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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3원짜리 연필

by 깜쌤 2007. 2. 19.

 

 

 

소년은 동무들과 함께 강으로 나갔다. 따로 무슨 목적을 가지고 강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가서 놀다가 보면 할 일이 생기고 놀거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이들의 행동이니 아무 목적의식 없이 나서 보는 것이다. 

 

작은  도랑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곳에는 작은 돌무지들이 물속에 소복했다. 그런 곳에는 징거미가 돌 밑에 숨어 있는 법이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요하게 고여 있는 곳이라면 징거미를 찾기가 쉽지만 흐르는 물이라면 눈이 쉽게 아려오고 만다.

 

흐르는 물결이 만들어내는 물무늬 때문에 물속 모습이 어지럽게 흐려지고 마는 것이지만 징거미 생우가 아무리 몸을 숨기려고 해도 아이들만이 가지는 건강한 눈으로 쉽게 녀석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녀석은 긴 앞다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물속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징거미를 찾다가 지친 소년은 또래 아이들과 함께 피라미와 붕어를 잡기로 했다. 워낙 물이 맑은 곳이니 붕어를 보는 것보다 피라미나 갈겨니나 버들치를 잡는 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아주 쉽다. 아무런 연장 없어도 잘만 잡을 수 있다. 그냥 알게 된 방법이 아니라 동네 형들에게서  배운 방법이다. 소년과 친구들은 모래밭에다 옷을 벗어 모아두었다. 옷이라고 해봐야 런닝셔츠 한장에다가 검은색 잠방이 하나 뿐인 차림이므로 옷만 벗으면 이내 천둥벌거숭이가 되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에서 물고기를 잡을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보통 물고기들은 냇가를 따라 자라는 버드나무 뿌리 밑에나 그늘진 곳에 모여 있는 법이다. 갈겨니나 피라미 종류는 사람이 없을 경우 얕은 모래밭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얕은 물살에 노는 녀석들이라고 해도 워낙 동작이 빠르니 맨손으로 잡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소년들은 물살이 부드럽게 훌러가는 버드나무 밑을 골라 둑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위에서부터 두손으로 모래를 밀어 모아 작은 둑을 만들어 나간다. 물이 계속 흐르는 상태에서는 자그마한 두손으로 모래를 밀어 붙여 쌓아도 모래 자체가 계속 깎여나가게 되므로 모두 힘을 합쳐 빠른 속도로 작은 둑을 만들어야 했다. 

 

물 깊이가 소년들의 발목 이상만 되어도 작은 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되도록이면 물이 얕은 곳을 골라서 둑을 만들어야 했다. 모래를 소복하게 밀어 올려서 수양버들 뿌리를 감싸듯이 해서는 길이가 한 일이미터 정도 되게 작은 둑을 만들어 둔 뒤 제일 아래 부분만은 막지 않고 틔어 두는 것이다. 

 

그런 뒤 이제는 물고기들을 몰아서 만들어둔 작은 함정 속으로 고기들을 유인해 넣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영악해다고 해도 물고기들에게는 본능이라는 게 있어서 아이들이 만들어 둔 웅덩이 속으로 몰려 들어가는 어리석은 고기는 드문 법이다. 

 

발로 나무 밑을 쑤시고 큰 소리로 외쳐가며 고기들을 놀라게 해서 물살의 반대방향으로 고기들을 몰아붙이면 된다. 몇번을 그렇게 반복한 뒤에는 틔어둔 부분을 재빨리 막아버리면 디는 것이다. 둑 안에 갇혀버린 물고기 중에는 놀라운 점프 실력을 발휘하여 모래둑을 간단히 넘어가는 녀석도 있다.

 

몇번의 경험을 통해 물고기들의 습성을 알아챈 소년들은 둑을 넓게 만들므로서 물고기들이 모래둑에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이제 녀석들은 탈출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모래밭에 두손으로 모래를 몇번만 걷어내면 작은 물구덩이가 생긴다. 그 곳에는 잡은 물고기들을 임시로 가두어 둘 것이다.

