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불가리~~스, 불가리아 1

by 깜쌤 2006. 3. 17.

시비가 붙었다. 집시라고 생각되는 맛이 간 할마씨와 묵직한 음성을 가진 할배 사이에 시비가 붙은 것이다. 밤은 깊었고 역 대합실엔 노숙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진을 쳤다. 모두 나이가 드신 분들 같았다. 노숙자가 아니라면 완행 밤차를 타고 어디 시골로 가시는 분들인지도 모른다.

 

어떤 젊은 여자가 갑자기 딱딱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무슨 불만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용은 무엇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인생살이에 깊은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마음속 깊이 담아둔 한(恨)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이런 개떡 같은 세상이 있느냐? 돈도 없고 배는 고프고....."

 

아마 그런 소리였던것 같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다시 나서서 맞장구를 치면서 으르렁 거렸다.

 

"그래 맞아. 루마니아 사내 자식들은 개코도 아닌 것들이 잘난척 하지"

 

아마 그런 식으로 맞장구를 친 모양같다. 어허, 나도 참 어지간한 인간이다. 한마디도 모르는 루마니아어를 지금 척척 통역하고 있지 않은가?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너무 말씀을 심하게 하신 것 같다. 듣다가 듣다가, 참다가 참다가, 견디다 견디다 드디어 견디지 못한 할배가 한말씸(=말씀) 하셨다.

 

 "보소들, 인생이 그렇게 허무한게 아니외다. 나도 못난 인간이지만 세상이나 영감탱이를 그렇게 욕하는거 아니외다. 아마 할머니 바깥 어른은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외다. 그리고 말이오, 두분이 하시는 말씀은 듣기가 심히 민망하니 그 정도로 하시구려. 저어기 얼굴 누리끼리한 동양인들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소? 우리 루마니아 여자들 수준이 그러면 어떻게 하오? 나도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어서 끼어든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소만 그 정도 하시구려....."

 

 "뭐라켔노? 이 할배가 무신 소리고? 생기기는 시커멓게 해설라무네 산도둑놈 사촌 같은 인간이...."

 

할배는 굵은 남저음 목청으로 점잖게 되받았다.

 

"할매! 처음 야그 했지 않소? 난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무식한 인간이오. 그러나 인생살이는 조금 알지 싶소. 할매 말도 구구절절이 다 맞소. 그러나 말은 그리 해서는 안되는 것이오. 여긴 열린 공간이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대화를 듣고 판단하고 있소. 그러니 점잖게 하시구려. 나도 나이살이나 먹은 사람이 자꾸 말하려니 스스로에게 흉이 되는 것 같아 이만하리다. 모두 여행 잘 하시구려."

 

순간 대합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할배가 남긴 지극히 당연한 말씀들이 부카레스트 북역 천장에서 떠 올라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린 그렇게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11시가 넘어 승강장으로 나가니 불가리아행 국제 열차가 시커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올라타고 보니 완전 구식에다가 투박하기 그지없는 침대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방에 침대가 두개 들어 있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야 비닐 주머니속에 든  침대보와 베게 등의 비품들을 가져다 주었다. 내부 구조를 살펴보니 투박하긴 해도 쓸모는 많은 침대차였다. 한쪽 구석을 보니 브레이크처럼 보이는 레바가 툭 튀어 나와있었다.

 

건드리려다 자세히 보니 영어의 "Emergency" 비슷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비상용 브레이크다. 잘못 건드리면 돈깨나 물어내는 것이다.

 

배낭은 입구 위 빈 공간에 쑤셔박아 넣었다. 머리 위 짐칸에는 다른 물건들을 얹어 두었다. 발은 북역에서 미리 씻고 왔었다. 그러니 이젠 자면 된다. 국경을 몇시에 넘을지 모르므로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해야 하지 싶다.

 

 

  

기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루마니아여~~ 안녕~~ "

 

또 언제오겠나 싶다.

 

"게오르규 신부님! 못뵙고 갑니다. 신부님은 돌아갔으니 못뵙고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브라쇼프 할매는 오래 사시소. 할매, 안녕~~" 

 

국제열차의 화장실과 세면실 모습이다. 이만하면 그저 그만 아닌가?

 

 

복도엔 카펫까지 깔려 있으니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통로 한구석에는 전기면도기나 충전기를 꽂을 수 있도록 콘센트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간다~~~~ 이야~~~~~   불가리아로 간다이야~~~~~~~~~"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