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싱은 작은 도시다. 크게 볼거리가 있는 도시는 아니고 단지 티오만 섬으로 들어가는 경유지로 활용되는 도시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말레이지아 동부 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도시인데다가 싱가포르에서도 가까워서 많은 관광객들이 경유하는 도시라고 한다.
백인 아가씨 청년들과 함께 엉겁결에 내린 우리들은 곧 부근에 있는 여행사에 안내되어 들어갔다. 중국계 말레이지아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아주 유창한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
"여러분!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이 장소에서 여러분들은 티오만 섬으로 들어가는 배표를 구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오전 11시에 티오만 섬으로 들어가는 배가 있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 1시가 넘었으로 사용하기가 불가능합니다.다음 배는 원래 오후 1시에 있습니다만 조수(=밀물 썰물) 사정으로 인해 운항이 취소되었습니다.
다음배는 오후 3시 반입니다. 편도 요금은 35링깃이고 왕복으로 표를 살 경우 70 링깃입니다. 왕복으로 표를 사시면 돌아올때는 언제 어느 때든지 어떤 배를 사용해도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일사천리로 설명을 해주므로 나도 나서서 한마디를 해야했다. 우린 영어가 짧은편이기 때문이다.
"미스터, 당신도 아시다시피 내 영어는 수준이 높은 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참 미안하지만 좀 더 천천히 그리고 쉬운 말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서야 그가 좀 더 천천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으흠... 그런 뜻이로구나.
하지만 이런다고 덜렁 덤벼들어 표를 사면 곤란하다. 여긴 부두도 아니고 터미널도 아니다. 정식 요금이 얼마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사면 바보가 된다. 이럴땐 백인들 반응부터 살피는 게 중요하다. 왜냐고?
걔들 정보 수집력은 대단해서 거의 틀리는게 없기 때문이다. 척 보면 안다. 우리도 조금은 닳아먹은 여행자들이므로 느낌상 경험상으로 아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눈치를 보고 있으려니 백인 아가씨들부터 표를 사기 시작했다. 모두들 손에 론리 플래닛을 들고 있다.
표를 살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줄도 없이 와 덤벼들지만 얘네들은 그런 법이 없다. 차례대로 줄부터 선다. 물론 나는 뒤에 사기로 한다. 오후 3시 반이라면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팀원들을 모아 의논을 한 뒤 표를 사기로 했다.
내 경험상 돌아나오는 표를 구하려면 번거로우므로 왕복 표를 구하기로 했다. 조금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나중에 터미널을 가봤을 때 우리가 구한 표가 다른 사람들 표보다 비싸게 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순식간에 바보가 되는 것이다.
일단 표를 구했으니 이제 시내 구경을 나서야 한다. 오후 2시반까지 이리로 오면 보트 터미널까지 픽업해주겠다고 한다. 한 1킬로미터 된다나? 그렇다면 이젠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지금 먹어두어야 배멀미를 적게 한다. 빈속으로 배를 탈 경우 느끼는 고통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점심은 로터리 부근의 중국인 식당에 가서 볶음밥을 먹었다. 그런대로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총각 한사람이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한다. 설사를 한다니 걱정스럽다.
이럴때를 대비하여 모두들 자기 개인용 설사약을 가지고 오라고 했었다. 여행 중에 아프면 대책이 없으므로 자기 몸 관리는 자기가 알아서 잘 해야하지만 음식으로 나는 사고는 예방하기가 어렵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엔 시장에 갔다. 과일을 사서 먹기로 하고 다 같이 돈을 내어서 과일을 조금 샀다. 시장 부근에는 바다에 가까운 강이 있었는데 뻘 바닥에 망둥이들이 놀고 있었다. 녀석들이 제법 크고 통통해서 그런대로 먹을게 있지 싶었다.
빈둥거리다가 마침내 버스 정류장에도 가보았다. 여기는 로컬(local) 버스 정류장이고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따로 있다. 11년전 말레이지아에 처음 왔을 때 생각이 난다. 티오만 섬에서 나와 콴탄을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다같이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이 정류장에는 백인청년들과 아가씨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행 안내서에는 분명히 버스 터미널이 여기로 표시되어 있었는데도 한명도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게 여겨서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장거리 버스 터미널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허겁지겁 뛰어서(그때도 버스 시간이 다되어 배낭매고 뛰었다) 정신없이 찾아가 보니 백인들은 모두들 미리 표를 구해놓고 느긋하게 쉬고 있었다. 그들 손에 들려있는 책을 보니 바로 론리 플래닛이었던 것이다.