 

 

 

그런 뒤 소년들은 모래밭으로 나가서 여뀌를 뽑아 왔다. 어른들이 여뀌라고 부르니까 그냥 여뀌로 아는 것인데 이 녀석들은 주로 물기가 촉촉한 모래밭에 떼를 지어 살아가므로 그냥 뽑으면 된다. 뿌리가 무리 길어도 모래밭이니까 쑤욱 쑤욱 뽑혀 올라오는 것들이므로 한아름 모으는 것은 잠깐이면 되었다.

 

이젠 동네 아줌마들 빨래터에서 납닥한 돌을 구해오면 된다. 아주머니들이 빨래돌로 쓰는 것들은 워낙 무거우니 그냥 납닥하게 생기고 아이들 두 손보다가 큰 돌이면 되는 것이다. 구해온 돌을 모래둑에 처억 걸쳐 두고는 여뀌들을 몇포기씩 뭉쳐 돌에 갈았다.

 

사정없이 문질러대면 보기에도 징그러운 초록색 즙이 나오는데 이렇게 만든 즙을 물웅덩이 속으로 흘러 넣으면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뀌풀 잎을 따서 입에 넣어보면 그 맛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썼다. 어른들은 쓴 맛 뒤에 달콤한 맛이 숨어있다고 했지만 한입만 맛보아도 이내 몇번씩 침을 뱉어내어야 할 정도로 쓰기만 했던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징거미 새우가 배를 뒤집고 모래 둑가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버들치가 허연 배를 하늘로 뒤집은 채로 비실거리며 나오고 갈겨니가 나오고 피라미는 나중에 나왔다. 피라미가 오염에 강하다는 사실은 커서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게 나온 녀석들은 그냥 건져 내기만 하면 되었다. 아까 미리 파둔 작은 웅덩이 속에다가 고기들을 던져두면 녀석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렇게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수염 텁수룩한 아저씨가 물가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소년들은 더욱 더 신이나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날은 재수가 좋았다. 다른 날보다 훨씬 더 많은 물고기들을 잡았으니까......

 

"얘들아, 너희들 그 물고기를 어떻게 할 거니?"

"이거요? 구워먹지요. 구우마(구우면) 얼매나 맛있는데요."

"그거 말이다. 팔지 않을래?"

"이거 살라꼬요? 얼마 주는데요?"

"으흠..... 내 주머니에 지금 13원 있으니까..... 13원 어때?"

 

 

 

 

 13원에 잡은 물고기를 팔아버린 소년들은 네명이서 3원씩 나누어 가지기로 했다. 남는 1원으로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하얀색 돌눈깔 사탕을 사서 나누어 먹기로 하고..... 노동을 해서 처음으로 돈을 벌어본 소년은 작은 조막손에 돈 3원을 쥐고 동네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무엇을 살까 싶어 이리저리 견주어보던 소년은 분홍색 연필을 골랐고 집에 와서 숙제를 하기 위해 들뜬 기분으로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연필깎는 칼이 귀했던 시대였으므로 무거운 무쇠 부엌칼로 연필을 깎았다. 연필심을 뾰족하게 다듬는 것은 돌에다가 몇번 문지르면 되었다.

 

방바닥에 공책을 펴고 난생 처음으로 돈을 벌어 산 소중한 연필을 가지고 엎드린 자세로 공책에 글을 써보았지만 써지지가 않았다. 그럴리가 없었다. 몇번씩이나 침을 묻혀가며 다시 써보았지만 정말 써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연필심을 부러 뜨린 뒤 다시 깎아서 써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점점 안타까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또 더 깎고 또 써보고.....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내 연필은 몽당연필이 되어가기 시작했고 정말 끝까지 한번도 써지지 않았던 것이다.

 

연필심으로 만든 흑연이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소년의 눈에 드디어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연필인데........  정말 얼마나 귀하고 귀한 연필이었는데 말이다. 그 이후로 소년은 어지간하면 분홍색 연필만은 사지않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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