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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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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 대리(大理) 2

by 깜쌤 2007. 1. 16.

 

 여강에서 대리로 가는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잠시 방향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저수지 둑이 보이는 부근에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휑하니 달려가버렸으니 알아서 대리고성까지 찾아가야 했다. 오토바이 엔진에 차체를 얹은 작은 삼륜오토바이 택시가 다가왔다.

 

"니 하오마? 따리쿠청?"

"되"

 

대리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금화대반점까지 가기로 했는데 요금은 5원이란다. 1원을 깎아서 4원에 합의를 보고 배낭을 싣고 올라탔다. 배낭 3개와 사람 세명을 싣고 달리려니 무게 때문에 힘에 겨워 탈탈거리는 엔진소리가 가슴을 찌른다. 살며시 경사진 언덕길을 올라 금화대반점 앞에서 내렸다. 팁으로 1원을 얹어 주었더니 너무 고마워했다. 그러고보니 결국 5원을 준 셈이다.

 

금화대반점까지 왔지만 우리가 거기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우리는 배낭여행자이니 싼 곳을 찾아야했기 때문이다. 두리번거리는 우리들에게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삐끼가 다가왔다. 싸고 멋지고 아름다운 곳을 알고 있다기에 속는 셈치고 따라가보았더니 제2초대소였다.

 

2인실 방이 200원이었다. 우리들은 세사람이니 2인실은 의미가 없다. 시설은 좋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호텔급이었던 것이다. 돈도 비싼데다가 삐끼에게 돈을 주는 것이 싫어서(물론 우리가 직접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서서 나오고 말았는데 그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따라 붙어서 다른 여관을 알아봐 주겠다는 것을 점잖게 저절했다.  

 

"뿌야오(不要)!"

 

 

 

 

 그리하여 우리가 돌아다니다가 구한 것이 대리문화원객잔이었는데 삼인실이 120원이란다. 샤워도 가능하고 빨래도 할 수 있었으므로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방을 구했던 것이다. 이런 좋은 곳을 두고 일인당 100원(=우리돈 15,000원)이란 거금을 주며 묵을 필요가 뭐 있던가?

 

배낭을 던져놓은 우리들은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섰고 국수집에 들어가서 3원짜리 국수를 시켜 먹었던 것이다. 한끼 떼우는데 3원이고 자는데는 100원이라면 나는 차라리 노숙을 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일이 참 공교롭게 돌아갔다. 아까 간신히 떼어 버린 그 아줌마를 국수집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가 객잔을 정해서 머물고 있다니까 이번에는 창산으로 올라가는 삭도표를 사라고 권해오는 것이다.

 

북문 부근에서 타는 것은 정상 요금이 60원인데 자기에게 사면 40원이라고 했다. 하관 어디에서 타면 80원이래나뭐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상 60원짜리 표를 떠돌이 아줌마가 40원으로 깎아준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설명과 제안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결국 ㄱ,ㅎ 선생 두 사람은 그 표를 사게 된 것이다.

 

나는 당연히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한두시간만 걸으면 우리돈으로 6000원이라는 거금이 절약되는데 왜 타고 가는가? 다리 힘 올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팽겨쳐두고 타고 갈 일이 뭐 있던가? 그런데 창산에서는 혼자 걸어올라가다가 강도를 만나 돈 털린 외국인이 있었다니 어쨌든 조심은 할 일이다. 

 

 

 

대리고성은 사방에 나 있는 성문과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구경하기가 편리하다. 북문 밖으로 나가서 산쪽으로 걸어올라가면 삭도 타는 곳이 나온다. 나는 걸어가고 싶었지만 일행이 원하니 삼륜 오토바이 택시를 4원에 타고 가기로 했다. 

 

두분은 삭도를 타기 위해 승강장 안으로 걸어가고 나는 삭도 밑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오르기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삭도 밑으로 자라는 나무를 제거해두었으므로 자연적으로 길이 날 수밖에 없다.

 

강화 순무라는것이 있다. 채소 종류 무 말이다. 여기 대리 성밖 창산 기슭에서는 강화 순무와 똑 같은 녀석이 와그르르 무리지어 자란다. 산을 기어오르던 나는 너무 목이 말라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찾아서 무를 하나 얻었다. 스위스 육군용 칼로 깎아먹으니 맛이 기가 막히다. 

 

무를 질근질근 씹어가며 오르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ㄱ,ㅎ 선생이 삭도를 타고 오며 나를 발견하고는 약을 올리는 것이다. 나도 내 카메라를 꺼내 그들을 찍었는데 아래로 내려다보며 손만 흔들고는 씩 웃으며 앉은 채로 점잖게 위로 올라가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타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방울 소리를 날리며 말등에서 흔들흔들거리며 올라가기도 하고 삭도를 타고 올라가기도 하는데 나는 빰을 빨빨 흘리며 걸어 올라가야 하니 세상 참 고르지 못하다.

 

 

 

마침내 중화사에 오르니 속이 후련해진다. 중화사는 불교 사원이 아니고 도교 사원이다. 그러니 부처보다는 옥황상제를 모신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화려한 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낯선 나그네가 올라올 때마다 노래를 부르곤 하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면 자세를 취해주는 대신 나중에는 돈을 요구하므로 조심할 일이다. 나는 돈 달라면 안주고 안찍는다.

