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경주, 야생화, 맛/야생화와 분재사랑 Wildlife Flower

야생난을 찾아서~~

by 깜쌤 2006. 1. 9.

지난해 연말부터 처리해야 할 일들이 머리와 가슴을 짓눌러 그간 압박감을 너무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어제 오후까지 거의 모든 일을 처리했기에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용 햇수로 치면 9년째로 접어드는 자전거를 타고  강변도로를 달려갑니다. 저기 다리 밑으로 달려와서 여기서는 강을 가로지른 다리 위를 지나갑니다.

 

 

형산강을 건너 가는 것이죠. 마주 보이는 봉우리가 저번에 한번 소개했던 옥녀봉입니다. 끝까지 가서는 왼쪽으로 방향을 틀겁니다.

 

 

장매마을 뒷산에 산불이 난 것 같습니다. 왼쪽 편에 아주 둥글게 보이는 산이 망산(망성산)이라는 산입니다. 그 유명한 경주 남산은 이 사진의 왼쪽 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물이 맑아진 형산강엔 야생오리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청둥오리인지 가창오리인지 물오리인지 다리 위에서는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주 시내를 관통하는 형산강을 경주에서는 특별히 서천이라고 부릅니다.

 

 

경주대학 앞을 지나 오면 드디어 김유신의 일화가 남아있는 단석산이 보입니다. 이 개울은 모량천이라고 부릅니다.  단석산 밑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죠. 사진 중앙 뾰족탑 처럼 보이는 그 어디쯤에 박목월 선생의 고택이 있습니다.

 

 

모량 못미쳐서 어디어디로 방향을 틉니다. 지명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조금 있다가 알게 될 겁니다. 사진을 많이 찍어 두었지만 난초라면 무조건 캐가기를 원하는 무지몽매한 자들에게 이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막기위해 사진을 가려서 올립니다.

 

 

이 부근은 투기 지역으로 유명합니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자전거를 세워두고 올라갑니다. 미쳐 수확하지 못한 늙은 호박이 그냥 세월을 안고 묵어가는 중입니다. 야생난초 서식지가 어느 정도 훼손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산행의 목표입니다. 경주와 포항 부근에도 보춘화로 알려진 한국 춘란이 자랍니다.

 

이게 돈이 된다고 알려져 조금 안다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난초라면 모조리 다 캐가는 바람에 아주 씨가 마를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취미 생활도 좋지만 너무 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시장에 가면 시골 아주머니들이 난을 캐와서 묶음으로 팔았습니다.

 

 

제 자가용입니다. 튼튼하죠. 아들 녀석의 고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준 것입니다. 저걸 타고 3년간을 통학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한양으로 유학을 간 뒤 이젠 제가 타고 다닙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키를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야생 찔레 열매를 이용하여 야생조류를 잡기 위한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열매속에는 속칭 사이나라고 불리는 독극물이 주입되어 있을 겁니다. 꿩이나 산비둘기가 이것을 먹으면 거의 사망한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여기 이 장소는 약 10년 전에 특이종을 발견했던 장소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장소만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 안하고 살았습니다만 산채꾼들은 지형 지물을 보고 거의 정확하게 찾아내더군요. 산자락 초입에는 난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전라도 지방으로는 이 난초가 크게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경북 남부엔 그렇게 크게 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촉들이 모여 자라는 큰 덩어리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워낙 남획을 많이 하는 바람에 이젠 이정도가 큰 포기에 속합니다. 적어도 경주 부근에는 그렇습니다.

 

 

겨울엔 토끼나 노루가 이렇게 잘라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지방에서는 토끼밥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입니다.

 

 

난은 이런 장소에 삽니다. 한자 난(蘭)을 파자(破字)해보면 서식지가 단번에 드러납니다. 문에서 보았을 때 동쪽에 자란다는 풀이라는 것 아닙니까? 중국인들도 난이 남동향이나 남향, 동향 산에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살며시 덮어주고 난 뒤에 내려오다가 제가 올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제 발이 올가미에 걸린 것이죠.

 

 

토끼가 여기에 걸려들면 얼마 못가서 질식사 할겁니다. 교살 당하는 것이죠. 인간은 손이라도 있어서 풀어나갈 수 있지만 토끼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도 어렸을 때 이런 식으로 산에다가 올가미를 설치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땐 너무 배가 고팠었기에 영양보충의 수단으로 한 것입니다만(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까지 이런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폐교 위기에 몰려있는 초등학교 교정엔 임자 없는 공이 그냥 뒹굴고 있었습니다.

 

 

땅이 있는 사람은 땅땅거리고 사는 세상입니다.  땅뙤기 하나 없는 나는 그냥  비실거리고 살아야지요.

 

 

오랫만에 지게를 보았습니다. 아직도 지게를 지고 다니는 분이 계시는 모양입니다. 저기 과수원에 두 어른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들 것이더군요. 지금 청년들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엔 이게 전천후 운반수단이었습니다.

 

 

나도 어렸을 때 조금씩 지고 다녔습니다. 바(밧줄)를 묶는 솜씨가 여전하십니다. 지게 작대기도 튼실하게 생겼습니다. 갈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불쏘시게용 소나무 갈비나 낙엽을 모으신 모양입니다. 경상도에서는 까꾸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젠 다 보기 어려운 농기구들이죠. 우리 세대가 지나면 잊혀질 물건들입니다.

 

 

야생버섯이 나무에 그냥 붙어 자랍니다. 버려진 전지 가위가 농촌의 서글픔을 대신 외쳐주는 듯 합니다. 

 

 

이제 두번째 서식지에 다 왔습니다. 하도 오랫만에 오는 곳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 난초 수집 취미를 끊은지가 십년이 되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오늘 유일하게 본 꽃대가 붙은 난초였습니다. 보고 나서는 낙엽으로 곱게 덮어주었습니다.

 

 

두번째 서식지의 모습입니다. 이 장소는 십여년 전에는 산비탈 전체가 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난초 보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합니다.

 

 

오늘 확인한 서식지 중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은 부분입니다. 여기 이 장소도 누가 손댄 흔적이 많았습니다. 산채꾼들이 꾸준히 다녀 간다는 뜻입니다.

 

 

무덤 가에 앉아서 빵을 꺼내 먹었습니다. 나도 한때는 난에 미쳐 다닌 적이 있었지만 다 덧없다는 것을 느껴 봅니다. 죽으면 다 놓아두고 갈 것을 왜 그렇게 욕심부려가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든지 다 죽어야 하는데 말이죠.......

 

 

햇살이 따뜻한 겨울, 6시간 동안 자전거를 탔더니 온 몸이 다 쑤셔옵니다. 이젠 쉬어야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야생난초들이 멸종되는 비극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