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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KL 뒤지고 누비기 1

by 깜쌤 2006. 9. 1.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기차를 타기 전에 아까 맡겨두었던 배낭을 찾아야했다. 이 나라에서는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기 한 30분쯤 전에 개찰을 해주는 모양이다.

 

배낭을 찾아야했는데 아침에 우리 짐을 맡겼던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아마 교대를 하고 집으로 들어간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젊은 역직원에게 짐을 찾고 싶다고 해도 그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다시 한번 더 가서 이야기를 해야했다.

 

"보시오, 젊은 친구, 우린 배낭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맡겨 두었습니다." 

 

배낭을 매는 시늉을 했더니 그제서야 이 친구가 감을 잡았다. 상대가 영어를 정확하게 못알아들었다고 생각이 되면 몇번이고 이야기해서 알아듣게 만들어야 한다. 짐을 찾은 우리들은 비로소  기차를 탈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는가? 아시는 분은 철도에 대한 관심이 대단한 분임에 틀림없다. 이런 것들은 이제 한국에서는 거의 다 사라진 물건들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보통 기차역에서 흔하게 볼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나보기가 어렵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물건인데 여기 알로스타에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것은 철로를 사람 힘으로 바꾸는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젠 전기 힘으로 바꾸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기차역에는 수많은 선로가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 장치를 가지고 기차가 다양한 플랫폼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기차는 거의 정시에 들어왔고 우리는 두팀으로 나뉘어 기차를 타게 되었다. 나와 한명의 청년은 2등 좌석칸으로 갔고 나머지 세사람은 침대칸으로 갔다. 목적지는 종착역인 쿠알라룸푸르(=KL)이니 안심하고 푸욱 자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올라탄 이등칸에는 사람들이 적었다. 좌석도 충분해서 얼마든지 다른 자리에 앉아 갈수도 있었지만 준법정신에 투철한 우리들인지라 지정된 좌석에 얌전하게 앉아 모범생 역할을 해가며 기차여행을 즐긴 것이다.

 

 

 

남행(南行)하는 기차는 소리만 요란해서 엄청 빠른 것 같아도 실제 속도는 그렇지않은 모양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혼이 찾아왔다.

 

 

 

나는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드는 황혼이 좋다. 낙조가 좋다. 3,4,,5 공화국때 세상을 쥐락펴락 하시던 충청도 출신의 김누구누구 의원은 연세가 들어 가자 은퇴를 앞두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이젠 하늘을 벌겋게 물들여보고 싶다."

 

내가 본 최고의 낙조는 필리핀의 루손 섬 바탕가스 부근 바닷가에서 본 것이었다. 한시간 이상이나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고의 낙조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왜 예전같은 저녁놀이 잘 안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환경오염 때문일까?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동네 골목길을 뛰어놀다가 어머니나 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집으로 돌아가던 그 시절엔 자주 서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곤 했는데 이젠 왜 그런 모습들이 드문가 말이다.

 

 

 

 

 

 

기차는 줄기차게 논 가운데를 헤치며 달렸고.... 따가닥 따가닥 소리를 내며.....  바퀴소리가 이렇게 귀에 들렸기에 우리 조상들은 기차를 철마라고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야자수 사이로 구름은 붉은 빛으로 흐르기만 했었다. 낮에 하루종일 걸어다녔으므로 쉽게 잠이 들고 만다. 열차바퀴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빡깜빡 잠이 들었는데 기차는 쉽게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지만 시간은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뜨니 밖이 컴컴한데 쿠알라룸푸르 부근의 기차역 이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레이지아 동해안의 기차역인줄 착각했었다. 도착시간이 다 되어가므로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만 착각하려면 얼마든지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이하 KL) 플랫폼에 발을 내딛는 순간까지만 해도 사위가 컴컴했는데 대합실에 들어오자 순식간에 날이 새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야했다. 그래야 공짜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마련이다. 

 

KL만해도 이제는 배낭여행자 숙소가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여행에서 숙박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인데 배낭여행자 숙소가 사라져가면 우리같은 가난한 여행자들만 골탕을 먹게 되어 있다.

 

더구나 KL역은 최근에 새로지어 옮긴 것이다. 그러니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일단 대합실에 모두 모여서 세수를 하기로 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므로 지금 호텔을 잡으러 가는 것은 소용이 없다. 손님들이 체크아웃을 해야 빈방이 생기는 것인데 이 새벽에 일찍 가본들 무엇하겠는가?

 

     

 

인포메이션 센터는 문이 닫혀 있었다. 직원이 출근하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답답한 자가 샘을 판다는 말처럼 답답한 것은 우리였으므로 대합실 안에 자리잡은 서점에 들어갔다.

