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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불가리~~스, 불가리아 2

by 깜쌤 2006. 3. 18.

얼마를 잤는지 모른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더니 루마니아 이민국 직원이 여권을 내란다. 이럴땐 두말없이 내 주는게 도리다. 출국 스탬프를 찍고 여권을 돌려준다.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한시가 넘었다. 좀 오래 잔 것같았는데도 겨우 한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잔 것이다.

 

국경역을 넘은 기차는 조금 달리다가 멈추었다. 이젠 불가리아에 넘어온 모양이다. 기차가 멈추고 나서 한참이 지나자 저쪽 멀리에서부터 인적사항을 무전기에 대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럴땐 분위기가 좀 그렇다. 그래도 기차에서 내리라고 하지 않으니 천만 다행이다. 침대에 누워서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칸에도 이민국 직원이 올라와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패스포트 플리즈!"

 

소리가 무둑뚝하다. 이민국 직원은 조금 뚱뚱한 아저씨였는데 내 여권을 가지고는 무전기에 대고 한참을 부른다. 국적, 나이, 뭐 이런 것들을 불러주는 모양이다. 무전기 속에서 여러가지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른다.

 

"뚜리스트?"

으흠, 여행자냐고 묻는 모양이다.

"예스, 투어리스트"

 

내 여권에다가 입국 스탬프를 찍어준다. 나도 모르게 "댕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이런 식으로 입국 스탬프를 받았는데 그런 절차를 받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차례가 지나갔으니 이젠 자면 된다. 자, 자자! 나는 코까지 골아가며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창밖을 보니 멋있는 구릉지대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김부장 말에 의하면 기차는 거의 날이 샌 새벽에야 출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경 역에서 엄청 오래 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까지는 한참을 가야한다. 흑해쪽은 경치가 좋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부유한 느낌이 든다.

 

 

 

기차 벽에 콘센트 장치가 있어서 거기다가 디지털 카메라 충전기를 연결해두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훔쳐갈 사람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방안에 장치해두면 좋을 것을....

 

 

그래도 이게 어딘가 말이다. 이런 장치라도 없으면 우리만 손해 아닌가?

 

 

기차가 서쪽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경치가 황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불가리아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채 이 나라에 들어선 것이다. 환전도 못했고 여행정보는 하나도 없다. 돈 단위가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정보없이 입국했으니 큰일이다.

 

 

소피아에 도착하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기차 안이니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그래, 가보자. 가보면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길 것이다. 돈 있고 건강하다면 무슨 수를 쓰든지 못배겨내랴 싶었다.

 

 

언덕 지대에 붉은 지붕을 지난 마을들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밖을 보니 관리가 영 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철로변 정리 정돈 상태도 좀 그렇다. 확실히 이 나라는 가난하다는 느낌이 든다.

 

 

시골 기차역의 관리 상태도 좋은 편이 아니다. 사람들의 옷 차림새도 그저 그렇다.

 

사실 난 이 나라에 대해서는 인상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저번에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암살 실패 사건에는 불가리아 정보부가 관여했다는 주장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특집기사로 실린적이 있었다.

 

음모론적인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었지만 현재는 그게 정설인 모양이다. 교황 암살 사건의 배후에는 폴란드 자유노조 문제와 소련내 이스라엘인들의 이민 문제와 얽혀들었고 거기에 다시 백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방의 밀농사 대흉작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나는 상당히 그럴듯하다는 쪽으로 인정해주고 싶었다.

 

 

결국 소련의 사주를 받은 불가리아 정보부가 나서서 터키인 회교도 알리 아흐자를 고용해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 시절에 저지른 몇가지 사건에 불가리아 정보 당국이 개입된 흔적이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그런지 이 나라에 대한 느낌이 썩 좋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강물에 탁한 물이 넘치는 것으로 보아 큰 홍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홍수가 났다는 흔적이 여실히 들어난다. 으흠..... 최근에 이 나라는 물난리를 겪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기차가 과연 다닐 수 있을까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차는 산악지대를 헐떡거리며 오르는데 확실히 심각한 피해를 입힌 홍수가 이 부근 지대를 덮친 것 같다.

 

 

산악지대여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도로 포장 상태도 좋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 상태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기차는 허위적거리며 내달리기만 했다. 시골이라고해도 이층집들이 많았다.

 

 

 

예전 우리가 살던 시골 보다는 나은 것 같다. 현재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가난한 티가 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물려받은 유산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괜히 공산주의를 했다가 망했다는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이다.

 

 

한대 불가리아에는 위대한 역도 스타가 존재했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슐레이마놀루 선수다. 나중에 그는 국적을 옮겨 터키인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불가리아인이 아니라 불가리아내 소수민족인 터키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터키 국적을 가지고 터키에 살면서 터키의 영웅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젠 소피아가 가까워 진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벌써 열두시를 향해 가고있기 때문이다.

 

 

시골 마당엔 우리에게 익숙한 꽃이 보인다. 자꾸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도가 비슷하니 자연환경도 비슷하기 때문이리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