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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4 중국-운남,광서:소수민족의 고향(完)

고도 리장(麗江) 1

by 깜쌤 2006. 12. 24.

잠이 오질 않았다. 밤 12시까지 차분하게 일기를 쓴 뒤에도 잠이 오질 않아서 결국 새벽 3시까지 잠을 설쳤다. 출발하기 전 경주 K2대리점에서 간 오리털 침낭을 꺼내 소파 위에 깔고 침낭속에 들어 간 뒤 다시 그 위에 담요를 덮었다.

 

이젠 조금 포근해졌다. 여기 샹그릴라 시는 해발 고도가 높아서 선풍기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히터가 필요하면 필요했지 선풍기는 있을 필요가 없다.

잠자리가 포근해지자 이제 잠이 왔다. 하지만 3시간을 자고는 일어나야 했다.

 

체크아웃을 하러 내려가자 주인은 우리 방은 살펴볼 필요도 없다며 자기 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라고 시켰다. 사실 우리는 방 하나는 깨끗이 사용해준다. 남의 물건이지만 정갈하게 쓰면 서로가 편한 것이다.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로 갔다. 호도협까지 간다고 했더니 일단 컴퓨터로 좌석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한 뒤 대합실의 승차구 부근에서 표를 사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그것 참, 이상한 시스템이다.

 

20원(2년전 환율로 치면 우리돈 약 3000원)을 주고 표를 샀다. 버스는 대형이지만 시설은 후진 그런 차이다. 려강에서 샹그릴라로 올때는 29.5원을 주었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일본의 수도인 토쿄를 거론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신문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니까 정확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토플러 박사에게 샹그릴라는 혹시 도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을 방문한 배낭여행자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도시를 물으면 거의 예외없이 리장을 든다. 단 리장을 가본 사람만 그렇게 대답한다는 사실을 알아두자. 나도 중국 최고의 도시로 리장을 들고 싶다. 한자로는 麗江(려강, 여강)이라고 쓴다. 려강 부근에는 옥룡설산이라는 산이 있고 백수대가 있다.

 

도시 자체가 주는 매력도 기가 막히는 곳이어서 여강을 가보지 않고는 중국 소수민족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정도라고 본다. 하여튼 내가 다녀본 도시 중에는 최고였다는 평을 해보고 싶다.

 

여강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내려가면 대리가 나오고 대리에서 한 여섯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 곤명이 나온다. 곤명 부근에는 석림(石林)이 자리잡고 있으니 여행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한족과 장족이 마구 섞여 탔다. 한족의 말들은 워낙 익숙하게 들었으니 쉽게 구별이 되고 장족의 말은 한족의 말과 또 완전하게 구별이 되니 저 사람이 어떤 종족인지 옷차림을 보고 말을 들으면 대강은 구별이 되는 것이다.

 

내려가면서 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버스는 거대한 골짜기를 따라 아주 조금씩 고도를 낮추며 계속 내려가기만 했다. 좌우로는 티벳 양식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여기 집들은 벽이 두껍다. 그 벽 자체도 살짝 경사가 져있어서 아래쪽으로는 엄청 두껍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그런지 마치 요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허리에는 구름이 길게 허리띠 마냥 걸려있었다. 태국 북부의 산악지대 같다. 사실 여기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미얀마 산악지대가 나오니까 태국 북부도 그렇게 먼 곳은 아니다.  

 

   

 

 겨울엔 추위가 혹독할 것이다. 위도가 상당히 남쪽이라는 장점이 있긴 해도 겨울은 추울 것이다. 골짜기는 상당히 풍요롭게 보였다. 초지로 사용하는 밭 대신 경작을 하는 밭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장족들도 이젠 정착생활의 이점을 누리는 것 같다.

 

 

 

 한번씩 버스가 설때마다 소수민족 사람들이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버스를 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리움을 간직하고 사는 모양이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여행을 다녀온 곳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가 하면 내 기억속에 자리잡았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일기장과 사진 자료를 꺼내보는 순간마다 나는 샹그릴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질 지경이다.

