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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하늘마을 매사롱 1

by 깜쌤 2006. 11. 22.

 

 

 오늘은 매사롱에 가기로 했다. 매사이, 매홍손, 매사롱...... 이 동네는 거의 모든 지명에 매자가 들어간다. 마치 중국 운남성 남부 시상반나(=서쌍판납)지방의 맹(孟)자 들어가는 동네 같다.

 

거긴 모조리 맹자 들어가는 동네로만 채워진 것 같았다. 하긴 삼국지에 등장하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맹획이 놀던 동네와 가까우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는 강을 의미한다고 한다. 매남이라는 말도 강을 의미한다고 하던데..... 하여튼 이 부근에는 매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동네가 많다. 사진을 보면 버스 앞에도 영어로 매사이라고 써두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우리들은 매사롱에 갔다가 매사이를 들러본 뒤 돌아온 예정이므로 아침일찍 버스 터미널로 나간 것이다. 일찍이라고 해도 아침 7시에 나간 것이다. 매사이 가는 버스는 15분마다 한대씩 있었다.

 

나중에 매사이 간 이야기를 하겠지만 매사이는 태국 북단의 국경도시이다. 미얀마와 태국을 연결하는 국경도시인 것이다. 매사롱은 매사이 가는 길을 따라 가다가 중간지점인 반파쌍이라는 작은 마을에 내려서 차를 갈아타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단 매사이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이다. 이런 로컬 버스는 지방의 작은 마을이나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이니 편안할 리가 없다. 차안에는 선풍기가 돌아가거나 자연 바람으로 냉방을 한다. 버스 차체도 작은 편이고 의자 사이의 간격도 좁다는 것을 명심하고 타야 한다.

 

고생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치앙라이에서 썽태우를 하루 종일 빌려서 타고 가면 된다. 뭐든지 편안하고 싶으면 돈으로 떼우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므로 돈으로 떼우지 않고 몸으로 떼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몸으로 떼우는 것을 가지고 몸빵이라고 부른다. 몸으로 빵구(=펑크, 타이어 플랫) 떼운다는 뜻이라나? 하여튼 아이들 재치는 못말린다.

 

 

 

 7시 25분에 치앙라이를 출발한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탔다. 출근하는 직장인에서 부터 등교하는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참 많이도 탄다.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는 강을 건너 교외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들이야 출발지점에서 부터 탔으니 차창가로 붙은 좋은 자리에 앉아 간다. 도로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있어서 처음에는 기분하게 삼빡하게 갔다. 학교도 보고 산천경개도 관람하며 느긋하게 가는데  차장 아줌마가 반파상이라는 마을에서 내리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내리라면 내려야 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차장의 권세가 절정이므로 알아서 잘 내려야 한다. 반파상까지의 요금은 20바트였다. 반파상에 내리자 썽태우 가사가 들러 붙어 말을 걸어왔다.

 

"메사롱 가시는가?"

"그렇소!"

"450바트내면 지금 가리다."

"뭐시라고라고라고라잉? 우린 300밧 이상은 곤란한데......"

"여보시오, 다 올랐소. 기름값도 오르고 차값도 오르고 다 올랐단 말이오."

"그래요? 그렇다면 우린 일단 아침이나 먹고 가겠소. 그런 뒤 생각해보리다."

 

썽태우를 전세로 빌리는데 현지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튕겨보고 눈치를 봐야 했다. 더구나 우린 아침도 안먹고 출발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그러니 밥 먹고 천천히 가도 손해볼 일이 없는 것이다. 배가 고파진 우리들은 도로가 음식점에 들어가서 진을 치기로 했다.

 

  

 모녀가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제법 깔끔했다. 국수를 한그릇 사먹으며 여러가지를 슬금슬금 물어보았다.

 

"우리가 매사롱 가려고 하는데 썽태우를 타면 어느 정도 주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어리석은 질문인지도 모른다. 가게 주인과 썽태우 기사가 같은 친척이거나 가족이라면 바가지 쓰기에 딱 알맞은 질문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나온 안내서를 보면 썽태우 한대에 300밧이라고 하므로 아까 어거지 비슷하게 300 바트를 불러본 것이다.

 

  

 

 가게 주인은 일인당 70바트 정도는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하, 그래서 아까 처음에 말을 붙여온 기사가  450바트를 부르는구나 싶었다. 썽태우 정원을 7명이라고 보면 65바트 정도가 된다.

 

국수로 한끼를 떼운 우리들은 다시 교섭에 나섰다. 어떤 기사가 일인당 60밧을 부르길래 두말없이 타기로 했다. 우리가 300바트를 내면 나머지는 현지인이 알아서 내리라. 

 

의자에 앉자마자 차는 출발했고 나는 내 다리를 벅벅 긁어야 했다. 나는 며칠전부터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벌레에 물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물이 안맞아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자주 다리를 긁어야만 했고 결국은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게 된 것이다.

