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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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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 제갈공명의 사망지 "오장원"가기 - (7)

by 깜쌤 2005. 10. 17.

 

              <나를 도와준 신사 장선생의 가족 - 제갈량 사당 바로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콧수염을 조금 기른 어떤 점잖게 생긴 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자기는 여기 구경온 관광객인데 우리가 다투는 장면을 보고 끼어 들게 된 것이란다. 그래서 내가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 드렸다. 그랬더니 그 신사 왈,


 "선생님! 그 정도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도에 사는 사람들인데 서안에서부터 차를 빌려서 왔습니다. 1인당 120원을 주기로 했으니 왕복으로 80원 정도를 주셔야 할겁니다."
 "그래요? 하지만 처음에 30원에 합의를 보고 왔으므로 60원 이상은 줄 수 없습니다. 왕복 60원이라면 나도 양보할 수 있습니다만 그 이상은 못 줍니다. 돈 문제가 아니라 이건 신용의 문제이고 또 아주 불쾌합니다. 중국인들은 약속과 신의를 목숨처럼 귀하게 여긴다고 들었는데 이게 뭡니까?"


 그 신사는 중국어로 또 한참을 이야기한다. 내가 보기엔 중국인들의 약점은 신의에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들은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신의와 의리의 사나이'로 여겨 신으로까지 대접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당위 산에서 아래를 본 모습 - 앞쪽이 보계 방향이다>

 

 

결국 여자 기사는 60원에 오케이하고 나는 돌아갈 때 그 여자의 택시를 타고 나가기로 했다. 대신 대기 시간은 30분으로 하되 대기 요금은 무료로 하기로 했다. 사실 차분하게 구경하려면 한시간 정도 필요하지만 서안까지 돌아가야 하니 눈물을 머금고 구경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합의를 보고 나서는 택시를 내려 구경 길에 올랐다. 이때도 결코 미리 요금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므로 작은 배낭을 매고 기사에게 웃어주고는 내린 것이다.

 

'요 중국녀석들아, 너희들이 절대로 한국인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달라고 하는 대로 다 줄 것 같으냐? 너희들이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라면 우리 한국인들은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들이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제갈량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조금 경사가 져 있다. 경사가 끝날 즈음부터 너른 계단이 황토 언덕위로 펼쳐지는데 그 계단 끝머리 산비탈 중간쯤에 전통 중국 양식의 거대한 사당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벌판이 서안까지 쭈욱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를 점령하면 서안(장안)까지 진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리라 - 제갈량의 군대가 언덕 위에 진을 쳤다면 사마중달의 군대는 저 벌판 어디에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무덤이 아닌 사당이므로 크게 볼 것은 없다. 조잡한 조각상이 몇 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사당 뒤로 산길을 조금 따라 올라가면 드디어 언덕 위에 올라서는데 거기서 보면 아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서안 쪽을 보면 우리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너른 옥수수 밭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 벌판 가장자리에 황토 언덕이 들쑥날쑥하게 자리를 잡았고 우리가 서 있는 계곡 건너 북편 끝엔 산들이 연이어 서있어서 한눈에 보아도 여기가 전략상의 요충지임을 알아볼 수 있겠다.

 

 제갈량은 이 언덕 위에 사령부를 설치하고 부대를 지휘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단을 쌓고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낸 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서 감회가 새로웠다.


 제갈공명의 부대가 이 언덕 위에 진을 쳤다면 사마중달의 부대는 어디쯤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을 정리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기에 영어로 도움을 준 장 선생의 자녀들과 간단히 사진을 한 장면 찍는 것으로 인연을 마무리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사진을 스캐닝해서 그런지 뿌옇게 나왔다. 원판 사진도 흐리다>

 

 

돌아올 땐 일부러 콧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새침하게 해 있으면 나만 못난이가 되므로 기분전환을 위해서도 노래를 불러야 했다.


 사실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언제 다시 오장원에 오겠는가 말이다. 미현까지 와서는 기사와 악수까지 하고 나서 기분 좋게 헤어졌다. 그리고 글로서 오해를 풀었다. 그런 오해는 풀고 살아야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택시 기사 아줌마와는 이렇게 웃으며 헤어졌다. 아줌마!! 안녕~~~>

 

 택시 기사는 터미널 속에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고 버스 시간까지 알아주었다. 서안으로 돌아갈 때는 고속 버스 표를 끊었다. 고속버스라고는 해도 봉고 크기 정도의 소형차이다. 요금은 거금 20원이었다. 가격이야 비싸더라도 일찍 돌아가야 일행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자동차 통행량도 적어서 그냥 쌩쌩 내달리기만 하면 된다. 관중 분지를 가로지르는 위수를 건너 서안시 변두리 낯선 정류장에 도착하니 거의 7시가 되었다.

 

서안 지도를 꺼내서 도착한 정류장의 위치를 파악한 뒤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304번 시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여관에 오니 7시 반이나 되어서 원래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더니 일행들이 눈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