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6 동남아시아-여행자의 낙원(完)

말레이지아행 장거리 국제 열차 2

by 깜쌤 2006. 8. 29.

 

사람이 세상을 살땐 이웃을 잘만나야 편하다. 이웃에 법을 전공한 놀부심보 법대 교수나 변호사가 살고 있다면 시시콜콜한 일에 시비를 걸릴 각오는 단단히 하고 살아야한다. 술꼬장을 부리거나 심술 고약한 사람을 이웃으로 두면 편할 날이 없다는 것은 상식 아니던가?

 

기차여행도 그렇다. 이런 침대칸일수록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안그러면 하루종일 괴로워진다. 우린 복있는 사람들이므로 사람 하나는 잘 만났다. 이 아가씨, 그러니까 미스 캔은 태국의 명문대학인 탐마삿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현재는 태국 법무부에 근무하는 재원이다.

 

태국인치고는 영어를 그런대로 잘 해서 대화가 되었다. 휴가를 얻어 집에 가는데 핫야이 부근이라고 한다. 핫야이라면 말레이지아 국경에서 그리 먼도시도 아니고 얼마전엔 이슬람교도들이 폭탄을 터뜨려 국제적인 유명세를 조금 얻는 그런 도시를 말한다.

 

"혹시 대중김이라고 아세요?
"예?"

"대중 김,말입니다. 우리 태국에서 아주 유명한데요."

 

아니? 그양반이 대통령 할때가 언젠데 싶다. 머리를 아무리 돌려도 이해가 잘 안된다. 이 아가씨가 우리 대통령 열렬 광팬일리는 없을텐데.....

 

"거 왜 음식 잘 만드는 아가씨 나오지 않습니까? 정말 예쁘던데요."

 

이제야 감이 잡힌다. 아하, 대장금 이야기를 하는구나 싶었다.

 

"대장금 이야기군요. 대장금!'

"예, 대중김."

 

어허허허.... 속으로만 한참 웃었다. 이 아기씨는 대(大)장금이가 그냥 그대로 이름으로 아는 모양이다. 역시 배운 아가씨답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가씨의 고향은 핫야이 전에 나오는 도시 빠딸롱(파탈롱)이었고 총각의 고향이 핫야이라고 했다. 핫야이는 태국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도시다.

 

 핫야이에서 말레이지아 반도로 내려가는 길이 두개로 갈라진다. 말레이지아 서부로 내려가서 알로르 세타르와 버터워스, 이포 같은 도시를 거쳐 쿠알라룸푸르나 말레카 같은 도시로 갈수도 있다. 서부지방의 섬으로는 랑카위페낭이 유명하다. 

 

핫야이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얄라 같은 도시를 지나 쑹가이 꼴록을 지나 말레이지아로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말레이지아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게 되는데 프리헨시안(쁘렝띠안) 섬이나 티오만 같은 섬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해안으로 내려가서 동해안을 거쳐 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정해두었다. 24일간의 여행 중 마지막 이틀은 자유중국의 타이페이를 방문해야 하므로 실제 시간은 3주일밖에 없는 셈이다.

 

 

3주일이면 엄청나게 긴 시간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정도를 가지고는 도시 대여섯개만 보면 끝나버리게 되어 있다. 여행기간으로는 짧은 축에 들어가는 시간인 것이다.

 

열차안에서 노닥거리던 우리들은 어느 정도 피곤해졌다 싶은 순간에 눕고 싶어 했다. 내 침대는 이층이므로 차장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야만 했다. 낮이라도 �고 싶으면 열차내의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해두면 된다.

 

나는 눕고 싶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막상 이층에 침대를 펴놓고 나자 따라온 청년들이 너무 피곤해 보였다. 결국은 청년들 가운데 한명에게 양보하고 만다. 피곤할 때는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게 좋은 방법이다.

 

 

  

서서히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므로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해가 지는 것이다. 멋있는 낙조를 기대했지만 아름다운 낙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좋은 낙조를 만단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해지는 모습은 서양인들이 좋아하고 동양인 - 특히 한국인 - 들은 일출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시골 간이역사에도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플랫폼 벤치위에서 책을 읽는 모습들이 정겹기만 했다.

 

 

 

어디에서나 풋풋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나도 저런 날들이 있었던가 싶다.

 

 

쁘라주압키리칸 정도를 지나면서 부터는 거의 어두워져 갔다. 이젠 슬슬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바나나와 비스켓 몇개를 주워 먹는 것으로 저녁을 떼웠다.

 

 

낮에 미리 주문한 사람들에게는 식당차에서 배달을 해서 가져다 준다. 이 정도로 차려주고 약 100밧 정도를 받는 모양이다. 우리돈으로 치면 3000원짜리 고급 식사이다. 나야 안먹고 버티는데 워낙 익숙해져 있으므로 비스켓 몇개로도 버틸 수 있지만 청년들은 그렇게 하면 허기가 쉽게 질 것 같아서 시켜먹으로라고 강력하게 권했다.

 

배달되어 온 밥이 제법 따끈해서 맛있게 보였다. 여행 시작기간이어서 그런지 아직은 우리 음식이 별로 먹고 싶어지지도 않는다.

 

 

 

이층 침대칸의 모습은 이렇다. 침대를 펼치면 이런 모습이 되는데 이층에는 창문이 없어서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창문없는 침대차를 타보는 것도 처음이지 싶다. 통로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전 맬빵이 두군데 쳐진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경우 맬빵 끈 틈사이로 밑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당할 수 있으므로 어지간하면 이층에는 어른이 올라가는 것이 옳은 일이지 싶다.

