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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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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3 중국-사천,감숙,신강:대륙의 비경(完

말타고 비경 찾아가기 - 3

by 깜쌤 2005. 6. 18.


 

 작은 숲으로 둘러 쌓인 빈터는 경사가 밋밋하여 이틀 밤 정도 야영하기엔 좋은 장소였다. 부근에 민가가 가게가 없어서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거기다가 야영지 바로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차가운 개울이 있어서 물을 구하기에도 좋았다.


 좌우로 늘어선 봉우리도 있으니 경치하나도 좋기만 하다. 가이드들은 익숙한 솜씨로 텐트를 친다. 모두 말 등에 싣고 온 것들이다.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반이었으니 자그마치 5시간 반이나 말을 타고 오는 강행군을 한 셈이다.


 그러니 배가 고팠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한쪽은 텐트를 치고 한 팀은 점심을 만든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넓적하게 구운 퍼석한 빵에다가 설탕을 뿌린 토마토를 풀밭에 그냥 앉아 먹는 것이지만 시장이 반찬인지라 맛은 그런 대로 괜찮았다.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원하는 분들은 호스 트레킹 신청을 안 하는 것이 좋다. 우리들처럼 그냥 막 굴러다니면서 추억 만들기를 원하는 사람들만 즐겨볼 일이다.


 

 


 해가 서산에 걸리기 시작하자 가이드 4명은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고지대이므로 밤이 추울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지만 나처럼 추위에 이상반응을 보이는 특이체질은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나는 이상하게도 약간의 기온 변화만 생기면 제일 먼저 재채기가 나온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이어 한기(寒氣)가 들면서 머리카락이 쭈뼛이 서고 이어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신체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오고 온몸이 겨울바람에 갈대 잎 흔들리듯 사정없이 떨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땐 약도 없다. 따뜻한 아랫목으로 재빨리 대피한 뒤 체온을 올려야 하는 것이지만 이 산 속에서는 그럴 형편이 못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해보았으므로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저녁은 감자탕 비슷한 것에다가 수제비 닮은 것을 넣어 끓여 먹었는데 엄청 짠맛이 났다. 음식이야 아무거나 먹으면 된다. 깔끔하기만 하다면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솔직히 이야기해서 청결은 좀 그랬다. 하지만 인가 하나 없는 이 산중에서 그런 걸 탓할 형편이 못 된다.


 해가 지자 순식간에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찌뿌룽했던 하늘 한쪽이 개여 오기 시작하며 별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서산 자락에 걸려 있던 초승달이 넘어가면서 날은 맑아지기 시작하는데 기온은 예상했던 대로 급강하하기 시작한 거다. 갑자기 몸이 떨려오며 온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텐트 속에 들어가 옷을 있는 대로 다 꺼내 입고 나중에는 티베트 털 코트로 온 몸을 감쌌다. 그래도 춥다. 너무 괴롭다. 몸이 덜덜 떨려온다. 청년들은 반 팔 차림으로도 끄덕 없는데 난 왜 그런지 모르겠다. 모닥불이 빨리 활활 타올라야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P형님이 병에 든 액체 우황청심원을 가지고 오셨다. 그거라도 마셔보란다. 


 우황청심원을 마시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초저녁부터 이러면 난 오늘 밤 완전히 죽은목숨이다. P형님은 준비성이 철저하신 분이었다. 처음 배낭여행을 하신 분치고는 아주 치밀하시고 성실하셔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분이시다. 따뜻한 마음씨에 눈시울이 뜨뜻해졌었다.


 모닥불을 피워두고 우린 불 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구름이 갠 하늘엔 별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쥐색 밤하늘이 별들로 가득 차더니 이윽고 별빛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형상이 되었다.

 

 하늘 가득히 보석이 박혀 반짝이는데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기억도 별로 없지 싶다. 2000년에 내몽고 자치구의 대초원에서 바라 본 밤하늘이 생각났다. 온 사방 지평선 끝까지 하늘인데 그 너른 하늘이 모두 별들로 가득하던 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우리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인 대학생 윤구는 친구의 아들이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자 친구인 K군의 아들인 윤구는 마음씨가 착해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친구 아들이어서 각별히 신경이 쓰이는 처지였지만 모닥불 가에 앉아 이야기할 때는 친구나 다름없다.


 설보정 정상이 골짜기 왼쪽에 자리 잡은 가운데 풀 밭 야영지에서 나눈 그 많은 이야기들을 일일이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런 시간은 그냥 흘러보내기 아깝다. 밤은 깊어 가는데 함께 한 가이드들과 말은 통하지 않지만 필담(筆談)으로나마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으니 그보다 다행이 없다.


 가이드 4명은 모두 민족이 달랐다. 영하회족(寧夏回族), 한족, 장족, 강족(羌族)으로 구성된 그들은 친구 이상으로 손발이 척척 맞는 듯이 보였다. 둘은 결혼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국강(李國强)이란 친구가 가장 성실하게 보였다.

 

 29살이라는 그 친구는 2자녀를 두었다는데 심성이 고운데다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친구들이 뭐라고 놀릴 때마다 자주 얼굴이 붉어지는 순진함을 보였다. 그들은 밤에도 장난을 치며 놀았다. 풀밭을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이 너무 순수해서 마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 했다.

 별 빛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밤은 사그라지는 모닥불과 함께 가물거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