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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 天山 天池 - (3)

by 깜쌤 2005. 9. 13.


그러나 고개를 돌려 사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내 실망감이 배어 나온다. 이 맑은 호수에 떠다니는 저 유치찬란한 유람선은 또 무엇이며 그 유람선에서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적 소리와 곳곳에 버려진 저 쓰레기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여름엔 호수에 유람선이 떠다닌다고 하더니 바로 그 이 장면을 보고하는 말이구나.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중에서조차 도시의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니 갑자기 오만가지 정이 뚝 떨어지고 만다.

 

 


 내가 불평한다고 될 일도 아니므로 형님과 함께 그냥 호수 길이나 산책해보기로 했다. 저 멀리 눈을 가득 인 산밑에까지 한번 걸어가 보자는 데 의기투합해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호수를 끼고 마련된 산책로는 그런 대로 운치가 있다. 워낙 풍광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치엔 마음이 쉽게 약해져서 찬사만 늘어놓는 어리버리한 나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리라.

 

호수에서 정상 쪽을 보았을 때 오른쪽으로 난 길은 미스터 라시트가 운영하는 게르 너머까지 길이 이어지게 되어 있다. 한참을 가다보면 모서리를 돌 때 갑자기 앞이 환해지면서 게르 몇 채가 나타나는데 그게 바로 라시트의 게르이다.

 


 라시트란 사람은 론리 플래닛에까지 소개가 될 정도로 유명하다. 한국인들도 심심치않게 와서 묵는 모양인데 그가 잡아서 요리해주는 양고기 바비큐는 일품 요리라고 전해진다. 시간이 많으면 이런 곳에서 하루쯤 묵고 가야한다. 그래야 여행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지만 그놈의 일정이라는 게 뭔지 참 안타깝기만 하다.


 호수가를 따라 걷다가 양떼를 만났다. 목동이 양을 치기 위해 다녀오는 길인데 고맙게도 여기사는 양들이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 길을 비켜준다. 저 멀리 눈이 덮인 봉우리 밑까지 가고 싶었지만 중간에 길을 막아두었다.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예의이다. 여긴 카자흐 족들의 땅이고 우린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방문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길에 카자흐 족의 삶을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게르와 귀틀집 사진만을 찍고는 물러난다. 라시트의 게르 앞에서 라시트의 아들과 딸을 만났다. 간단한 영어가 되므로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딸은 자기가 읽고있던 시집을 보여주었다. 천산의 매(鷹)를 노래한 시집이었다. 그러고 보니 눈앞이 어지럽다.

 


 하늘엔 까마득히 위에 천산의 매가 맴을 돌고 있었다. 마치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한 줄의 문장처럼 말이다. 딸아이의 호의로 잠시 게르 안쪽을 살펴 볼수 있었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카페트가 깔린 게르는 수려함의 극치였다. 겉에서 보는 모습과는 완전히 판이했다. 차를 한잔 따라주기에 잠시 목을 축였다.


 돌아 나오는 길에 미스터 라시트를 만났다. 그의 명함을 한 장 받아 챙겼다. 사람이 수수하고 꾸밈이 없었다. 그의 말로는 어제도 한국인들이 와서 양을 한 마리 잡았다고 한다. 오늘 우루무치로 돌아가야 내일은 투루판으로 이동할 수 있기에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천지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