 

 

 

이젠 누워서 자면 된다. 각 침대마다 커튼이 쳐지기 시작했다. 캄캄한데 밖을 내다보는 것도 별 의미가 없으므로 눈을 붙이는게 좋다. 첫날은 무궁화호 열차에서 잠을 자고 둘째날은 태국 공항 바닥에서 새우잠을 잤다.

 

오늘은 흔들리는 침대차의 침대위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이동경비와 이동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야간열차를 타는 것인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약할 길이 없다. ㅂ선생의 표정이 재미있다.

 

 

ㅎ부장도 잠자리에 들 모양이다. 가지고 온 담요 색깔이 화려하다.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핫야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일어났고 어떤 사람들은 밤새 사라지고 없었다. 법무성에 근무하는 아가씨는 새벽에 빳따롱에 내렸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작별 인사도 못하고 보낸 셈이 되었다.

 

 

핫야이에서는 대학생을 내려보냈다. 부디 성공해서 멋진 인생을 살기 바란다. 핫야이에서 한시간 정도만 더 가면 국경역인 빠당베사르가 나온다. 거기에서는 내려서 출국과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하므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내짐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국경역에 내릴 준비를 해두었다. 셍겐 조약에 가입을 해둔 일부 유럽연합국(EU) 같으면 여권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통과할 것이지만 여긴 유럽이 아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야간열차에서는 아예 출입국심사라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 그냥 국경을 넘어가는 것이어서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태국쪽 국경역인 빠당베사르 역에 도착했다. 배낭을 지고 내려서 태국 출국심사를 받는다. 태국쪽 출국심사 구역과 말레이지아 입국 심사 구역이 한건물 속에 있으므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말레이지아 지역쪽으로 나오면서 모든 절차가 끝나게 되어 있다. 사실 국경역 속에는 국경이라는 그런 명확한 표시가 없으므로 어느쪽이 태국이고 말레이지아인지 구별도 안될 지경이다.

 

출국심사는 아주 간단해서 여권에 출국 스탬프를 찍고 태국 들어올 때 쓴 입국신고서를 떼내어가는 정도의 수준이다. 말레이지아 입국 심사도 마찬가지다.

 

 

이 사진의 한쪽은 태국이고 다른 한쪽은 말레이지아로 생각하면 된다. 말레이지아 입국 심사도 마쳤으니 이젠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면 된다. 열차는 타고왔던 바로 그 열차다.

 

 

이젠 태국 돈을 정리해서 배낭이나 복대에 넣어두어야 했다. 한 열흘이 지난 뒤에 다시 태국으로 올라올 생각이니 태국돈을 굳이 말레이지아 돈으로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늘이 금요일이므로 회교 국가인 말레이지아의 어떤 주는 오늘이 바로 휴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미리 환전을 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알로르 세타르 가 있는 케다 주는 회교 규칙 적용이 엄격한 주이므로 오늘 금요일이 휴일일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지아는 최근들어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국경역에 정차하고 있는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기차들만 봐도 충분히 증명이 된다. 일본도 경제가 회복되고 있고 중국의 성장률은 세계가 놀랄 정도이므로 굳이 언급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입만 아프게 싸우는 우리 현실을 보면 왕짜증이 난다. 입만 살아 떠드는 무능한 자들이 벌이는 현란한 말잔치는 이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모두 다 경제 발전과 삶의 잘 향상에 목을 매는 실정인데 우린 뭔가 싶다.

 

여행을 다니는 나라 사람들은 거의 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선진국들이다. 예전에는 중국인들 보기가 어려웠지만 이젠 태국 정도는 중국인들이 판을 친다. 지난 10년간 중국인들의 경제성장이 눈부실 정도인데 우린 지난 10여년 동안 뭘 하고 살았던가 싶다.

 

 

왕짜증나는 우리 현실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하자. 언젠가는 심기일전하여 새로 뛰는 그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기차는 약 두시간이나 지난 후에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젠 말레이지아다. 여기서부턴 사람들 얼굴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태국인, 라오스인, 캄보디아인들은 황인종 중에서 남방 계통의 사람들이라는 냄새가 나지만 전통적인 말레이지아 사람들은 우리와는 얼굴 모습이 많이 다르다.

 

인도인 냄새가 슬슬 풍기는 것이다. 그리고 말도 달라짐을 느낀다. 태국 말에는 성조가 있지만 말레이지아 말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말레이지아 말과 인도네시아 말이 서로 비슷하다고 한다.

 

 

풍경도 일변하여 석회암 봉우리들이 슬슬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석회암 봉우리들이 있는 곳은 중국의 계림 풍경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태국 푸켓 섬 부근도 석회암 지대인 것 같다.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 사이로는 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태국 남서부 지방은 조금 황량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말레이지아는 태국보다 조금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듯반듯한 곳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차창 밖으론 빗방울이 떨어졌다. 열대지방의 비는 크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서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이 지나갈때처럼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억수같이 따루기도 하지만 하루고 이틀이고 종일 내린다는 식으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내릴때도 있다. 하지만 여긴 주로 소나기가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올 때가 많았다. 그러니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조금 있으면 그칠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그리하여 마침내 11시 30분 경에 알로르 세타르 역에 도착했던 것이다. 참고로 말레이지아는 태국과 한시간의 시차가 나게 되어 있다. 태국은 우리나라와 두시간의 시차를 가지지만  말레이지아는 한시간의 시차를 가진다.

 

말레이지아 영토는 예전의 보르네오 섬이라고 알려진 곳에도 있다. 알고보면 큰나라이고 자원도 많은 나라이다. 그러니 시간대를 그렇게 정한 모양이다.시차는 그렇다치고 말레이지아에는 중국인들이 전체인구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경제적인 활동도 왕성한 나라인 것이다.

 

20여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던 히잡을 쓴 말레이지아 아가씨들과도 이별을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