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비경 석림(石林) 1 - 기차타기

by 깜쌤 2007. 1. 19.

 대리고성에서 대리 하관으로 가는 버스는 창산문 밖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찾아가본 결과 창산문이 바로 서문(西門)인 것 같다. 거기에서 우리는 8번 버스를 탔다. 자리를 못잡을 경우를 대비해서 아침 일찍 찾아갔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판단이 정확했다. 사람들이 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만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배낭을 가지고 다닐때는 앉아가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다.

 

10시 10분 발 기차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전까지는 기차역에 도착해야 했으므로 일찍 움직인 것이다. 8번 버스의 종점이 바로 대리 기차역이니까 앉아만 있으면 된다. 대리하관은 보기보다 큰 도시이고 번잡하다.

 

버스 종점에서 내린 우리는 3원 50각을 주고 국수를 한그릇 말아먹었다. 뭘 좀 먹어두어야 기차를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리는 곤명에서 4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시니까 서울 부산 거리만큼이나 된다. 거기다가 우리 기차는 역마다 서는 보통 열차인데다가 딱딱한 의자를 제공하는 경좌좌석이니 그저 뭐라도 먹고 버텨야만 한다.

 

곤명에서 대리 사이의 고속도로는 공사중이었다. 이제는 완공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공사가 완료되었다면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시간도 적게 걸리고 더 편하지 싶다. 우리가 갔을때는 공사중이어서 여강으로 올라갈때 엄청 흔들리며 갔었기에 다시 곤명으로 나갈 때는 기차를 타는 것이 났다고 판단했다.

 

보통 중국 기차역에서는 X-레이로 짐검사를 하는데 대리역에서는 하지 않았다. 이제 생각이 좀 바뀌는 모양이다. 자기 나라 안에서도 모든 수화물을 검사해야 할 나라라면 치안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비행기도 아니고 말이다.

 

짙은 녹색으로 칠해져서 답답하게만 여겨지는 완행 기차를 탔는데 의자 조차도 진한 녹색이어서 어두컴컴하게 느껴진다. 내 맞은편에는 대리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한다는 19살 여자 대학생과 정치학을 가르친다는 여선생이 탔다. 정치학을 가르친다면 고등학교 고사가 아니면 대학교수일 것이다. 

 

중국 교사의 월급은 1000원에서 2000원 사이라고 했으므로 당시 환율로 따지자면 15만원에서 30만원 선 사이일 것이다. 그녀들은 우리 한국 스타들이 대체적으로 예쁘다고 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중국 아가씨들은 크게 예쁘지를 않다. 동양 3국의 여자들을 비교하자면 우리 나라 여성들이 외모로는 최고이다.

 

그것은 정말 확실하다. 내 평가기준이 다르지만 않다면 거의 사실이므로 우리나라 여성분들은 외모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얼굴형이 윤곽이 뜨렸한 서구식으로 변해간다는 증거는 많이 있고 외모자체도 확실히 우수하다.

 

우리가 중국돈으로 하루 평균 200원을 쓰며 여행을 한다고 했더니 그 정도 여행은 아주 비싼 여행이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중국인들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의 월급을 가지고 비교해보면 틀림없는 말이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어 본 그들은 한국 교사들이 아주 우수하다면서 칭찬을 해왔다.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부끄럽긴 했지만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인간은 칭찬에 약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며 기차여행을 즐겼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는 눈에 익숙한 경치여서 크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단지 소수민족 마을이라고 생각되는 곳이 스쳐지나갈때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곤명역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되었다. 6시간 반이 걸린 기차여행이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들은 다시 잠자리를 찾기 위한 전쟁을 해야했다. 오늘은 ㄱ,ㅎ 선생 두분이 나서서 여관을 잡도록 했다. 삼원빈관에 묵게 되었는데 3인실이 150원이었다. 

 

저녁 식사전에 곤명역에 가서 기차표를 구해야 했다. 내일은 석림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석림 여행은 당일치기로 떼우기로 했다. 기차역에 가서 매표구를 확인하고 줄을 섰는데 그 줄이 두번이나 짤려 나가버렸다.

 

창구를 닫아버리니 할수없이 옆줄에 가서 서야했다. 서서히 약이 올랐다. 그런데 저 앞쪽으로 새치기를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중국인들은 새치기를 해도 무덤덤하다. 드디어 약이 오른 나는 공안을 불렀다. 항의를 할 생각인 것이다. 이때는 영어로 하는게 유리하다.

 

"여보시오 공안 나으리! 우리는 내일 석림에 가기 위해 줄을 섰소. 줄이 벌써 두번이나 끊어졌고 기다린 시간만 해도 거의 30분이 되었소. 거기다가 이렇게 많이 새치기를 하니 우린 도대체 언제 표를 구할 수 있단 말이오?"

 

공안은 내 말을 못 알아 듣는게 틀림없다. 그래도 뜻은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항의하고 나서자 주위가 조용해진다.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구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를 했고 드디어 높은 양반까지 출동하여 줄을 서라고 이야기를 했다.

 

창구직원도 아까보다 훨씬 더 친절해졌다. 내 앞쪽에 슬며시 붙어있던 아줌마에게 줄을 서라고 했더니 흰눈동자를 치켜뜨며 나를 째려본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조용해지더니 공안이 다가오자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우리는 기차표를 쉽게 구했다. 아침 8시 56분 발 석림행 기차다. 요금은 7원이었다. 물론 좌석번호도 찍혀있는 그런 기차표다. 기분이 흐뭇해졌다. 저녁을 먹고는 시내에 가서 인터넷 바를 찾았다. 중국에서는 인터넷 바를 찾을 때 "왕빠"라고 발음하니 거의 뜻이 통했다.

 

여관에서 한국인 학생 둘을 만났다. 중국에서 7년을 살았다는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들고 다니는 여행안내서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 책이었다. 여행은 정보가 생명이다. 정보가 없는 여행은 고생길로만 다닌다고 봐야 하는데...... 잘 다니겠지. 중국에서 그만큼 오래 살았으니 우리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