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를 두 동강이 내며 지나가는 도나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몇개 있는데 그중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다리가 바로 세체니 한츠히드이다. 바로 밑에 보이는 다리이다. 다리 양쪽에 자리잡은 간이 판매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서 사진을 찍은 곳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왕궁 부근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부다페스트의 경치가 훌륭했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왕궁터도 명당이라는 사실이 한눈에 드러난다. 내가 말하는 명당이라는 것은 꼭 무덤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잘츠부르크에도,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도 이런 시설이 있었다. 쉽게 올라오려면 이렇게 하면 되지만 우린 굳이 이용할 일이 없다.
건물 앞 저멀리 기마상이 하나 보인다. 여기서서 헝가리 대평원을 굽어보며 통치하는 것도 사나이 일생중에 한번은 해볼만한 일이었으리라.
부다페스트도 평원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도시같다. 여기에만 이렇게 멋진 산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커다란 강가에 자리잡은 이만한 터 같으면 한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왕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도 그들을 따라 슬금슬금 이동해 갔다.
1800년대 건설된 다리치고는 대단하다. 1849년에 만든 다리라니까 우리나라 역사로 비교하자면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가 한창 권세를 부리던 시기 아니던가? 그 당시에 이런 다리를 건축할 만한 기술을 유럽인들이 가지고 있었다면 대단한 수준이다.
이천년전의 로마인들도 라인강과 다뉴브강에 다리를 놓고는 게르만족 정벌에 나섰다니까 할말이 없다.
숲사이로 살짝 자태를 드러낸 강 건너편의 국회의사당 건물이다. 이 글과는 영 동떨어진 분위기의 이야기지만 남자나 여자나 벌거벗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것 보다는 살짝살짝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긴머리 뒤에 숨겨진 하얀 목덜미라든가, 긴치마를 입은 여성이 치마를 걷어부치고 개울을 건널때 드러나는 종아리 모습 같은 것이 훨씬 매력적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모조리 다 보여주면 그게 무슨 매력이 있는가 싶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 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무니 없는 소리다.
사춘기에 접어든 예전의 여학생들은 그 뜨거운 여름날에도 브래지어를 입었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조끼 하나를 걸치고 왔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분위기다. 도시의 매력도 그런 것 같다.
한꺼번에 훌러덩 다 보여주는 것 보다는 언제봐도 신선한 매력이 곳곳에 숨어있다가 살짝살짝 보여줄때 한번 더 가고 싶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것이 아닐까?
강 중간에 자리잡은 섬은 마르기트 섬이다. 마치 위화도 같다. 중국 단동 기차역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걸어가면 압록강이 등장하는데 바로 앞에 위화도가 떠억하니 버티고 누워있었다. 강변과 섬에 가득하던 미류나무 숲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마르기트 섬엔 나무가 울창했다. 마자르인들은 여기서 회군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의 명분 가운데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는데 어찌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만주족은 무슨 명분과 용기와 배짱으로 명(明)을 공격하러 나섰던가?
내가 마자르인들을 좋아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유럽의 게르만, 슬라브, 라틴 족 사이에서 중앙아시아 계통의 유목민이 터잡고 살아간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숲 바로 밑에 어부의 성이 보인다. 강 한가운데는 마르기트 섬이 누웠고 오른쪽에는 국회의사당이 버티고 섰다.
유럽의 도시들은 분위기가 비슷하다. 문화가 비슷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제부턴 경치만 보여드릴테니 그냥 보시기 바란다. 내 눈엔 너무 아름답게 비쳐졌으므로 군더더기 같은 사족을 달 필요가 없지 싶어서이다.
부다페스트는 그런 도시였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05 유럽 남동부-지중해,흑해까지(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헝가리! 헝그리~~ 16 (0) | 2006.02.25 |
---|---|
헝가리! 헝그리~~ 15 (0) | 2006.02.24 |
헝가리! 헝그리~~ 13 (0) | 2006.02.23 |
헝가리! 헝그리~~ 12 (0) | 2006.02.23 |
헝가리! 헝그리~~ 11 (0) | 200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