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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에서 영천까지 - 자전거 여행 3 : 무성리에서

by 깜쌤 2021. 9. 29.

군위읍 무성리는 아버지의 고향이지. 그러길래 할머니는 여기에서 평생을 사셨어. 아버지 외가인 진외가가 어디인지 기억도 못하는 나는 불효자야. 

 

 

 

 

나는 5번 국도에서 무성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거야. 왼쪽에 보이는 다리가 옛날 다리이지. 

 

 

 

 

어도도 만들어져 있네.

 

 

 

 

멀리 보이는 곳이 간동이야. 나는 그쪽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 거지.

 

 

 

 

지금 나는 빨간색 점 끝머리에 와 있는 거야. 3이라는 숫자 아래쪽이지.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뜰 거야. 

 

 

 

 

 

할마니 집 추억이 확실하게 남아있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어. 그 전에도 왔었겠지만 기억이 안 나네. 

 

 

 

 

여름방학이면 여길 와서 위천에 부지런히 드나들었어. 잘디 잔 잔자갈이 가득했던 강에는 별별 물고기들이 가득했었어. 종개가 많았던 것은 확실히 기억해. 

 

 

 

 

그런데 이제는 생태계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어. 개울 한가운데 이런 풀밭이 생겨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었지. 

 

 

 

 

물론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다리가 없었어. 그때는 있을 수가 없었지. 한국전쟁이 끝난지 10년밖에 안된 나라에 뭐가 남아 있었겠어.

 

 

 

 

안 그래도 가난한 나라였기에 건물하나도 다리같은 것도 정말 귀했던 시절인데 625전쟁을 하며 그런 걸 홀랑 말아먹었으니... 오늘날 흔히 보는 건물이나 다리 같은 건 상상을 못 하고 살았었지.

 

 

 

 

나는 위천 제방을 따라 천천히 달려보았어. 거의 육십여 년 전의 추억을 캐내기 위해서야. 

 

 

 

 

산 밑에 보이는 작은 동네에 할머니가 사셨어. 

 

 

 

 

남편(할아버지)을 일찍 떠나보내고 아들 두 형제를 힘들게 키우셨지. 막내아들은 6,25 전쟁에 참가했다가 다리 부상을 입어 귀향을 했었어. 

 

 

 

 

상이용사가 된 삼촌은 결혼도 못하고 돌아가신 거야. 큰 누님은 삼촌을 본 기억이 있다고 해. 나에게 남은 건 코딱지만 한 크기의 삼촌 증명사진 달랑 한 장이야. 그 바람에 아버지 혼자만 남게 되었고 나는 삼촌도 고모도 이모도 없는 처지가 된 거야. 덕분에 사촌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살았지. 명절에는 어디 갈 곳도 없이 우리 식구 몇명만 모여 앉아 시간을 보냈어. 

 

 

 

 

이쯤 어디일 거야. 3학년 때 평은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의성에서 버스로 갈아 탄 뒤 엄마와 함께 도로가에서 버스를 내렸어. 이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홍수가 지나간 뒤라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던 거야. 내 눈에 보기엔 물이 엄청 많아 도저히 못건너겠다 싶었지. 

 

 

 

 

그런데 엄마는 용감하게도 나를 안고 물로 들어서는 거야.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물에 빠져 죽는 형편이었기에 매미처럼 꼭 붙어서 건넜어. 엄마 허리께까지 물이 차올랐던 것으로 기억해. 강 건너편에서 우리 모자를 보고 있던 어른 한분이 건너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것으로 기억해. 

 

 

 

 

세월이 흐른 뒤 늙은 어머니와 대화를 하는데 그 사실을 기억하고 계시더라고. 엄마도 가고 할머니도 가버렸는데 나도 이제는 이만큼 늙어버렸어. 예전 같으면 동네 상노인이 되었을 나이이지. 참으로 부끄럽게도 해놓은 일도 없이 나이만 먹어서 일흔이 내일모레 코앞이거든. 

 

 

 

 

사진 한가운데 느티나무가 보이지? 그 부근 어딘가에 할머니 집이 있었어. 할머니 집은 바로 아버지 생가가 되는 거야. 

 

 

 

 

아버지는 이 산을 넘어 나무를 하러 다니셨다고 해. 그러다가 열여섯 나이에 일본 중부 나라(=내량)라는 도시로 가서 막노동을 하신 거야. 그렇게 번돈을 작은 할아버지께 꼬박꼬박 보내드렸지만 돌아와보니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더라는 거지. 나이들어 일본 나라에 가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막상 가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어. 정확하게 기억을 안해두었기에 벌어진 비극이었어. 

 

 

 

 

나는 개울 둑에 서서 강 건너편을 한참 살펴보았어.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조차 어디에 가서 다 묻혀버렸는지 모르겠어. 모든 것이 아련하고 희미해져서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는 거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할머니는 이 개울을 건너서 군위 읍에 있는 장에 다녀오셨어. 왕복 삼십 리 길이라고 해. 

 

 

 

 

이 길을 걸어 다니신 거야. 

 

 

 

 

나는 뒤돌아 보았어. 체구가 자그마하셨던 할머니 그림자라도 보일까 싶어서 한참을 서있었어. 

 

 

 

 

"할머니! 너무 보고 싶어요. 할머니~~"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 보았으면하지만 나타나질 않았어. 

 

 

https://blog.daum.net/yessir/12280893

 

할매야 할매야아~~~

할매~~ 정말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할매야! 할매는 한번 저 세상으로 떠난 뒤에는 돌아올 줄도 모르데. 내가 찾아갈라캐도 할매 사는 주소를 모르고 할매도 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올 길이 없으

blog.daum.net

 

어지간하면 상자 속 위 글을 눌러봐 주어.  한번 만이라도 봐주었으면 정말 좋겠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나서 한 열흘쯤 뒤에 쓴 글이었어. 그게 벌써 14년 전 일이 되었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