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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 대리(大理) 3 - 자전거 하이킹

by 깜쌤 2007. 1. 16.

 

 

8월 15일 주일이다. 낯선 나라에서 맞이하는 주일이지만 그냥 넘길수가  없었다. ㄱ선생과 둘이서 침대에 걸터앉아 간단히 예배를 드렸다. 오늘은 모두에게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모두라고 해봐야 나를 제외하면 두사람뿐이니 두사람에게 행동의 자유를 드린 것 뿐이다.

 

두분은 택시를 타고 희주에 가겠다고 한다. 나는 혼자 자전거를 빌려타고 여기저기를 둘러본 뒤 희주(喜洲 시저우)에 가보기로 했다. 희주는 대리에서 북쪽으로 약 18km정도 떨어져 있다고 하니 넉넉잡아서 왕복 약 40킬로미터 정도만 자전거를 타면 될 것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자전거 타는 시간으로만 약 3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먼저 자전거를 빌려야 했다. 금화대주점을 끼고 창산쪽으로 올라가다가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를 따라가면 많은 여행사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부근에서 자전거를 빌리기로 했다. 낙타여행사에 가보았더니 하루 종일 빌리는데 10원(우리돈 1500원 정도)이라고 한다.

 

일단 보류해두고 버스 터미널에 가보았다. 내일 하관을 거쳐 곤명까지 가야하므로 미리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매표 창구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대리에서 곤명으로 바로가는 볼보회사 제품의 대형 버스가 있다고 한다. 요금으로 103원을 불렀다. 표를 미리 사두려다가 참았다. 그게 최선의 선택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리에서 하관(어떤 사람들은 거기를 대리로 잘못 알기도 한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직통하는게 아니고 하관을 거쳐간다는 식이니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겠기에 친구들과 의논해 봐야한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 나왔다. 다시 낙타여행사에 가서 자전거를 빌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리 고성안으로는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가면 안된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더니 공안 비슷한 사람이 자전거를 끌고 나가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렇다면 이젠 시저우를 향해 냅다 달리는 길만 남았다.

 

   

 

 희주로 가는 길은 대리에서 여강 올라가는 바로 그 길이다. 그러니 경치는 눈에 익숙하다. 급할 것이 없는 날이므로 그냥 천천히 달려보기도 하고 속력을 내어보기도 했다.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하더니 오늘은 완전히 내마음대로다. 혼자 달리는 길이므로 부담도 없다.

 

경운기를 개조한 일명 딸딸이가 달리기도 하고 말이 끄는 마차가 지나가기도 했다. 연탄을 실은 트럭이 지나가기도 하고..... 호수를 낀 벌판을 달리는 길이지만 약간 경사가 져서 시저우까지 가는데는 힘이 들기도 했다. 희주는 바틱 천이 유명한 모양이다. 바틱천이 동남아시아에서만 나는 줄 알았는데 중국 남부에서도 생산된다니 신기한 느낌이 든다.

 

한참을 달려 드디어 희주 마을에 도착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에 희주 제3중학교가 보이길래 들어가 보았다. 창문을 열어두고 수업을 하는데 영어시간이어서 그런지 문장을 따라 읽는 소리가 들렸다.

 

중국아이들 발음도 좀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 어법 구조와 영어 문장 구조가 닮아있어서 영어를 쉽게 익힌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본 견지에서는 조금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문 부근 벤치에 앉아 일기를 쓰다가 나와서 시장으로 갔는데......

 

  

 참 질긴 인연은 따로 있는가 보다. 시장에서 나는 ㄱ,ㅎ 선생을 만난 것이다. 두분은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세상에..... 오늘 우리는 서로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해놓고 여기 희주 시장 바닥에서 마주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서로 반가워하며 환한 웃음을 띄웠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두분은 그냥 걷고 해서 시장구경에 나섰다.

 

 

 

 시장은 8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소수민족인 백족과 한족이 어우러져 떠들썩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키, 소쿠리같은 것이 여기에도 있다. 대나무 세공품이 눈에 많이 띄여서 전라도 담양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할머니가 등에 진 대나무 통속에서 강화 순무 비슷한 무가 나왔다.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창산 중화사 오르는 길에 먹어본 경험이 있으므로 그 맛은 대강 짐작이 된다.

 

 

 

 중국인들은 과일이나 채소도 무게를 달아서 파는 모양이다. 한개 얼마하는 식이 아니고 무게를 재어서 얼마 하는 식으로 나왔다. 시장바닥은 좀 지저분하다. 난전이 어디 지저분하지 않은 곳이 있으랴먄 적어도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

 

 

 

 돼지고기도 그냥 난전에 펼쳐놓고 판다. 냉장고에서 꺼내 판다는 그런 개념은 없는 모양이다. 하기사 우리도 예전에는 그랬다.

 

 

 

 

 

 신기하게도 잣나무(?) 열매가 붙은 가지를 끊어와서 팔기도 했다. 아무리 봐도 잣같은데.....

 

 

 

 그런데 어찌 이 동네는 푸른색 조끼를 입은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이 할머니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쇼우를 했었다. 할머니는 조잡스런 작은 대나무 기념품을 팔고 계셨는데 내가 한두개를 사면서 흥정을 하는 척하고 그 사이에 ㄱ선생이 찍은 것이다.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시장에서 파는 노란색 국수를 사먹기로 했다. 파를 썰어넣은 양념장이 있어서 먹기에 편했다. 살다가 살다가 별 것을 다 먹어본다. 한그릇에 2원이었는데 보기보다 맛있었다. 시장 구경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헤어지고 나자 곧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더니 이윽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를 긋기 위해 잠시 피한 곳이 바틱천을 파는 곳이어서 슬금슬금 흥정을 시작했던 것이다.  

 

바틱천을 구한 나는 비옷을 걸치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희주로 갈때는 한시간 반이 걸렸지만 내려올때는 아주 경쾌하게 한시간만에 대리고성까지 돌아와서 자전거를 반납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