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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터키 - 다시 이스탄불로 6

by 깜쌤 2006. 6. 26.

 

톱카피 공원에서 나온 나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앉은 벤치 부근에 터잡고 있는 청년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트램 앞쪽을 유유히 달려나오는 택시들이 여유롭게 보인다.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술타나아흐메트 트램역이 된다)

 

 

"옥수수 좀 드시겠소?"

"괜찮습니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순수한 본심을 보았다.

 

"조금만 드시지요."

"고맙습니다."

"난 한국인이오. 터키는 세번째지요."

"그래요? 환영합니다."

 

 

 

"저는 하산이라고 합니다.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그들의 인종차별에 환멸을 느껴 터키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현재는 대학생이고 22살이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대화는 '터키와 한국과의 관계', '이슬람과 터키인 생활의 관계', '한국 경제 성장의 원인분석', '국제인으로서의 코스모폴리탄의 생활자세'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여서 대화하기가 너무 편했다. 물론 말은 그가 많이 하는 편이었고 나는 듣거나 맞장구를 치는 정도로 진행되었다. 거의 한시간 가량 대화를 나누었지 싶다.

 

옥수수를 다 까먹은 나는 일어서야만 했다. 하렘구경을 하러간 일행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전체가 다시 만난 우리들은 트램을 타고 그랜드 바자르를 향해 이동했다. 

 

 

 

 

그랜드 바자르! 이스탄불의 명물 시장이다. 없는게 없다는 세계 최대규모의 시장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정말 그런지 안그런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거대한 곳이다.

 

트램에서 내린 우리들은 집합 장소와 시간을 정해두고는 각자 자유롭게 흩어져 구경을 하기로 했다. 나는 ㄱ부장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이므로 다니기가 편하다. 

 

 

 

메인 통로의 모습을 확인해둔 뒤 작은 통로를 구경하는 방법(가로로 통하는 중심길을 먼저 확인해두고 세로로 난 길을 다니는 식이다)을 쓰기로 했다. 워낙 골목이 많고 가게도 많은데다가 사람들이 바글거리므로 길을 잃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붕이 덮인 곳이므로 비가와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으로 들어가면 보기보다는 시원해서 견딜만한 것은 물론이고 테러를 대비해서 많은 경찰들이 깔려있으므로 비교적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화재발생시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런 것은 운에 맡기고 들어가 보자.

 

 

 

보석가게다.

 

 

메인 통로는 거대해서 쉽게 쏘다닐수 있다. 

 

 

 

그릇가게이고.......

 

 

 

여긴 악세사리 가게이고........

 

 

 

 

 

 

 

 

 

 

 

 

 

 

 

 

 

 

 

 

 

 

 

 

 

 

 

 

 

 

 

 

 

 

 

 

 

 

 

 

 

 

이 친구는 자칭 욘사마였다. 우리말로 욘사마라고 소개해왔다. 그가 워낙 싹싹하게 굴어서 친척이 운영한다는 카펫가게에 한번 따라 들어가 보았다.

 

"안사도 관계없습니다. 구경만 하시면 됩니다."

 

 

여기 상인들이 좀 영악한가? 카페트는 작은 것들도 300달러에서 부터 시작했다. 너무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손님이 원하시는 가격은 얼마이십니까?"

 

이럴때 금액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오. 당신은 아주 친절한 양반이오. 고맙소. 그리고 당신도 아시다시피 우린 귀국할 때가 다 된 사람이오, 그러니 수중에 가진 돈이 거의 없소."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 나온다. 그릇가게 총각은 인상이 좋았다.

 

 

 

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어디서 구했는지 한국제 수건을 들고 난리다.

 

 

 

 

시간이 되어 입구로 빠져나온 우리들은 일행을 기다렸다.

 

 

 

 

그날 우리들은 골든혼을 가로 지른 다리밑 레스토랑에서 점잖게 식사를 했다. 봉사료 10퍼센트까지 주어가면서 말이다.

 

 

 

 

크게 한턱 쏘아주신 한샘군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보통 지금까지의 배낭여행에서 마지막 날 저녁은 나를 따라 다니면서 죽을 고생을 한 일행들에게 내가 거의 대접했었다.하지만 이번 경우는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했다간 내 비자금 경제가 거덜날 것 같아서 자제해야만 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