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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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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고도 리장(麗江) 6 - 시장구경

by 깜쌤 2007. 1. 1.

 아침에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작은 산에 올랐다.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옆으로는 기념품가게들이 즐비하다. 번화가인 사방가에서 멀어질수록 물건 가격은 싼편이어어서 변두리에서는 조금 헐한 가격으로 기념품을 살 수 있다.

 

작은 골목 하나도 허술하게 그냥 놓아둔 곳이 없다. 작은 레스토랑이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로 꾸며 놓아서 지중해의 작은 섬들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뭐 전시기술이나 물건의 품질은 여기 중국이 몇 수 아래라지만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이용하는 기술은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이들이 누구인가?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중국인이 아니던가? 확실히 이사람들에게는 돈 귀신이 떼거리로 붙어있는지 모른다. 돈버는 기술을 소수민족에게 전수를 해주었는지 이제는 나시족도 제법 돈맛을 아는 것 같았다.

 

산길을 오르다 말고 돌아다보면 여강 시내가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그래, 산은 항상 이 기분에 오르는 것이다. 한눈에 보며 발밑으로 세상 사물을 모조리 깔아뭉개는 그 재미가 아니라면 왜 산에 오르겠는가 말이다. 시건방이 든 나같은 사람은 그런 재미로 높은 곳에 오른다. 진정한 프로들은 다른 것에서 깊은 의미를 찾는다지만 나는 싸구려 날라리 따라지 삼류인생이니 그냥 속물적인 느낌밖에는 즐길 줄 모른다.

 

 

 

 기와집이 많기도 하다. 신시가지 쪽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버렸는데 중국인 특유의 마구잡이식 개발이 이루어져 영 볼품이 없게 되었다. 구시가지쪽은 통일된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나마 볼만한 것이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새장수들이 많이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조그자카르타에서 본 새시장만큼이나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노인들이 가지고 온 여러가지 새들이 들어있는 새장에서 울려퍼지는 소리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그윽하게 들려오는 새소리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제법 쏠쏠하다. 우리는 한참을 서서 새소리를 들었고 땀도 식힌 뒤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겨 만고루로 향했다.  

 

 

 

 조롱속에 갇힌 새들이 내는 소리는 맑고 그윽하다. 더러 시끄럽게 울음우는 녀석도 있지만 산비둘기 울음소리처럼 내는 쉰 소리는 아니니 들어줄 만 했다. 나는 이른 여름 아침에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를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나른한 초여름 오후에 듣는 뻐꾸기 울음소리에는 가슴이 찡해지기도 한다.

 

뻐꾸기 소리는 왜 그리 애잔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나라고 하는 인간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어떤 슬픔의 덩어리같은 것이 잠겨져 있지 싶다. 내가 떠돌기를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아마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실에 대한 서글픔 때문이지 싶다. 그건 그렇고......   

 

 

 

 목부를 내려다보며 기와집의 날렵한 선을 감상하던 우리들은 다시 힘을 얻어 만고루를 행해 전진했다. 목부 이야기는 여강 이야기를 꺼내면서 처음에 다 이야기를 했으니 생략하고자 한다. 산 꼭대기에는 전망대를 겸한 멋진 탑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는 경치 하나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것이어서 천천히 올라가보기로 했다.

 

 

 

 

내부에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기 쉽게 되어 있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창가로 다가가니 어떤 신사가 카메라를 설치해두고 옥룡설산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가 준 명함을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중국 남부 신천시 촬영협회 이사 왕방복씨로 되어 있었다.

 

언뜻 보아도 그의 카메라는 고급 기종이었고 전문가다운 냄새가 났다. 같이 간 ㄱ선생이 사진에 대해 제법 조예가 깊지만 대화를 하지 않으니 내가 상대역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는 욕룡설산 매니아 같았다. 영어도 제법 되는 분이어서 그런대로 이야기가 통했다. 중국은 땅이 커서 그런지 인물이 많은 것 같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도 많은 것 같아 부럽기까지하고 어떨 땐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내려오는 길에 원주민 할머니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전통복장을 하고 있어서 한족과는 단번에 구별이 되었다. 손자 손녀의 얼굴 표정엔 수줍음이 가득했다. 마치 어린 시절의 어리버리했던 내 모습 같지만 아무래도 얘들이 더 똘똘하게만 비쳐졌다. 

 

 

 산을 내려온 우리들은 시장 속으로 들어갔다. 어느 나라든지 시장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은 드물다. 처음 마주친 것이 난 시장이다. 난이라면 내가 깜빡 죽고 못사는 취미 아니던가?

 

중국춘란이 주는 난향의 아름다움과 오묘함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가 없을 정도이다. 한 십여년 전에 나는 동양란 중에서 중국 춘란을 기르는 즐거움에 홀딱 빠져 있었다.

 

한국춘란과 일본 춘란도 매력적이지만 정말 유감스럽게도 향기가 없다. 하지만 중국 춘란은 향기가 있다. 처음에는 중국 춘란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하란으로 번지고 보세란(報歲蘭)로까지 번져서 감당이 안되겠다 싶었다. 

 

한때는 족보가 있는 명품난으로만 백여가지를 모았는데 보관하는 것이 너무 문제가 되어 교실에 가져다두고 길렀다. 2월말에서 3월말까지 한달 동안은 그야말로 난 향기에 묻혀 살아서 학교에도 제일 먼저 출근하곤 했었다. 난 향기를 맡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여러 종류의 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사천성 깊은 산골에서 난다는 도검류처럼 좌악좌악 위로 솟구치는 잎을 가진 검란(劒蘭)에서는 두려움까지 느꼈었다. 그런 형편이니 난 시장을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했다.

 

이제 간신히 그 취미를 끊고 다른 것에다 관심을 쏟고 살아가는데 다시 미치면 안된다. 그저 무덤덤하게 넘어가야한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여기 시장에 나온 난들은 그리 귀품은 아닌 것 같았다. 꽃을 못보았으니 함부로 할 소리는 아닌줄로 알지만 어째 좀 그렇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