가(=되어서) 우찌 지 딸한테 그런 약을 구해주노 말이다. 결국은 말이다, 밥도 안먹고 얼마나 오랫동안 안먹고 버티다가 스스로 굶어 죽은기라. 그래 죽었다카데...... " 

 

 

 

 

 "애비 친구 모친도 얼마전에 돌아가신기라. 그 할매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리도 섦게 자주 울었다카데.... 그리 섧게 자꾸자꾸 울었다카드라. 눈물을 그리 많이 흘렸다드라........"

 

 

 

### 수십년도 더 지난 일이 왜 이제 생각나는지 그 이유를 모르습니다 ###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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