 

서점에는 지도를 팔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위치가 어딘지를 파악해야 호텔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다행히 지도를 팔고 있었다. 지도만 구하면 위치 파악은 쉽다. 지도를 펴놓고 살펴본 결과 새로 지은 역사는 예전 역에서 크게 먼 곳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젠 감이 다 잡힌다. KL은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므로 가봐야 할곳은 대강 다 안다. 머리가 기막히게 잘 돌아가는 대학생 한명을 데리고 일단 위치 파악에 나섰다. 다른 분들은 모두 대합실 안에서 기다리게 해놓고 역 대합실을 나선 것이다.

 

문을 나서자 앞을 가로막는 이것은 어마어마한 호텔이다. 사진의 왼쪽에 일부분만 보이는 것은 KL 기차역 신청사이고 오른쪽의 고층건물은 새로 지은 호텔이다. 이거 완전히 상전벽해(桑田碧海) 가 된 것이다. 말레이지아의 발전상이 놀라울 정도이다.

 

호텔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나가보니 예전 내가 알던 거리와는 도저히 구별이 안된다. 너무 많이 변한 것이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서 욕지거리가 나올뻔 했다. 말레이지아는 이렇게 발전을 거듭할 동안 최근 몇년간 우리는 무얼 했던가 하는데서 오는 분노인 것이다.

 

발전이 능사는 아니지만 현재의 우리 살림살이를 보면 고단했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긴 너무나 달라져서 위치 파악이 거의 불가능했다. 지도상으로의 위치는 대강 짐작이 되지만 말이다.

 

 

  

다시 대합실 속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지도를 꺼내놓고 정밀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어디든지 역 앞은 번화가인 법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역 뒤쪽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을 살펴야 했다.

 

 

어떤가? 말레이지아 KL 역 청사 내부가 이만하면 그럴듯하지 않은가? 국립 S대에 다니는 학생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여관을 찾으러 나섰다. 역에 바짝 붙어서버린 엄청난 호텔에 기가 죽어버린 우리들은 제복입은 경찰에게 길을 물었다.

 

에상외로 영어를 쉽게 알아들은 경찰은 싼 호텔 이름까지 대어주며 위 사진에서 본 호텔과는 완전 반대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럼 그렇지..... 쾌재를 부르면서 다른 쪽 출입구를 찾아나가 본 결과 도로 건너편에 작은 호텔간판들을 서너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 우린 원래 하는 일이 기막히게 잘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복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젠 다 되었다. 역 앞에 싸구려 호텔이 없으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에헤라디요'다.

 

역 앞 도로를 건너가서 몇군데 호텔을 뒤졌는데 가격이 조금 센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정말 그러다가 우연히 YMCA간판을 발견했다. 우와~~ 와이엠시에이다. YMCA 호텔치고 엉터리가 있던가? 들어가 보았는데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단 하루밖에 여유가 없단다. 하루면 어떠랴? 오늘 부지런히 보고 내일 오전에 또 보고 오후에는 말래카로 가면 되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단번에 예약을 하고 돌아왔다. 발걸음도 가배얍게..... 보무도 당당하게..... 만사가 너무 형통하기 때문이다.

 

 

  

역 대합실에 돌아온 우리들은 배낭을 매고 YMCA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음식점에 들러 아침을 사먹고 가기로 했다. 모처럼 커피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나야 뭐 자판기 커피에 익숙한 몸이므로 설탕이든 뭐든 섞을 것 다 섞고 태울 것 다 태워서 갖다주어도 만사 오케이다. 달착지근한 것이 맛있다. 구수하고 고소하고..... 밥은 볶음밥이다.

 

   

완전 싸구려 냄새가 폴폴 난다. 그래도 맛있다. YMCA부근 광동성 출신 화교 음식점에서 먹었는데 맛만 좋다. 바람이 세게 불면 쌀낱이 포올 날려갈듯한 가벼운 느낌의 안남미 밥이지만 나에겐 진수성찬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조금 거칠게 먹었는데도 우리돈 1500원 정도가 나왔다. 커피 한잔까지 포함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우리 옆 좌석에서 아침 식사를 한 풍채좋은 노신사는 과거 말레이지아 국방부에 고위직으로 근무했다면서 이 집 음식은 맛이 있는 편이라고 은근히 자랑을 해왔다. 아, 그럼 우리가 누구냐? 이런 맛있는 집만 골라다니는 사람들 아니던가? 우리가 YMCA에 머문다고 했더니 거기는 이 부근에서 가장 좋은 호텔이라면서 멋진 곳이라고 말해준다. 빈말이라도 기분이 좋았다.

 

 

민생고를 해결한 우리들은 YMCA카운터에 배낭을 맡겨두고 말레이지아 수도인 쿠알라룸푸르 샅샅이 뒤지기에 나섰던 것이다. 어리버리한 나를 앞세우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