 

내 피부는 좀 특이해서 손이 스쳐지나가만 해도 부풀어 오르고 만다. 그런데 긁어버렸으니 오죽하랴? 짧은 반바지를 입은 내가 다리를 긁는 것을 본 현지인이 자기 배낭 속에서 고약을 내어 주며 바르라고 한다.

 

나는 평소 물파스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 또 내 피부는 내가 잘 알고 있으므로 고약을 바를 정도는 아니란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산골짝기에 사는 그가 내미는 고약을 거절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바르고 나서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다. 나는 배낭 속에서 비상약품을 꺼내 쓰지 않은 소독약을 하나 주었다. 그가 용도를 모를까 싶어서 한자로 소독용(消毒用)이라고 써서 주었다. 오늘 우리가 가는 동네는 중국인 집단촌이다. 그러므로 한자를 알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눈치를 보니 이 사람은 중국인이 아니고 태국현지인이다. 그래도 답답하면 중국인들에게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자로 용도를 적어서 건네 주었다. 영어는 더욱 더 모를테니까....

 

 

 차 안에는 현지 여학생 하나와 그 어머니로 보이는 아줌마도 함께 탔다. 여학생은 팔뚝에 심한 상처가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몸짓으로 설명을 해준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졌다고 하는데 상처가 상당히 심했다. 그나마 얼굴을 다치지 않은게 천만다행이다.  

 

  

 중간에 모녀를 내려준 썽태우는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며 산꼭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래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점점 멋있어지기 사작하는 것이다. 높이 올라가 보면 넓게 멀리 보인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이다. 직장 생활도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더 나은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나같은 하빠리 삼류 따라지 인생은 맨날 보고 듣는 것이 싸구려 하급이니 사는 것도 항상 이 수준으로만 논다. 남들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놀러갈때 나는 썽태우 타고 다니면서 뒤로 멀어져가는 경치만 보고 사는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잘난 사람은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면 되지. 오늘은 문장도 유행가 가사로 나온다. 그나저나 요즘은 신신애 아줌마가 왜 안보이지?

 

 산꼭대기로 올라서자 초지(草地) 비슷한 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매사롱은 보기보다 엄청 멀다. 썽태우를 타고 40분 이상은 족히 가는 거리이므로 일인당 요금 60밧은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멀미를 하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려고 하는 순간에 산꼭대기 부근에 자리잡은 동네에  도착했다. 느낌상으로 뭔가 다르다. 중국인 동네 냄새가 솔솔 풍겨나오는 것이다. 짐작대로 매사롱이 틀림없었다.

 

  

 

 이런 산꼭대기에 멋진 동네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산중턱 중간중간에 차밭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차밭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중국인들이 몰려 산다는 증거가 되리라.

 

썽태우가 도착한 종점에 근사한 찻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산골짜기에 중국인 집단촌이 존재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고 수상한 일이 아니던가? 사연인즉 이렇다.

 

  

 국공 투쟁이 한창일때 중국 최남부에는 국민당 군대가 일부 존재했었다. 국공이라니까 생소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분이 계실까 싶어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국(國)은 국민당을 말한다. 공(共)은 당연히 공산당이다.

 

청나라가 망하고 난 뒤 잠시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군벌들의 시대가 끝나갈때 권력을 잡은 사람이 국민당 지도자였던 장개석(蔣介石)이다. 치앙카이삭 혹은 쟝졔스라고 불리는 양반이다. 잘 아시다시피 장개석은 극심한 부정부패로 인해 민심을 잃어버리고 결국은 모택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공산당에게 대륙을 뺏기는 수모를 당하고 만다.

 

국민당 군대와 공산당 군대가 중국 대륙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때 중국 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장개석의 일부 부대는 출동 명령을 받고 대기상태에 있게 되지만 장개석의 군대가 패퇴하여 대만으로 물러가게 되자 그들은 순식간에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살기 위해 중국을 탈출하여 남쪽으로 이동을 계속하다가 태국 북부까지 와서 진을 치고는 명령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국제정세가 변하여 쓸모 없게 된 그들 국민당 부대는 태국의 골치덩어리로 전락하게 되었고 문제 집단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 태국 정부에서는 시민권을 주는 댓가로 무기를 버리게 했다.

 

그렇게 하여 태국에 정착하게 된 국민당 군인들과 그들 후손의 집단 거주지가 바로 매사롱인 것이다. 그러니 이 깊은 산속에 중국인 집단촌이 존재하는 것이고.......  태국인이 된 그들은 주둔지역을 개발하고 개간하고 개척하여 이런 동네를 만들었다. 알고보면 불쌍하고 처량한 팔자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찻집만 해도 아무리 봐도 중국인 냄새가 날 뿐이다. 상술과 이재에 밝은 중국인답게 이제는 부자 마을로 만들어두고 산다.

 

 

 태국 문자와 한자가 나란히 표기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는 산꼭대기 부근에 보이는 황금색 불탑을 목표로 삼아 올라가보기로 했다.

 

 

 자, 그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