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세상사는 이야기 1 My Way (完)

매화향기를 맡다

by 깜쌤 2007. 1. 16.

 

 

최근들어 며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울적했다. 은발이 된 이 나이에 마음이 아프다니까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오전에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 예전 6학년 6반에 있었던 누구누구입니다. 오늘 한번 찾아뵙고 싶은데 되겠습니까?"

 

어제 오전에 분재원에 가서 가벼운 노동을 하다가 일을 덜 끝낸터라 마져 끝내기 위해 나갈까 하고 있던 차에 연락이 온 것이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포항에 있을 때 가르친 아이들이다.

 

아이들이라고는 해도 이제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었으니 한참 나이의 청년들이 아닌가? 열두시가 넘어서 셋이 찾아왔다. 혹시 내가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면 얼마나 섭섭해할까 싶어서 미리 졸업앨범을 꺼내두고는 얼굴을 익혀두고 기다렸었다.

 

졸업반 아이들만을 오래 가르치다보니 여학생의 경우에는 동명이인도 많은게 사실이어서 이름만 들어서는 아삼삼해질 때가 많다. 남자들도 부르기 좋고 멋진 이름 위주로 짓다보니 겹쳐지는 이름이 많다.

 

서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얼굴들을 보니 단번에 다 기억이 난다. 어리버리하기로 소문난 나같은 선생을 만나러 포항에서 일부러 짬을 내어 왔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애리애리했던 앳된 얼굴들이 하나같이 맑고 준수한 청년들로 변해 있었으니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기뻐왔다. 동기들의 안부를 물어가던 중 내가 가르쳤던 반 학생 가운데 셋은 신학대학에 가서 이미 교육전도사가 되어 사역을 하고 있었고 또 한 청년은 선교사가 되어 해외로 선교차 나갈 뜻을 품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세명이 누추한 곳을 찾아온 것이니 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별것 아닌 음식이지만 점심을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쉬운 이별을 한 뒤 서재에 올라와서 매화향기를 맡았다. 얼어죽을까 염려가 되어 12월 말경에 실내에 넣어두고 창가에 놓아두었던 소품인데 벌써 꽃을 피웠다. 

 

맑은 매화향기가 방안에 살포시 가라앉았다. 역시 향기는 매화와 난이 최고다. 이런 날은 살맛이 난다. 이런 즐거움으로 사는게 인생이 아니던가 싶다. 국화향기나 치자 향기도 좋긴 하지만 나는 매화와 난이 내뿜는 그윽하고 맑은 향을 더 좋아한다.

 

나와 만남을 가졌던 청년들이 모두 매화향기를 내는 사람들이 되어주기를 기도했다. 잠시 머물다가 간 자리가 그윽하기만 해서 아쉬움으로 남기전에 글로 남겨볼까 싶어 끄적여보는 것이다.

 

(자네들, 정말 고마우이. 모두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날리며 사는 귀한 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