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2cm, 허리둘레 50cm(가능한 사실인지 모르겠다), 몸무게 50kg, 우유빛 피부에 뛰어난 미모, 귀족집안 출신에다가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 황제의 부인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있었을까?
아들 황태자 루돌프가 사랑했던 여인과 권총 자살을 해버리고, 결혼한 이후부터는 시어머니에게서 엄청나게 괴로운 고단한 시집살이를 겪었으며 남편은 국사를 처리하느라고 눈길 한번 주지 아니한데다가 바람까지 나버렸고 결국은 자신마저 암살을 당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살았다면 그 여자의 일생은 과연 행복한 삶이었을까?
원래 언니와 결혼하기로 했던 황제가, 언니를 버려두고 자기를 선택해서 결혼을 했었으나 낳은 자식들은 일찍 죽어버리는 비극을 겪은 여자, 그녀가 바로 시시(=씨씨)이다. 애칭이 시시이고 원래 이름은 카롤린 엘리자베스이다.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시시의 인기는 절정이어서 구왕궁에는 시시 박물관이 따로 있을 정도라니 정말 대단한 여자가 아닌가 싶다. 시시 야기기가 시시하게 들릴 사람도 있을테니 이만하고 넘어가자.
오스트리아 제국 왕궁의 입구부터가 범상치 않다. 규모도 규모려니와 조각의 아름다움도 보통이 넘는 것이다.
입구에서 뒤를 돌아다보면 저런식으로 보인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반 이상이 관광객이라고 하면 그 규모가 엄청나게 된다. 우린 언제 이런 수의 관광객들이 한국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모습을 보게 될까?
헤라클레스는 참으로 유명한 존재이다. 4명의 헤라클레스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고 있는 이 문이 미하엘 문으로써 왕궁의 정문이 되는 것이다. 아놀드 슈와제네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에 이민와서 배우로 정치가로 성공한 인물이다. 슈와제네거는 이 모습에서 감명받아 근육을 기른 것일까?
왕궁의 규모가 워낙 크므로 건물을 일일이 다 보려면 하루 종일 걸리지 싶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마간산 속전속결 얼치기 날치기로 해치워버린다. 우리가 날치기로 구경한다고 해서 우릴 욕해도 할 수 없다.
이런 수법은 나도 다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어렸을때부터 자랑스런 우리들 높은 양반들이 국회에서 자주 써먹던 수법이라고 신문 티비에서 하도 떠들어대었으니 안배울래야 안배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물타기, 본말 전도하기, 말 뒤집기, 거짓말하기, 모르쇠 수법, 기억상실증, 꼬투리 잡기, 시비걸기, 낮엔 야당하고 밤엔 여당하기, 대가성 따져 돈받기(돈을 받아도 대가성이 없으면 죄가 안된다고 하는 희한하고 얄궂은 논리), 훔쳐듣기, 엿듣기...... 등 내가 배운 초절정 고수의 무예 초식이 정말 다양하기도 하여라.
그만하자. 우리 아이들은 먼 훗날에 모든 것을 다 나에게서 배웠다고 할 것 같아서 가슴이 코옥 코옥 찔린다.
합스부르크 집안은 몰락했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연합제국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진 지금 이 건물들은 오스트리아 대통령궁이나 국립박물관 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하게 읽힌 건물군들 때문에 무엇이 무슨 건물인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예술가 팀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연주팀 중에서 최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바쁜 와중에도 내가 여기에서 한 30분이나 시간을 투자했으니 알쪼가 아닌가?
잘못들으면 내가 오래 들었으니 좋은 악단이었다는 식으로 해석이 가능하겠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음악에 문외한인 어리석은 내가 듣기에도 고도의 음악 실력을 가졌다는 뜻으로 새겨 주시기 바란다.
몇곡 연속으로 감상하고 나서 그냥 가기에는 낯이 너무 바래는 것 같아서 거금 2유로를 드리고 왔다. 거금 2유로다. 우리돈 2500원 정도 되었다. 고급 요정에서 하루 저녁 아가씨 팁으로 몇 십만원, 몇 백만원을 주시는 양반들이 보시면 뭐 이런 쫌생이가 다 있느냐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만 난 그 정도도 거금으로 인식하는 쫀쫀한 사람이다.
이것이 스위스 문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위스 문이 맞다면 그 문은 다른 말로 일명 슈바이처토르라고 한단다. 1552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건물도 450여년전에 만들어 진 것이니 꽤 오래 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앞엔 관광객을 태우는 마차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 덧붙임 : 오스트리아 비인에 사시는 "사다리가 놓인 창"님께서 이 문은 신왕궁의 입구에 해당하는 문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읽으신 분에게는 죄송하고요........ 댓글 내용은 이 글 제일 밑에 있습니다.
아울러 오스트리아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사다리가놓인창 님의 블로그에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주소는 이렇습니다. http://blog.daum.net/stelala >
한번 타려다가 포기했다. 마차타는 것은 비쌀 것 같아서 말이다.
시커먼 하늘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았는 저분이 오이겐 대공이던가? 밑에까지 가서 정확하게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어설프게 확인했으니 카를대공 기마상과 헷갈려서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난 이렇다. 이런 식으로 어리버리하다. 저 앞에서 기억상실증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가 꼭 그꼴이다. 뭐 정작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안나는 것이다. 그러니 청문회에 나가면 나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지 싶다.
"기억이 안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이 발코니에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합병을 선포했던 모양이다. 오스트리아인이 독일의 지배자가 되어 조국 오스트리아를 잡아먹었으니 이런 행위는 과연 애국인지 매국인지 헷갈려서 판단이 안 선다.
역사의 현장은 세월의 무게 속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서 말이 없었다. 그래! 다 그런 것이다. 한때 세계를 뒤집어 엎을 듯이 기고만장했던 그들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한낱 하루살이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사람은 그 이름 때문에 헛짓을 하고 호랑이는 그 가죽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은 그 이름 때문에 또라이 짓을 하고 호랑이는 그 가죽 윤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까지도 잡아 먹었던 모양이다. 결국 인간은 호랑이 때문에 살고 죽는 것인가? 참, 이상한 논법도 다 있다.
예전엔 감히 여기 출입을 꿈도 꿀 수 없었던 상것들이 왕궁 정원에 진을 쳤다. 물론 나도 상것이다. 귀한 분들 피는 푸른 색일까? 분홍색일까? 아니면 예로부터 고귀함을 상징했다고 하는 보라색일까?
이젠 그 정원에 누구나 들어와서 다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지배계층들은 다른 곳에서 따로 모여 즐기고 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면 우리 서민들도 그런 장소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게 되고..... 역사란 그런 것일까?
신 왕궁 앞에 말을 타고 버티고 선 분이 오이겐 대공이다.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이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반대편에 있는 이 양반은 카를 대공이 되겠구나. 사실 우리에게는 그 분이 그 분 같고 그 양반이 그 양반 같아서 그게 누구 것이냐고 세세하게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고귀한 분들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을 지나쳐 바깥 일반 서민들의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다. 나는 내 능력과 내 그릇의 크기를 잘 알고 있으므로 역사의 주체세력을 탓하고 비웃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제발 높은 양반들은 우리 서민들이 편안하게 걱정없이 살 수 있도록 신경이나 조금(많이 써주시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써주시기 바란다. 그래야 없는 돈이라도 악착같이 모아서 다음에 또 이런 곳을 한번 더 갈 수 있을 것 아닌가?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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