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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서 군산까지 : 금강 자전거 기행 - 무령왕릉

by 깜쌤 2021. 8. 9.

어제저녁에 건너 다녔던 그 다리를 다시 건너갔어.  사진 속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들 보이더라고.

 

 

 

 

공산성 금서루 맞은 편 도로에는 백제 무령왕릉 연문이라는 한자 글씨가 붙은 문이 있었어. 어제저녁에도 보며 궁금해했던 바로 그 문이지. 연이라는 글자가 변두리를 의미하는 글자니까 무령왕릉이 이 부근 어디엔가 존재하겠지. 

 

 

 

 

금강으로 흘러드는 제민천 위에 걸린 다리를 건너가는 거야. 

 

 

 

 

이런 형식의 다리는 중국 귀주성 오지 산간 마을에서 자주 볼 수 있었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 중국에서는 대륙답게 규모도 크고 화려하다는 것뿐이지. 궁금하다면 아래 주소를 눌러봐. 

 

 

https://blog.naver.com/sirun/221838331285 

 

삼강에 걸린 삼강 풍우교

아까 다리를 건너면서 보았던 풍우교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걸었다. 길 찾기는 쉽다. 방향을 봐두었으니 도...

blog.naver.com

 

 

 

 

유적은 규모로만 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살아오면서 느끼고 배웠어. 

 

 

 

 

공주중학교 인근에 황새바위 성지가 있더라고.  조선 말기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장소라고 알고 있어.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을 자전거로 올라갔어. 체력이 그리 튼실하지 못한 나는 결국 끌고 올라갔지. 

 

 

 

 

도로 오른쪽이 송산인가 봐. 무령왕릉은 이 부근 어디엔가 있을 거야.

 

 

 

 

곧 이어 멋진 사적지가 등장했어. 

 

 

 

 

누가 봐도 이 부근이야.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었어. 

 

 

 

 

매표소로 가야지. 

 

 

 

 

멋지게 만들어두었더라고. 

 

 

 

 

충청도답게 여기에는 점잖은 기운과 품위가 넘치는 것 같았어. 

 

 

 

 

도로 맞은 편에 박세리 공원이 있더라고. 

 

 

 

 

아름답게 단장해둔 덕분에 기분까지 상쾌해졌어. 

 

 

 

 

산책객들이 조금씩 보이네. 

 

 

 

 

드디어 정문 앞까지 온 거야. 진묘수가 우릴 맞아주었어. 

 

 

 

 

'진묘수'라고 이름 붙은 이 동물은 죽은 자와 무덤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거야. 실물의 세배 정도로 확대해서 만들었다고 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무령왕릉에 오게 된 건 처음이야. 

 

 

 

 

한국인으로서는 너무 늦게 온 거지. 

 

 

 

 

일단 전시관부터 들러보았어. 

 

 

 

 

무덤 조성을 위해 합법적으로 토지를 매매했다는 증거물이지.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인가 봐. 부여에서 나왔다는 물건이 왜 여기에 소개되어있을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7호 고분이 바로 무령왕릉이라고 해. 

 

 

 

 

6호 고분에서는 사신도가 나왔던가 봐. 

 

 

 

 

짐작되는 동물이 있지? 이런 동물과 비슷한 모습을 지닌 것은 고대 중동의 바빌로니아 역사에도 등장해. 이쉬타르의 성벽에도 비슷한 동물이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 

 

 

 

 

무령왕릉에서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묘지석이 나왔다잖아?

 

 

 

 

이런 작품들을 통해 백제인들의 화려한 예술적인 감각과 솜씨를 짐작해볼 수 있지. 

 

 

 

 

출토 현장의 복원을 복원한 것이라고 해. 

 

 

 

 

진묘수도 보이네. 돈꾸러미도 있고 말이지. 

 

 

 

 

너무 귀중한 유적이었어. 공주에서 이런 귀중한 문화재가 발견된 건 기적 같은 일이지. 

 

 

 

 

무령왕릉의 역사적 가치는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해. 

 

 

 

 

당시만해도 발굴 솜씨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 면이 많다고 들었어. 

 

 

 

 

둥근 고리 칼이야. 이런 모습의 칼은 시베리아 일부 지역에서도 발굴되었던 것 아닌가? 손잡이의 동물 문양도 눈에 익숙했어.

 

 

 

 

 

이제 무덤 속으로 들어가봐야지. 물론 여긴 전시관 안에 만들어둔 복원된 장소이고 진짜 장소에는 당연히 관람객이 들어갈 수 없어. 

 

 

 

 

벽돌로 사방을 둘러싼 것이 놀라워. 

 

 

 

 

벽돌에 찍힌 글자들이 보이지?

 

 

 

 

무령왕 무덤 양식은 중국 남조 양나라의 스타일과 닮아있다고 해. 이런 것은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여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기도 하고 참고 자료를 읽어보기도 했어. 

 

 

 

 

무령왕! 위키백과에서는 무령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어. 

 

 

무령왕(武寧王, 462년 음력 6월 1일 ~ 523년 6월 5일(음력 5월 7일[1]), 재위: 501년 음력 12월 ~ 523년 음력 5월 7일)은 백제의 제25대 국왕이다. 무령왕릉 지석에 따르면 462년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斯麻) 또는 융(隆)이다.[2] 《백제신찬》에 따르면 무령왕의 아버지 개로왕은 근친상간을 했다고 기록되나, 이것은 왕위의 정통성을 위한 거짓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백제신찬》과 《일본서기》에는 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의 아들이고, 동성왕은 이복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3]와 《삼국유사》에는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외모가 험했으나, 성격이 관대하였다고 한다. 501년 동성왕이 위사좌평 백가의 계략으로 살해되자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는 재위 23년, 나이 62세에 죽고 그의 아들 성왕이 즉위하였다. 후일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호령왕'(虎寧王)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것은 고려의 제2대 왕 혜종의 이름인 무(武)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전시관을 나왔어. 

 

 

 

 

송산리 고분군의 일부 구역에는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어.

 

 

 

 

아주 세밀하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았어. 

 

 

 

 

발굴작업이라고 하는 게 엄청난 고역이라고 들었어. 

 

 

 

 

무령왕릉의 모습이야. 

 

 

 

 

출입이 제한되고 있었어. 

 

 

 

 

당연한 일이지. 그러므로 조금 떨어져서 입구만 살펴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던 거야. 

 

 

 

 

송산리에 백제 시대의 무덤이 남아있다는 건 귀한 일이지. 

 

 

 

 

시시하게 보이는 이런 무덤이 그렇게 엄청난 유물을 품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도굴을 면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해야 할 거야. 

 

 

 

 

아무리 재물이 탐나도 주인 몰래 남의 무덤을 뒤진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발굴 현장을 옆으로 두고 내려왔어. 

 

 

 

 

공주에서 이 정도만 봐도 만족해. 

 

 

 

 

버스 정류장도 품위가 있었어. 

 

 

 

 

박세리 공원 앞을 지나갔어. 

 

 

 

 

이젠 금강으로 나가야지. 

 

 

 

 

머릿속에 대강이나마 지도를 넣어두고 있었으므로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었어. 

 

 

 

 

공주 소방서 앞으로 펼쳐지는 무령로를 따라 달렸어. 

 

 

 

 

저 앞 삼거리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면 될 것 같았어.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