너무 약이 오르고 오기가 치솟아 콴탄을 거쳐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자 말자 서점을 찾아갔고 어찌어찌하여 론리 플래닛 동남아시아 판을 한권 구했는데 그 이후로는 여행하기가 얼마나 수월했는지 모른다.
여긴 그런 사연이 엉겨있는 곳이다. 여행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체험한 곳이므로 나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인 것이다.
로컬 정류장이서 그런지 확실히 후지다. 이런 도시에서 택시 보기도 힘이 들었는데 여긴 몇대가 돌아다닌다.
두시 반이 되어 여행사에 가 보았더니 백인 단체 손님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오늘 우리와 함께 모두들 같은 배를 타고 티오만 섬에 갈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중국계 청년은 아까 하던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에 일본인들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일본인이라고 생각되는 청년 두사람이 보이긴 했지만 숫자가 적었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봉고를 타고 보트 터미널에 갔다.
여기다. 여기가 바로 보트 터미널이다. 시간표도 아까 여행사에서 말한 것과 일치했고 요금도 같았다. 말레이지아 말 표기를 보면 영어를 발음나는 그대로 옮겨쓰는 경우도 상당수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금 외에 추가로 더 내어야 하는 돈이 있는데 바로 티오만 섬 환경보호를 위한 환경세라는 것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돈이라니까 할말은 없지만 그럴것 같으면 처음부터 요금 속에다 넣어서 계산을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자연보호 요금은 5링깃이었다.
요일별 보트 시간표다. 조수 간만의 차이 때문에 시간표는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트 터미널에서 업무를 보시는 분들이다. 우리가 한국인들이라니까 단번에 이분들 입에서는 이영표, 박지성, 이천수 등 우리 축구선수들의 이름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보트 승강장의 모습이다. 표를 산 사람은 저기 승강장에 들어가서 대기하도록 되어 있다.
표를 파는 곳은 이런 모습이다. 여행을 하는데는 영어를 할줄 알면 편하지만 영어를 몰라도 된다. 용기와 의지만 있으면(물론 돈과 건강은 필수이고) 누구나 배낭여행을 할 수 있다. 영어를 알면 그만큼 더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작은 용기만 있어도 편해진다. 그러니 나같은 어리버리한 시골 촌 선생도 여행을 다니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내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나는 마음도 여리고 돈도 없고 경제적인 여유도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돌아다니는 것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하나 때문이다.
3시가 넘어서자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천둥치는 소리가 고막을 때리기 시작했다. 스콜이다. 이어서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지방에서 이런 비는 흔하게 보고 다니는 비라지만 어찌 이번에는 좀 심하다 싶었다.
앞이 자욱해질 정도로 비안개가 들이밀면서 양동이 채로 붓는 것같이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합실 지붕이 함석으로 되어서 그런지 빗소리가 너무 요란했다. 마치 세상 끝날이라도 온 것 같다.
처음에는 조금 흐려진다 싶을 정도였다. 이윽고 앞이 안보일 정도로 변하기 시작했으니..... 정말 대단한 소나기였다.
보트 승강장 부근에 정박중이던 작은 어선도 서둘러 대피하느라고 허겁지겁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빨간 색 어구들과 어부들이 입은 노란색 비옷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당사자들은 비를 긋기를 기다리는 절박한 마음으로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색감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러다가 비가 멈추었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다 되어도 우리가 타고 갈 배가 들어오질 않는 것이다. 늦어지면 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된다. 호텔 예약을 안해둔 우리들이므로 여관 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비가 그치자 모든 것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간다. 디시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마침내 우리가 탈 배가 들어왔다. 티오만 섬에서 이제 막 도착한 것이다. 미리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우린 뒤에 쳐져 있다가 늦게 탔다. 일찍 타서 갑판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덕분에 댓가는 혹독히, 정말로 참혹하게 치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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