 

이 도관은 창산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올라가기는 힘이 들지만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치 하나는 기가 막히므로 꼭 한번 올라가보기를 권한다. 나처럼 어리버리하게 걸어올라가지 마시고 눈 질끈 감고 삭도타고 올라가기 바란다. 내려올때만 걸어서 내려와도 좋을 것이다.

 

 

     

 올라왔으니 일단 구경은 해야한다. 도관이라고 하는게 그게 그것이지만 그래도 둘러보는 예의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뒤 산 중허리쯤에 작은 암자가 보였다. 올라가보았으면 싶지만 힘이 부친다. 한 십년만 젊었더라도.....

 

 

 

 중국에서는 도관이든 절이든간에 향내가 진동을 했다. 중국인들의 기복 정신은 정말 대단하다. 당대발복이 가능하고 순식간에 돈을 잘 벌게 해준다는 종교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싶어질 정도이다.

 

 

 

 우린 전망대 부근 찻집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한잔에 3원이니 안마시면 손해일 것 같아서 마셔보았다. 중화사에서 커피라.....  좋은 차가 아니고 커피라니 조금 우습기도 하다.

 

 

 

 

 아래를 보면 대리고성이 보이고 얼하이가 보인다. 호수 가로는 비옥한 토지가 펼쳐져 있어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붉은 색 지붕으로 덮힌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우리는 더 위로 올라갔다. 운유도(雲遊道)를 걸어보기 위해서였다. 운유도를 창산의 옆구리를 따라 펼쳐진 꿈결같이 아름다운 길이다. 그런데 어찌 분위기가 수상했다.

 

운유도 입구를 막아놓은 것이다. 공사중이란다. 하여튼 공사중만큼 무서운 용어도 없다. 운유도를 걸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가지 올라왔는데 출입을 통제하면 뭐가 되는가? 팔자 사납다는 표현을 해야 하나?

 

먼저 올라왔던 ㄱ선생이 운유도는 폐쇄되어 있고 뒷돈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뒷돈을 요구하다니..... 그럴리가 있는가 싶어 운유도 입구를 기웃거리자 초라한 행색의 한 젊은이가 다가 와서 어설픈 영어로 말을 붙여왔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건물 옥상으로 나를 데려가더니만 제안을 해왔다.

 

"나는 여기 운유도 보수 공사 책임자요. 운유도를 걷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힌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이지요. 일인당 80원을 내면 입장시켜 주겠소."

 

어이가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뒷돈을 받고 입장시켜 준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속내를 감추고 일단 한번 튕겨 보았다.

 

"그래요? 비쌉니다."

"그럼 50원! 어떻소?"

 

나는 돌아서고 말았다. 공짜로 걸을 수 있는 길을 50원씩이나 주고 걸을 일도 없거니와 중간에서 또 다른 공사 책임자가 돈을 요구하면 영수증도 없는 통행이므로 우리만 등신이 되고 말기에 그의 제안을 받아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뒷돈 거래와 부정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음 행동은 아낌없이 내려가는 것이다. 운유도 말고도 볼 곳이 많고 갈 곳도 많다. 두사람은 다시 삭도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다시 줄기차게 걸었던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얼마나 쉬운가? 창산 기슭에는 무덤도 많다. 모두 다 한세상 살고 간 사람들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기에 허망함을 느낀다.

 

 

 

 성문 앞에서 다시 만난 우리들은 이번에는 대리의 상징인 삼탑사를 가보기로 했다. 사진촬영이 취미이자 특기인 ㄱ선생은 특히 삼탑사에 애착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니 꼭 가봐야 할 처지다.

 

 

 

 걸어가려는데 마차를 모는 마부가 붙어서 제안을 해왔다.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니까 가격을 낮춰부른다. 그러다가 사람 좋아보이는 노인의 마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지붕만 달랑 붙어있는 마차인데 세사람이 4원을 주고 타기로 했다. 바람이 시원했다. 말발굽 소리도 경쾌했다.

  

 

 

 삼탑사 입장료가 자그마치 52원이다. '으이그'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입장료에 놀란 나는 안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두 사람은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

 

 

 

 6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6시 40분이나 되어 나왔다. 나는 그동안 노점상을 기웃거리며 둘러 보았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안들어간 것이 후회스럽다. 이 사진을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그까짓 돈 몇푼에 눈이 어두워 안들어 갔으니 아직도 후회스럽다. 하여튼 좁쌀 영감 짓거리를 자주하는 내 행동도 문제는 문제다.

 

 

 

 

 돌아올때는 백족 청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아까보다는 훨씬 고급스러운 마차여서 10원을 주었다. 성내로 돌아온 우리들은 리어카 위에 돼지고기를 펼쳐놓고 파는 족발 장사 아저씨를 만났다. ㅎ부장이 삼겹살 타령을 자주 했던 터라 기꺼이 살 많은 족발을 사 가지고 가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4원을 주고 살이 두툼하게 붙은 족발을 샀다. 우리돈 3,600정도를 주니 푸짐하다. 그런데 족발만을 그냥 주는게 아니고 그자리에서 썰어 양념에 버무려 주는 것인데 나중에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저녁에 다시 찾아가니 이미 장사를 걷어치우고 집에 간 뒤였다. 어째 손님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더라니 역시 맛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아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