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의 남문 쪽으로는 거대한 풀장 공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상당히 거대한데 여기에 물을 다 채우려면 엄청난 양의 온천수가 필요하지 싶다. 위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를 독점해야 가능하지 싶은데.....
수영장의 특성상 물을 자주 갈아주어야 할 것이니 유지관리비도 엄청나게 들 것 같다. 실내 온천장도 짓는지 모르겠지만 야외 온천장이라면 겨울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일본인들이라면 워낙 온천이 많은 나라니까 그런데 대한 노우하우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1988년에 처음 여기 왔을 땐 미스터 케림 집에 머물렀다. 원래 부인이었던 터키 여자와 이혼하고 여기에 구경왔다가 그와 알게된 홍콩 여자와 재혼을 한 것으로 아는데 몸이 가냘펐다. 요즘도 살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괜히 안쓰러웠던 추억이 있다.
케림을 계림이라고 발음해도 비슷하게 소리가 나므로 한자로 계림(桂林)여관이라고 써 두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집 안마당에[도 작은 풀장이 있었다. 한번 수영을 해보았는데 밑바닥에 허연 이물질이 눌러 붙은 것을 본 기억이 생생하다.
이 동네 하수도도 잘 보면 하얀 물질들이 엉겨 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니 거대한 풀장을 만든다고 해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련히 그들이 잘 알아서 할까마는 괜히 걱정해주는 나도 어찌보면 걱정도 팔자인 사람이다.
집집마다 풀장을 운영할 때는 온천물을 서로 끌어가려고 난리였던 모양이다.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해서 규칙을 정해 물길을 이리저리 돌려보내기도 했단다.
남문 부근 돌무시 정류장에서 돌무시를 타고 데니즐리 시내로 돌아갔다. 오늘 밤도 장거리 버스 안에서 지새워야 하므로 일단 저녁을 먹어두어야 했다. 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되네르 케밥을 먹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 안에 있는 간이 매점에서 케밥을 사서 먹는다. 동양인들이 떼거리로 들어오자 식당 종업원들이 즐거워한다. 그런데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 만큼이나 실내는 지저분하다. 좀 깨끗하게 만들어두고 장사하면 어디가 덧나는가 보다.
우리팀의 청년은 순식간에 종업원들과 친해져 사진을 찍고 음식 만드는데 붙어서 같이 해보는 등 난리가 났다. 그래, 젊다는 게 좋은 것이다. 젊은이들끼리는 저렇게 쉽게 어우러질 수 있으니 젊음이란게 좋긴 좋다.
포도 몇 송이를 사와서 되네르 케밥과 함께 간단히 한끼를 떼웠다. 저녁을 먹은 후 버스 매표구에 가서 표를 요구했는데 이 사람들이 정식으로 된 표를 끊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돈을 지불해줄 수가 없다. 영수증을 받든지 차표를 받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차 출발 시각 10분 전에 운전수라는 사람을 데려 왔는데 창구에서는 그 사람에게 돈을 지불하기를 요구해왔다. 오늘 이 시간에 출발하지 않으면 일정이 다 어그러지므로 운전수에게 요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11명 총액이 330터키 리라이다.
뭔가 찝찝해서 다시 한번 확인해도 운전기사라고 한다. 그가 타도 좋다고 하므로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네부투르 회사도 대형회사이므로 버스 자체는 좋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 자리도 정확하게 메모해준대로 다 확보되어 있다. 그러니 안심하고 탄 것이다.
저녁 8시에 출발하므로 이내 해가 빠지고 밤이 되었다. 오늘도 피곤하다. 그러니 빨리 자는게 상책이다. 한시간쯤 달리고 난 뒤 여자 차장이 차표를 검사하러 왔다. 내가 팀장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나에게 표를 보자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 팀 누구도 차표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나에게 확인해볼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아저씨, 차표는요?"
"차표를 받지 못했수다. 요금은 운전기사에게 지불했으니 알아보시오."
"그래요?"
"여기 예약 확인증이 있소."
버스 회사 광고용지 뒷면을 메모지로 삼아 기록한 좌석 예약 번호가 쓰여진 종이를 넘겼다. 나도 이런 경험에는 조금 익숙하므로 그들이 남겨준 종이 한장도 버리지 않고 철저히 보관하는 것이다.그래야 트러블이 발생할 경우에 내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요?"
여자 차장의 인상이 조금 우그러진다. 그러더니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어디엔가 전화를 해보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이건 내 생각인데 그날 매표소의 직원은 자기들끼리 짜고 차비를 삥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이 여자 차장에게도 조금 커미션을 떼줄지도 모른다.
"아가씨, 그 좌석표 적힌 종이는 되돌려 주시오. 기념으로 보관하고 싶으니까."
나도 더 영글게 하기 위해 좌석번호를 적은 메모지를 돌려 달라고 해서 보관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므로 돌려달라고 한 것인데 이것 역시 현명한 행동이었음을 나중에 알 수 있었다.
하여튼 외국 여행에서는 매사에 신중해야 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눈을 뜨니 창밖이 부옇게 변해가는 중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카파도키아 부근에까지 다 온 것이다.
우리가 탄 야간버스는 네브세히르 정류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괴레메까지는 이제 10분 거리다. 다 온 것이다. 보통은 여기서 내려서 작은 돌무시로 갈아타는데 이 버스는 괴레메까지 들어갈 모양이다.
네브세히르 정류장에 도착하니 차장이 바뀐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더 올라탔다. 다른데서 온 사람들을 받아서 더 태우고 가는 것이다.
바뀐 남자 차장이 다시 차표를 보자고 한다. 이젠 트러블이 생겨도 문제없다. 다 왔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기면 경찰서로 가면 되니까 마음이 편하다. 역시 메모지를 보여 주었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창밖은 점점 환상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카파도키아 경치는 말로 설명이 안되는 묘한 구석이 있다. 그만큼 기묘하고 오묘하며 지구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치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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