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클린 에어 카운티 영양 - 조지훈의 고향 주실마을 1

by 깜쌤 2021. 4. 5.

 

다음 행선지는 주실마을이야. 

 

 

 

 

조지훈 선생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지. 

 

 

 

 

영양읍을 거쳐가야 해. 봉화 쪽에서 내려온다면 그럴 필요가 없겠지.

 

 

 

 

영양읍은 조용한 곳이었어. 

 

 

 

 

고추와 산나물로도 유명한 곳이지. 

 

 

 

 

산비탈에 둘러붙다시피 한 변두리의 작은 집들이 몇 채 남아있었어. 

 

 

 

 

오원춘 사건이라고 아는지 모르겠어. 조선족 출신 살인범 오원춘과는 동명이인인데 그 분은 가톨릭농민회 소속이었지. 사건의 지리적 배경이 된 곳이 영양군이었어. 시대적 배경은 박정희 시대였고. 

 

 

 

 

주실마을은 평소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다고 마음먹은 장소였지. 

 

 

 

 

아마 시인의 숲 같았어. 

 

 

 

 

젊었던 날, 시인 조지훈지조론에 대해 들어 알게된 뒤로는 항상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어. 

 

 

 

 

당시만 해도 영양은 나들이하려면 큰 마음을 먹고 나서야 할 만큼 교통이 엄청 불편했던 오지 중의 오지였어. 

 

 

 

 

ㄱ부장님은 주차장에 차를 댔어. 개울 건너편에 주실 마을이 보이네. 

 

 

 

 

주차장에는 조지훈의 풀잎 단장이 새겨진 돌이 나그네를 맞이해주었어. 

 

 

 

 

원문 내용이 궁금하지? 글씨를 좀 더 깊이 새겼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조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이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나는 산책로를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보기로 했어. 

 

 

 

 

영양군에서는 문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것 같았어.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외따로 떨어져 혼자 보이는 기와집은 만곡정사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이지. 

 

 

 

 

후학들을 길러내기 위한 공간 정도라고 이해하면 쉬울 거야. 

 

 

 

 

장군천에 걸린 다리를 건너가는 거야. 

 

 

 

 

주실마을은 낮은 야산을 등지고 자리 잡았어. 

 

 

 

 

마을 입구 부근에는 구멍가게가 남아있었어. 

 

 

 

 

나는 조지훈 선생의 생가로 이어지는 길을 천천히 걸어갔어. 

 

 

 

 

살필 것은 다 살피면서 걸어갔지. 

 

 

 

 

조지훈 선생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지훈 선생이 열아홉의 나이일 때 시인으로 등단을 했다는데 그때 추천위원이 너무나 유명한 정지용 선생이지.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언행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게 사실이야. 

 

 

 

 

조지훈 선생의 처가가 영주 무섬마을이지. 

 

 

 

 

나는 어린 시절을 무섬마을에서 이십여 리 정도 떨어진 마을에서 보냈어. 

 

 

 

 

지훈 선생의 생가 앞에 서서 안내문을 읽어보았어. 

 

 

 

 

멀리서 실피기만 하고 그냥 들어왔던 만곡정사에 관한 안내문도 있더라고. 

 

 

 

 

지훈 문학관은 이따가 들어가 볼 생각이야. 

 

 

 

 

바로 이 집이야. 조지훈 선생의 생가!

 

 

 

 

생가에서 영양쪽을 본모습이지. 

 

 

 

 

주실마을에는 기와집들이 즐비했어. 

 

 

 

 

호은종택! 종택에 관한 설명을 하지 않을게. 아까 소개해준 안내문에 자세히 나와 있었거든. 

 

 

 

 

필체가 단아했어. 조지훈 생가라는 작은 돌비도 보이지?

 

 

 

 

기품 있는 집이었어. 

 

 

 

 

제법 규모가 있는 집이었어. 

 

 

 

 

이런 곳에서 태어나 엄한 교육을 받았다면 조지훈 선생의 평소 언행을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뒤편에는 사당이라고 생각되는 공간이 담으로 둘러져 있었어. 

 

 

 

 

옆으로 돌아가 보았어.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기품이 있었어. 

 

 

 

 

집안이 좋다는 말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만고풍상을 겪고 나서 이 나이 되어서야 진실되게 깨달을 수 있었어.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근본이 부족한 사람들도 엄청 많이 만났어. 

 

 

 

 

공부만 잘 했던 사람, 입만 살아 움직이던 사람, 들은 것 없고 본 데 없이 함부로 살아온 사람.....

 

 

 

 

뒤란이 제법 넓었어. 이문열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낸 집도 그랬었지. 

 

 

 

 

댓돌로 오르는 공간도 단아했어. 

 

 

 

 

그리 높지 않았기에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지. 이런 곳을 축대처럼 쌓아 올리고 집을 올려버리면 거기에 위엄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거만함과 교만함이 느껴진다는 게 내 생각이야. 

 

 

 

 

대문 좌우에는 누가 살았을까? 이젠 돌아나가야지. 

 

 

 

 

밖으로 나온 나는 조지훈 문학관이 있는 곳으로 갔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바로 옆집을 살펴본 것이나 마찬가지야. 

 

 

 

 

 

 

 

어리

버리