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잠을 자는 것은 특수한 경우에 한해야 한다. 돈 아낀다고 처음부터 이런 버릇 들이면 탈 나기 쉽다. 한밤중에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든가 이른 새벽에 비행기를 타야 한다던가 하는 경우에는 공항에서 버티면 좋다. 돈이 된다면 공항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공항 호텔을 쓰는 것도 좋다. 태국 방콕의 돈무앙 공항, 이스탄불의 아타투르크 국제공항, 그리고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에서 잠을 자보았는데 고통의 연속이었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럼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두번째 싱가포르 방문 시의 추억을 떠올려보기로 하자. 그땐 싱가포르로 입국해서 말레이시아로 올라간 뒤 배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갔다. 그런 뒤 방콕에서 오사카로 날아가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서울로 돌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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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상가포르 공항에 도착한 나와 친구는 입국 절차를 밟지 않은 상태에서 공항경찰을 붙들고 확인을 해보았다.
"바닥에 종이를 깔고 잠을 자도 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닌가?"
"문제없습니다."
"싱가포르 법은 상당히 엄격한 것으로 소문나 있는데."
"싱가포르라도 해도 이런 데서 까지 그렇게 엄격하게 집행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안심이다. 1청사와 2 청사를 이어주는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니 잠잘만한 공간이 있었다. 군데군데 백인 여행자들이 쭈그리고 앉아 눈치를 보며 버티고 있었다. 기둥이 있고 부근에 대형 화분이 있는 공간 뒤에 비행기에서 미리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가져온 신문지를 깔고 누워본다. 멋지다. 이만하면 하룻밤 자는 데는 문제없다.
우리들이 그렇게 잠을 청하자 눈치를 보던 백인 여행자들도 슬며시 따라하는 것 아닌가? 웃음이 나오면서 싱가포르 정부 당국의 법질서 집행의지가 부러워졌다. 워낙 소문난 국가니까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겁을 먹는다는 것! 이건 정말 유쾌한 체험이다.
그러면서도 슬며시 터져 나오는 한숨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법을 지키면 지킬수록 등신이 되는 이상한 나라가 지구 동쪽 고요한 아침이 시작되는 어떤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괜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 피곤하면 잠이 오지 않는 법이다. 밤 12시 그러니까 영시에 기차를 탔다. 서울까지 가서 오사카행 비행기를 타고 다시 싱가포르까지 날아왔다. 여긴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점령하고 나서 '소남도'라고 불렸던 곳이다.
거기에서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하고 있다. 24시간 동안 멀리도 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닌가 말이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도 아직 새벽 2시밖에 안 된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한기를 느낀다. 난 추위에 특별히 약하다. 몸이 떨려온다. 일어나서 배낭을 풀고 있는 대로 다 껴입었다. 열대지방에서 말이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나이 마흔 얼마(당시만 해도 아직은 40대였다)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벌어놓은 돈 없는 대가라면 그리 비싼 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고생이니 크게 후회할 일도 없다. 인생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눈을 뜨니 5시 30분이 되었다. 적어도 5시간은 잔 것이니 오늘 하루는 견딜만하지 싶다.
"영감(동행했던 친구의 별칭), 견딜만해?"
사람 좋은 영감은 슬쩍 미소만 짓고 만다. 친구 잘못 만나 따라와서는 괜한 고생을 한다 싶어 미안한 감이 앞선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대변용 화장실은 얼마나 큰지 변기통 부근에서 출입문까지는 몇 미터가 된다. 누가 밖에서 노크하면 말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세면대 수도꼭지는 누르게 되어있는데 5초 뒤가 되면 완전히 원래 자리로 올라오면서 물이 안나오게 되어 있었다. 싱가포르 사람들의 합리적인 생활태도는 요런 작은 곳에까지 미쳐있다. 그러니 소문난 곳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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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이다. 공항내 숙박은 그런 요령으로 하면 된다. 지금은 창이공항 내 숙박이 가능한지 어떤지 잘 모르므로 이 글을 읽으시고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숙박하시려는 분들은 반드시 사전 확인을 해보시기 바란다. 내 생각인데 공항은 24시간 영업하는 장소이다. 특히 싱가포르 공항은 더욱 더 그런 곳이다. 트랜싯 승객이 많으므로 그 정도는 허락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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