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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고도 리장(麗江) 2

by 깜쌤 2006. 12. 26.

 

 

 

이 지도는 www lvjin.commapchina에서 가져 온 것이다. 귀중한 지도를 올려주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중국 운남성 지도인데 지명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서 가치가 높다.

 

지도를 클릭해서 보시면 크게 확대가 될 것이다. 지도 왼쪽 위 부근을 자세히 보면 초록색 네모 속에는 옥룡설산, 보라색 네모 속에는 려강고성라는 글자가 보일 것이다. 려강고성에서 밑으로 내려오면 초록색 네모 속에 대리라는 도시가 나타날 것이고.....

 

지금 우리는 이 부근 이야기를 해나가는 중이다. 샹그릴라라는 도시는 지도 속에서 옥룡설산 위 비행장 표시가 있는 바로 거기를 말한다. 이젠 대강 이해가 되지 싶다. 한글로 운남성이라고 써 놓은 곳은 미얀마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곳 운남성이 중국 여행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사람들도 순수하고 풍광도 일품이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운남성의 아래 부분은 열대지방이나 다름없다. 지도 제일 아랫부분에 초록색 네모 속에 서쌍판납(시솽반나)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긴 열대라고 보시면 된다. 곤명에서 라오스로 넘어갈 때 한번 들어가서 묵어본 지방이다.

 

  

 그럼 이제 위 사진을 보자. 여강 도시 한가운데 있는 사자산에서 내려다본 여강 시내의 모습이다. 멀리 정상부에 흰눈을 이고 우뚝 솟은 산이 거의 높이 6000미터에 육박하는 옥룡설산이다. 시가지 끝부분 저 멀리에서부터 산이 솟아 있다.

 

거기 눈녹은 물이 흘러 이 평원으로 흘러드는데 공교롭게도 시내 한 구석 흑룡담이라는 곳에서는 맑은 물이 폭포수처럼 솟아 오른는 것이다. 그 물을 끌여들여 시내 곳곳으로 흐르게 만들어 두었다. 일종의 도시내 수로(水路)라고나 할까?

 

여름에 여강을 방문해도 흰눈을 볼 수가 있어서 북쪽 어떤 낯선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도시 자체가 그것 뿐이라면 매력을 줄만한 곳이 못된다. 여강에는 그것 말고 다른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럼 이제 아래 사진을 보도록 하자.

 

 

 

 아까 위에서는 신시가지 쪽을 보았다. 구시가지 쪽은 놀랍게도 기와집 일색이다. 중국 어디에서나 기와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그것도 이젠 자꾸 어려워져 간다) 여기서 보는 기와집은 중원의 느낌이 아닌 조금 특이한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우리나라 전주의 한옥 동네를 보는 것 같다. 엄청난 수의 기와집이 도시 한구역을 빼곡하게 채워넣었다. 이제 조금 더 확대해서 들여다 보기로 하자. 

 

 

 시내 한복판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 속의 큰 건물들은 여기를 통치하던 목부(木府) 건물이다. 이 도시는 특이하게도 성벽이 없다. 나무 목(木)자를 쓰는 목씨가 통치하는 도시에 네모난 성벽을 둘러싸버리면 곤할 곤(困)자가 되어 풍수지리학적으로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는 믿음 때문에 일부러 성벽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이 건물군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가히 일품이 아니던가? 1993년이던가? 1996년이던가? 이 일대에 광장한 지진이 발생했던 모양이다. 외국인 한명을 포함한 수백명이 사망한 대규모 지진이었던 모양인데 신시가지의 건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어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 건물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중국 정부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신청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튼 지금은 여기 이 지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명한 곳이 되었고 전세계에서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그런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어떤 건물들은 송나라 말기 것이라고 하니 입이 벌어진다. 송나라 말기라면 고려시대 말기라고 봐도 된다. 여강은 그런 곳이다.  

 

 

 온천지가 기와집 건물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로 온전하게 기와집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은 과연 몇군데나 될까? 우린 뒷생각없이 때려부수고 허물어버린다.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보존만능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경주에 살고 있으므로 문화재에 얽힌 시민들의 고충을 대강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다. 문화재 보존 지구로 결정된 곳에 사는 주민들은 화장실 하나를 개조하려고 해도 일일이 관공서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지붕에 물이 새도 마음대로 수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집을 짓기 위해 터파기 공사를 하다가 문화재가 나와서 당국에 신고를 하면 발굴이 완료될때까지 집짓기 공사는 중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막대한 발굴비용까지 땅주인이 물어내어야  했다면 시민들의 원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러니 문화재가 나오면 쉬쉬하고 묻어버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리장의 진면목은 다른 곳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중국인이지만 중국 한족이 아닌 나시족이라는 소수민족이다. 그러길래 더욱 더 매혹적인 곳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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