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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에서 영천까지 - 자전거 여행 4 : 할머니를 그리며

by 깜쌤 2021. 9. 30.

나는 논벌 한가운데 물풀로 가득했던 작은 못(웅덩이)이 있었던 곳을 찾아가 보았어.

 

 

 

 

장수잠자리왕잠자리를 볼 수 있었기에 자주 찾아갔었어. 

 

 

 

 

그 작은 연못을 가기 위해서는 이 장소를 꼭 지나가야 했어. 

 

 

 

 

느티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서있는 동구라고 해야겠지. 동네 입구에는 느티나무 같은 큰 나무가 버티고 서 있었고 거긴 어른들이나 아이들 놀이터 구실을 했었지.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라는 노랫말을 아는지? 동구는 그런 뜻을 가진 말이야. 읍성이 있는 작은 도시라면 성문 부근 빈터가 동네 광장 구실을 했어. 

 

 

 

 

나는 느티나무 부근에서 논으로 이어지는 길로 꺾어 가본 거야. 얼굴을 많이 가리는 편이어서 친구를 잘 사귈 줄 모르는 아이였기에 혼자서만 이리저리로 살방살방 돌아다녔어. 

 

 

 

 

분명히 이 부근인데 남아있는 건 습지에 자라는 잡풀들 밖에 없었어. 

 

 

 

 

논으로 개간하지 않고 남겨둔 것만 해도 너무 고마웠어. 그땐 동그란 모양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이젠 습지 모양도 뚜렷하지 않더라고. 

 

 

 

 

나는 다시 돌아 나왔어. 

 

 

 

 

나무 밑에 진 치고 모여노는 또래들과 동네 형들이 겁나서 느티나무 밑 바위에는 한 번도 올라가 보질 않았지. 

 

 

 

 

이제 이 나이 되어 한번 올라볼 기회를 잡은 거야. 어른이 되어서 여기 뒷산에  벌초를 하러 와서도 돌아가기 바빴기에 세밀하게 둘러보지도 못했어. 

 

 

 

 

뭐가 그리 바빴는지....   

 

 

 

 

무성 2리 하무쉼터 부근 어딘가에 할머니 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방 둘에 부엌 하나가 전부였던 아주 작은 집이었어. 마당 한쪽에는 대추나무가 한그루 있었고....

 

 

 

 

틀림없이 이 부근 어디인데.... 모든 게 다 변하고 사라져 버렸어. 워낙 없던 시절이라 외삼촌 식구들이 여기 와서 살도록 편리를 봐주었는데 아버지 몰래 논밭을 다 팔아서는 대도시로 가버렸던 모양이야. 워낙 점잖았던 아버지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 분통만을 터뜨렸을 뿐이었지. 

 

 

 

 

되돌아보면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성직자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분인데 그런 길이 있다는 건 꿈에도 몰랐을 거야. 나도 성직자나 학자의 길을 걸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무 철이 없고 본 것이 없으니 눈이 좁아서 인생을 낭비해버렸던 거야.  

 

 

 

 

가슴이 너무 아려왔어. 더 오래 머물러 있으면 마음속 상처에서 진한 피가 마구 솟아 흐를 것 같았어. 

 

 

 

 

떠나야지.

 

 

 

 

아버지도 할머니도 세월의 흐름을 따라 다 떠나가버렸어. 

 

 

 

 

소년이었던 어린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넘어 다니셨던 길만 남아 있었어. 아버지는 여기에다 홀로 된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객지로 나가셨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 것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늦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 삼촌은 그 몇 해 전에 돌아가셨을 테고....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할머니 장례식에 왜 나를 데리고 가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아마 학교 등교 문제 때문이었겠지. 

 

 

 

 

총각으로 죽은 삼촌이 받은 훈장 하나도 어느 날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어. 아마도 아버지가 없애버리신 것 같아. 

 

 

 

 

나는 무성 2리를 떠나기로 했어. 

 

 

 

 

마지막으로 이 동네 어른 한분이 얼찐거리던 놀이터에 가보았어. 이제 이 동네에 그네를 탈 사람이 남아있을까?

 

 

 

 

그래 여기야. 윗 연못이 있던 자리가 이 부근일 거야. 

 

 

 

 

왜 이리 헛헛하지?

 

 

 

 

그렇게 많았던 왕잠자리도 장수잠자리도 보이지 않았어. 

 

 

 

 

장수잠자리가 검은 바탕에 노란 줄무늬를 가진 것이라면, 장수잠자리는 배부분 색깔이 하늘색으로 너무 선명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었어. 

 

 

 

 

<장수잠자리>

 

https://www.youtube.com/watch?v=OmAb_gc2sSw 

왕잠자리 보았지? 시간이 아주 짧으니까 눌러봐도 지루하지 않을 거야. 

 

 

 

 

왕잠자리 수컷 배부분이 파란색이었다면 암컷은 녹색이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기억하는데 할머니 얼굴은 왜 흐릿하기만 하지?

 

 

 

  

모든 것이 꿈속 일만 같아. 

 

 

 

 

일장춘몽!

 

 

 

 

더 머물러 있다간 그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댈 것이 틀림없었기에 아쉬움 남겨두고 돌아섰어. 

 

 

 

 

개울을 건넌 뒤에는 둑길을 따라 달려서 저 산모롱이를 돌아갈 거야. 

 

 

 

 

다리 위에서 살펴보니 잔자갈이 남아있는 곳이 보이는 거야. 또 한참을 살펴보았어. 

 

 

 

 

이윽고 둑길로 나온 나는 들깨를 쪄서 길가에 세워둔 곳을 지나쳐 달렸어. 나이 든 내외가 일을 하고 있더라고. 참, 깨를 찐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어? 

 

 

 

 

 

구절초가 벌써 피어있네.

 

 

 

 

억새도 꽃대를 내밀었고 말이지. 

 

 

 

 

이제 우보로 다시 돌아가는 거야.

 

 

 

 

메뚜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내 무릎에 앉아서 떨어지지를 않고 버티고 있네.

 

 

 

 

나는 녀석을 보내주었어. 

 

 

 

 

이제 우보 쪽으로 방향을 트는 거야.

 

 

 

 

간동 유원지 불고기 단지 인근에 카페가 있기에 쉬어 가기로 했어. 아메리카노 한잔에다가 추억까지 섞어서 마셔버렸어.  

 

 

 

 

다시 출발했어. 

 

 

 

 

도자기 공방이 언제부터 있었던가?

 

 

 

 

그림자가 동쪽으로 눕기 시작했어. 

 

 

 

 

오천리 모퉁이를 돌았더니 우보 뒷자락 낮은 야산을 휘감은 큰 산봉우리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