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영주 관사골의 철도관사 내부를 살펴보았어요 1

by 깜쌤 2022. 9. 8.

어렸던 시절 철도관사에서 한 십여 년 정도 살았어.

 

 

 

아버지께서 철도공무원을 하셨거든.

 

 

 

당시엔 먹고살기에 바빠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텃밭으로 사용했어. 

 

 

 

우연히 주인분을 만나 거야. 

 

 

 

그래서 관사 안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거지. 

동영상으로 빨리 보고 싶다면 아래 네모를 클릭해 봐.

 

 

 

 

https://yessir.tistory.com/15870269?category=1126452 

 

1930년대에 지은 철도관사 내부는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5월 4일 목요일, 영주 구시가지에 갔습니다. 영주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부용정 부근에서 커피 한잔을 즐긴 뒤 관사골(철도관사가 있는 동네)에 내려가서 구경을 했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철도

yessir.tistory.com

 

 

 

 

입구가 앞으로 보이는 저 시멘트 통은 개 집이 아니야.

내 기억으로는 쓰레기통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주인이 나중에 지은 게 틀림없어.

원래 설계에는 없는 구조물이 확실해. 

 

 

 

어디냐고? 영주 관사골에 남아있는 건물이지. 

 

 

 

여긴 뒷마당이야. 

창틀과 난간이 특이하지?

 

 

 

이 건물은 두 집이 살도록 되어 있어. 

 

 

 

1940년대에 만든 건물일 가능성이 있어.

당시 기준으로 본다면 시대를 앞서가는 초현대식 건물이었던 거야. 

 

 

 

이 분이 주인이셨는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셨던 거지.

너무 고마웠어.  

 

 

 

이 구조물 안쪽은 욕실이야. 

당시에 실내 욕실을 가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섰더니 이런 모습으로 펼쳐지는 거였어. 

마루 끝에 멀리 보이는 문이 뒷마당으로 통하는 

뒷문인 셈이지. 

 

 

 

이쪽은 부엌인데 원래는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었어.

나중에 개량을 한 것 같아. 

 

 

 

부엌 옆에 마련된 찬장이야. 부엌에서 만든 반찬이나 음식물을 넣어둘 수 있었고 

부식이나 여러가지 식재료를 넣어두기도 했어. 

 

 

 

엄마가 영주 시장에서 설탕을 한 포대 사온 날이 생각나.

그 설탕을 이런 곳에 보관해두었는데 숟가락을 가지고

엄마 모르게 자주 퍼먹었던 기억이 있어.

 

그리고 말이야, 내가 보기에

이 집은 관리가 굉장히 잘 되어 있었어. 

 

 

 

큰 방이야. 옛날 사람들이 단스라고 부르던 장롱이 남아있었어. 

단스(たんす、tansu)는 왜인들 말이지. 

 

 

 

안방에서 바라본 마당의 풍경이야.

창살 무늬가 영락없는 왜색이네.

 

 

 

큰 방 뒤편은 작은 방인데 어쩌면 원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을 수도 있어. 

벽에 설치된 붙박이 장과 손잡이를 잘 봐. 

 

 

 

보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해. 

 

 

 

 

큰방과 작은 방은 장짓문 하나로 구별되어 있었어. 

이 집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네. 

 

 

 

안방에서 바라본 부엌의 모습이지. 

 

 

 

화장실로 가는 일종의 복도 공간이야. 

건물 안에 실내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구조였는데 

화장실은 당연히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이었어. 

 

 

 

오시이레(押入れ)라는 공간이야. 그 속에 여러 가지 물건을

정리해 넣기도 했어. 

 

오시이레(押入れ)에 관한 설명은 이 글 제일 밑에 있어. 

 

 

 

오시이레(押入れ) 위층은 간이 다락이라고 보면 돼.

 

 

 

화장실 맞은 편에 있는 세 번째 방의 모습이야.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귀중한 재산이었던 재봉틀이 남아 있더라고. 

 

 

 

이 집은 관리가 너무 잘 되어 있었던 거야.

감동적이었어. 

 

참고자료를 하나 소개할 게. 일본인들의 실내가구에 관한 이야기인데 단스에 대한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었어.

글의 출처는 아래와 같아. 

 

https://story.kakao.com/_JJFlg9/iSkuczajX7A

 

신 한국문화신문님의 스토리글

오동나무장 만들어 시집보내던 겨레가 웬 <단스>타령? [일본말 찌꺼기 1] 오동나무   -고야 -이쁜 손녀 세상 나온 날할배는 뒤란에 오동나무 심었다곱게 키워시집 보내던 날아버지는...

story.kakao.com

 

 

=====================================

 

일본에 ‘단스’가 등장한 것은 도쿠가와막부 4대 장군 때인 도쿠가와 이에츠나(徳川家綱,1664-1673) 시대에 오사카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때까지는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옷을 보관했다. 단스가 등장하면서 대나무 바구니 때보다 옷을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가격이 비싸 일반 서민들은 에도 말기나 되어야 이용할 수 있었다.  
 
‘단스’는 처음에는 ‘担子’라는 한자를 써서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으나 에도시대에 서랍식이 등장하여 크기가 커졌고 한자도 ‘단사(簞笥)’로 바뀌었는데「簞」은 소쿠리 ‘단’ 자이고 「笥」는 상자 ‘사’ 자이다.  곧, 한자말 단사에서 단스(たんす、tansu)로 불리는 오늘날의 서랍장이 된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가구 파는 곳을 쉽게 볼 수 없다. 오시이레(押入れ)라고 해서 붙박이장을 집집마다 설치해놓은 관계로 별도의 가구가 필요 없기도 하거니와 집안이 좁은 관계로 변변한 가구를 들여놓을 형편이 안 된다.  한국 같으면 가구단지라 해서 여기저기 수도권 외곽에 밀집되어있는 가구상가를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일본 최대의 가구회사라는 오오츠카가구(大塚家具)의 도쿄 아리아케(有明) 가구 전시장에 갔을 때 본 일본 가구들은 다양성이나 디자인 면에서 한국의 가구와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소박했다. 가구라 해도 집안에 있는 붙박이 보조용이므로 크기나 규모도 작은 것들이 많았다. 
 
오시이레란 요즈음 한국의 아파트에 설치한 서랍장이 들어 있는 붙박이와는 근본적으로 달라 예전 한국의 벽장을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이러고 보니 그 안에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것을 따로 보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본 집에 맞게 서랍장이 있는 키 낮은 가구를 만든 것이 ‘단스’이다.  우리말로는 서랍이 많이 달렸으므로 ‘서랍장’이라 하면 좋다. ‘단스’라는 말에서 서랍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말뜻이 분명하고 알기 쉬운 우리말을 두고 구태여 일본말 ‘단스’를 고집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가구라면 일가견이 있던 조상을 둔 우리가 겨우 ‘옷장’을 일컫는 서랍장이란 뜻인 ‘단스’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

 

 

이윤옥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 다음 글에 계속할 게.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