 

원래 자꾸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나자신인지라 한곳에 가만 자리잡고 있으면 좀이 쑤신다. 아마 경제력만 조금 뒷받침 되었더라면 나는 평생 방랑자 인생을 살았지 싶다. 

 

 

 

제임스 힐튼의 원작 소설에는 이런 곡식 건조대에 관한 묘사와 삽화가 등장한다. 나도 여강이나 샹그릴라에서 참고 자료를 보고 알아낸 것인데 이런 것들을 기초로 하여 중국에서는 운남성 쫑디엔 지방이 샹그릴라의 모델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재빨리 지명조차도 샹그릴라로 개명해버린 것이다. 그 사람들의 상술은 정말 못말리는 단계이다. 우리보다 몇수는 높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보기에 비경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장소를 면밀하게 조사해 두었다가 하나씩 공개하며 띄운다는 식이다.

 

여기 샹그릴라 지방도 최근에 갑자기 뜨기 시작한 곳이다. 삭막한 도시화와 넘쳐나는 인간들에게 질린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도피처를 찾아서 떠나는 모양인데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장소를 찾아 나선다.

 

그래, 샹그릴라여! 나 다시 여기 오리라. 다음에 올때는 여기에서 티벳의 중심도시인 라싸까지 천천히 올라가 볼 생각이다.

 

 

 

 이런 좋은 곳을 차창 옆에 두고 감상을 하며 여행다니는데 기분을 확 잡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들은 차 안에서 침을 뱉는 것을 여사로 여긴다. 침만 뱉으면 좋다 이거다. 가래까지 뱉는데는 극도로 비위가 상하면서 멀미끼를 느끼게 만들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중국인도 걸핏하면 침을 뱉었다. 여기 버스 차장은 그런 것에 간섭을 안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나는 그 인간 때문에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있으면 험한 절벽을 따라 꼬불꼬불 내려갈 터인데 말이다.

 

나는 그날 심하게 멀미를 했다. 신앙생활을 하고 난 뒤에는 거의 멀미를 안하고 살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멀미를 안한다는게 도리어 이상했다. 하품이 나오고 속이 거북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얼굴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고통 속에 시달리기를 몇시간이나 한 뒤에 버스가 호도협 입구에 닿았다. 극도로 속이 거북해진 나는 여강까지 바로 내려가기로 우리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차장에게 이야기를 해서 차표를 연장하고 돈을 더 지불했다.

 

어떤 백인 청년 한사람이 배낭을 매고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탔다. 아마 호도협 트래킹을 즐기고 나온 사람 같다. 좀 물어보려다가 속이 안 좋아서 참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호도협 트래킹은 장마때문에 당분간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우리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지만 지금까지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샹그릴라에서 엄청나게 내려온 버스는 드디어 양자강 상류를 건넜다. 이 부근에는 세계지도에 등장하는 강 세개가 옆으로 나란히 흘러가는 곳이 있다. 이른바 삼강병류지방(三江幷流地方)이라는 곳이다.

 

그 삼강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 사진으로 보는 금사강(金沙江)이다. 다른 하나는 메콩강 상류가 되는 란창강이고 또 하나는 미얀마로 해서 인도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살윈강이 되는 것이다.

 

양자강 상류가 되는 금사강만 해도 규모가 아주 큰 편이라고 생각한다. 강물이 흙탕물로 변한 것으로 보아 큰 비가 왔던 모양이다. 이 강을 건넜으니 이번에는 높은 산을 하나 넘어야 여강에 도착한다. 아직도 한두시간은 더 가야 하리라. 

 

 

 

 큰 산을 넘으면 이제부터는 풍경이 일변하여 드디어 중원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확실한 중원 풍경은 아니고 중원과 티벳의 혼합풍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논이 나타나고 수수밭이 등장했다.

 

 

 

 마침내 여강 시내에 자리잡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강은 벌써 두번째 방문이다. 샹그릴라로 올라가기 위해 한번 머물렀으니 숫자로만 따지면 세번째 방문이 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이젠 호텔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좀 쉴 수 있겠다. 멀미 기운도 가시고 고산병 증세도 사라지니 모두가 다 환한 얼굴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